알고 살아가자/사람과 예술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BK(우정) 2020. 3. 6. 17:06

1) 서로 사랑하고 관계를 지키는 동시에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을 허락한다.

2) 상대방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어떤 것도 숨기지 않는다. (외도 사실까지도)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의 대표주자 장 폴 사르트르와(Jean-Paul Charles) 여성운동의 개념서라 불리는 <제2의 성>을 집필한 시몬느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의 계약 결혼에 대한 조건이다. 이 조건으로 그들은 1929년부터 죽을 때까지 50여 년간 계약 결혼 관계를 유지한다. 첫번째 조건 때문에, 그들은 성적으로 문란하고 부도덕하다는 비난을 수차례 받아야만 했다. 통상 결혼뿐만 아니라 연애 중에도 파트너 외 다른 이를 만나는 것은 사랑에 대한 부정이자 배신이라 여겨진다. 1930년대 파리에서도 이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들은 왜 서로의 사랑을 의심할 만한 조건을 내걸고 관계를 이어나간 것일까? ‘정상’이라고 여겨지는 사랑의 틀을 거부한,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사랑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자.

 

완벽한 사랑의 실험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 결혼은 ‘주체성’과 ‘자유’라는 키워드로 함축할 수 있다. 둘 사이의 관계는 그들의 철학사상에 대한 실천이자 결과였다. 그들은 ‘사랑은 각자의 주체성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관계’라고 정의한다. 서로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는 사랑을 통해서, ‘나’와 ‘너’라는 경계를 허물고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보부아르는 사회 관습에 저항하는 삶을 지향했다. 자유롭고 주체적인 신념을 가진 그녀에게 결혼이란 제도는 족쇄였다. 당시에는 여성이 결혼하게 되면 남성에게 종속되어 사회생활을 끊고 출산, 육아, 가사노동에만 전념해야 했다. 그녀는 이러한 사회적 통념을 계약 결혼이란 관계를 통해 저항한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에서도 자유는 핵심적인 개념이다. 그는 인간은 자유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주체적으로 선택해야 한다고 믿었다. 인간의 본질은 종교, 사회, 타인에 의해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들의 관계는 각자의 자유와 철학에 대한 주체성을 인정하며 더욱더 단단해진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서로를 또 다른 자아이자 꼭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 사랑, 당신과 나는 하나에요.
나는 곧 당신이고 당신은 곧 나와 같아요
-보부아르가 사르트르에게 보낸 편지 中


보부아르를 만났을 때 다른 사람과 맺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인간관계를 맺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장 완전한 관계 말이다. (…) 우리들의 관계는 평등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우리들의 관계에서 우리들 각자 동등했으며, 다른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나는 남자로서 나에게 딱 맞는 여자를 발견한 것이다.
-사르트르의 인터뷰 中


열렬히 나누었던 대화의 공기 속에서, 그들은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평생 서로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운명 같은 사실을. 그렇기에 각자의 삶을 소유하며 사랑을 붙잡아두려 하지 않았다. 삶을 살아가며 지나치는 우연한 사랑마저도 인정하기로 했다. 단 하나뿐인, 가장 완전한 사랑이 서로임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사르트르와 나 사이에는 항상 말이 있었어요.”

계약 결혼 기간에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다른 사람과 여러 정신적, 육체적 관계를 맺었다. 사각 관계에 빠지기도 하고, 질투에 휩싸여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다른 사람과 결혼을 약속하며 관계가 끝날 뻔한 적도 있다. 그런 위기를 겪어도 두 사람은 언제나 서로에게 돌아왔다. 서로가 없는 삶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을 평생 이어줬던 매개체는 ‘말’이었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서로의 철학 사상을 완성해주는 지적 동반자였다. 햇빛이 잘 드는 책상 앞에 나란히 앉아 서로 쓴 글을 읽고 치열하게 토론했다. 그들은 각자의 세계를 언어로 더듬으며 사랑했다. 사르트르의 세계는 곧 보부아르의 세계였다. 한 사람이 시작한 문장을 다른 사람이 끝맺을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은 완벽한 정신적 결합을 이루었다. 사르트르가 죽음을 맞이했을 때, 보부아르를 슬프게 만들었던 것은 더는 그와 ‘말’을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보부아르에게 그의 죽음은 무한한 침묵과 같았다.


오직 죽음만이 우리를 갈라놓기를

보부아르는 말년에 출판한 회고록에서 먼저 세상을 떠난 사르트르에 대해서 회상한다. 인생에 있어 의심의 여지 없는 성공은 바로 사르트르와의 관계였노라고,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았으나 우리의 삶이 하나였던 그 긴 시간은 몹시도 아름다웠노라고. 미성숙, 무책임, 방종으로 가득 찬 관계라고 뭇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둘의 결론은 한결같았다. 끊임없는 불가능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랑이란 관계를, 실패로 놔둬서는 안 된다는 것. 두 사람의 관계는 인간의 사랑에 대한 도전 그 자체였다. 길었던 이 실험은 성공적이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서로 떨어뜨려 이야기할 수 없는 하나의 이름이 되었으니.


이상, 출처; 인디포스트

https://www.indiepost.co.kr/post/1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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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운명" 18세 연하 향한 시몬 드 보부아르의 '격정 연서'
 

클로드 란즈만 감독에 쓴 편지 65년 만에 공개, 사르트르와 '열린 계약결혼' 도중 사랑에 빠져
"사르트르 사랑했지만 육체 관계 별거 없었다" 평생 동반자에 대한 '성적 불만' 드러내기도

“내 사랑하는 애기, 처음으로 절대적인 사랑, 내 삶에 단 한번 앞으로 다시 없을 사랑.”

 
당대의 프랑스 지성계를 호령했던 44살의 거장 페미니스트도 18세 연하의 남성 예술가 앞에선 한없이 부드러운 로맨티스트였다. 프랑스 여권운동의 대모로 불리는 시몬 드 보부아르(1908~1986)가 영화감독 클로드 란즈만(93)에게 보낸 연애편지가 65년 만에 공개됐다. 21일(현지시간) 일간 르몽드에 따르면 드 보부아르는 란즈만에게 총 118통의 편지를 보냈는데 이날 공개된 편지는 1953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머무르면서 쓴 것이다.   편지엔 사랑에 빠진 여걸 사상가의 열정과 탐닉이 고스란히 배어났다.    
     

“널 볼 때마다 자연스레 떠오르는 이 말들을 결코 입 밖에 내진 않을 거야. ‘네가 좋아. 내 몸과 영혼을 다 바쳐 널 사랑해, 넌 내 운명이고 내 영원한 생명이야’라고.”

 
드 보부아르는 또 이 편지에서 란즈만의 품에 안겨 영원히 머물고 싶다면서 “평생 네 아내가 될 것”이라고 썼다. 란즈만이 첫 사랑이자 다시 없을 사랑이라는 고백도 덧붙였다.   
   
란즈만은 만 26살 때 18살 연상인 드 보부아르를 만났다. 그는 당시 드 보부아르의 비서로 일했다. 란즈만을 만났을 때 드 보부아르는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1905~1980)와 계약 결혼 관계였다. 이들은 1929년부터 반세기 동안 자유로운 연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각자 다른 애인을 두었고 그 관계를 숨기지 않았다.
 
이날 공개된 편지에선 드 보부아르가 3살 연상의 사르트르에게 성적으로 불만을 가졌던 사실도 드러났다. 드 보부아르는 “사르트르를 정말 사랑했지만, 난 그만큼 되돌려 받지 못했다”라고 썼고 “그와의 육체적 관계는 별거 없었다”고 밝혔다. 또 “그가 날 사랑해서 나도 그를 사랑했지만, 사실 서로 친밀하지 않았고 난 그에게 내 마음을 다 주지 않았다”고도 했다.
 
드 보부아르는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선언한 철학서 『제2의 성』으로 프랑스 ‘성 해방 운동’의 선구에 섰다. 『제2의 성』은 출간 첫 주에 2만2000부가 팔리며 베스트셀러가 됐고 1953년에 나온 영역본은 200만 부 이상 팔린 것으로 집계된다.

이상, 출처; 중앙일보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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