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살아가자/사람과 예술

프랑수아즈 사강

BK(우정) 2020. 3. 6. 13:36
세계문학사를 살펴볼 때 여류작가의 작품이 본격적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후반부터이다. 물론 19세기 중반에도 프랑스의 조르주 상드나 미국의 스토 부인 등 상당수의 여류작가들이 있었다. 그리고 20세기 전 반에도 영국의 버지니아 울프나 미국의 마거릿 미첼 등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고른 독자층을 확보하며 '문학계의 스타'로 부상한 여류작가는 없었다. 물론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세계적 베스트 셀러가 되어 문학계를 놀라게 했지만, 불행히도 미첼 여사가 후속 작품을 내지 못하고 타계하는 바람에 그녀는 지속적인 '신화'를 만들어낼 수 없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와 어느날 갑자기 세계적인 스타로 부상한 여류작가가 바로 프랑스의 프랑수아즈 사강이다. 그녀는 1954년 19세의 어린 나이에 발표한 <슬픔이여 안녕>으로 인해 '여류작가의 신화'를 만들어 냈고, 세계 각국의 많은 독자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녀가 제2의 에밀리 브론티나 마거릿 미첼이 되는 줄로만 알았다. 다시 말해서, 작품 하나로 우연히 스타가 되고, 더이상 후속작품을 못 내는 단명한 여류작가로 그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1956년에 <어떤 미소>를 발표하여 그녀의 건재를 과시했고, 이듬해 다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내어 작가로서의 굳건한 지위를 확보했다. 세 작품은 모두 영화화되어 대성공을 거두었고, 그 이후에도 사강은 쉴 새 없이 작품을 발표하여 남성작가 못지 않은 '정력'을 과시했다.

사강이 프랑스의 문단을 놀라게 한 이유는 그녀의 소설이 '전혀 심각하지 않다' 는데 있었다. 그녀가 등장하기 까지 프랑스의 문단을 지배하고 있던 사조는 실존주의였다. 사르트르와 카뮈를 대표로 하는 실존주의 문학이 튼튼한 아성을 굳혀, 문학은 반드시 철학의 성격을 겸비해야만 하는 것으로 되어있었다. 그런데 사강의 소설은 철학적 고뇌나 탐구가 전혀 없이 자잘한 일상의 권태와 세속적 연애심리만을 다루고 있었던 것이다. 사강의 소설이 독자들로부터 환영을 받게된 이유중 하나는 실존주의 문학이 갖는 '무거움' 에 대한 염증에 있었다. 문학이 주는 가볍고 경쾌한 카타르시스 효과를 독자들은 내심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소설이란 원래 이성보다는 감성을, 모럴보다는 본능을 추구하는 장르이다. 그런데 실존주의 문학은 독자들에게 이성과 모럴을 강요했고, 소설을 철학 교과서처럼 딱딱하게 만들어 읽는 사람을 피곤하게 했다.


사강의 소설이 갖는 특징 중 하나는 그녀의 소설이 무척이나 짧다는 것이다. 그녀는 우리나라 2백자 원고지로 쳐서 4백장 안팎의 분량을 넘는 소설을 결코 쓰지 않았다. 그러니까 분량으로만 따지면 그저 중편소설 정도의 소품이 되는 셈이다. 프랑스는 원래 대하소설이 많기로 유명한 나라다. 위고의 <레 미제라블>이나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등 이른바 명작으로 불리는 소설들은 거의가 대하소설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사강의 짧디짧은 소설이 독서계를 장악했으니, 이는 가히 경천동지할 일이었다. 또한 그녀의 소설은 자잘한 연애심리로만 시종하여 스케일을 전혀 느낄 수 없다. 문장도 짧은 단문이고 역사의식이나 이데올로기적 취향같은 것도 보이지 않는다. 바로 이런 점이 그녀의 대담한 독창성으로 인정됐고, 사강의 신화를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 작가들이 크게 참고해야할 사항이다.

이상, 출처; 한겨레


소설 '슬픔이여 안녕'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여류 작가 프랑수아 사강이 24일(현지시간) 프랑스 북부 항구도시 옹플레르의 병원에서 별세했다. 69세. 그는 심장과 폐 질환으로 수년간 투병해 왔다. 1935년 프랑스 남서부 로트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사강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파리로 이주했으며, 40편 이상의 소설과 희곡을 남겼다.

소르본대 재학 중이던 18세 때 6주 만에 쓴 '슬픔이여 안녕'은 친근한 문체와 도발적인 시각으로 발간 즉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2개 언어로 번역돼 전세계에서 200만권 이상이 팔렸다. 콰레가 본명인 그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인 사강을 필명으로 삼았다. 과속과 담배를 즐겼던 사강은 95년 코카인 복용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았고, 2002년엔 탈세로 법정에 서는 등 우울한 말년을 보냈다. 두차례에 걸친 결혼과 이혼을 겪었고 두번째 남편인 미국인 밥 웨스토프와의 사이에 아들 한명이 있다. 한편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사강 별세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고인은 여성의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했다. 프랑스는 가장 훌륭하고 감수성이 강한 작가중 한사람을 잃었다"며 조의를 표했다.

이상, 출처; 중앙일보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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