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살아가자/사람과 예술

루 살로메... 릴케...

BK(우정) 2020. 3. 2. 06:31

릴케의 원래 이름은 `르네(Rene) 마리아 릴케`였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라이너(Rainer) 마리아 릴케`로 바꾼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릴케의 이름을 바꾸게 한 사람은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라는 한 여성이었다. 스물한 살의 무명 시인이었던 릴케는 살로메를 만나자마자 한눈에 반한다. 사랑의 포로가 된 것이다. 서로 친해질 무렵 살로메는 르네라는 이름이 너무 프랑스풍이고 여성적이니 남성적인 독일풍 `라이너`로 바꾸자고 제안한다. 릴케는 두말 않고 제안을 받아들인다. 이뿐만 아니다. 릴케는 살로메의 글씨를 닮으려고 자신의 서체까지 바꿔버린다. 그녀가 릴케의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물론이다. 비평가들은 릴케의 문학 세계를 구분할 때 살로메를 만나기 전과 후로 나눈다. 살로메를 `팜므 파탈(Femme Fatale)`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팜므 파탈을 단순히 `악녀`로 번역한다면 이 말은 틀린 말이다. 하지만 팜므 파탈의 원래 뉘앙스가 `치명적 여인`이나 `운명적 여인`임을 감안하면 그 지적은 타당하다. 살로메는 충분히 치명적이고 운명적이었으니까.


살로메는 떠들썩한 염문의 주인공이기 이전에 작가이자 정신분석학자이다. 그녀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프랑스계 제정 러시아 장군의 딸로 태어났다. 형이상학 종교학 등을 섭렵한 살로메는 당시 여성을 받아주는 몇 안 되는 대학 중 하나였던 스위스 취리히대에 진학하면서 지성계의 스타로 떠오른다. 하지만 그녀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학문·문학적 성과보다는 미모로 주목받았다. 살로메로서는 매우 억울했을 터. 사실 살로메는 그냥 존재했을 뿐이다. 그녀를 염문의 주인공으로 만든 건 남자들의 왜곡된 시선이었다. 릴케와의 관계를 봐도 그렇다. 살로메는 릴케를 망친 것이 아니라 릴케 문학에 엄청난 창조적 영감을 준 뮤즈였을 뿐이다. 살로메는 릴케의 병적인 집착을 적절히 관리하면서 그의 재능을 꽃피우게 한 대단한 조율사였던 셈이다.

살로메는 여성으로의 주체성을 삶과 사랑에서 구현해낸 혁명가였다. 그녀는 남성들 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결혼 제도에 속박되지 않는 자유인이 되기를 결심한다. 그녀의 자전소설 `우리는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가`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는 삶의 거센 투쟁과 수많은 괴로움 끝에 비로소 한 조각 하늘을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하게 된다. 마음속에 뜨거운 감동과 박력을 지니고 인생과 용감하게 싸우는 자에게는 누구에게나 푸른 하늘의 한구석이 열리기 마련이다."

살로메는 자유인이었다. 여성의 지위가 형편없었던 시절 살로메는 자신의 힘으로 하늘 한구석을 열어젖혔다. 살로메에게 사랑을 바친 인물은 릴케 이외에도 많았다. 니체와 프로이트도 그들 중 하나였다. 니체는 정신병원에 수용돼 죽어가면서도 "나는 지금도 살로메를 사랑한다"고 외쳤고, 프로이트는 "루는 여자로서 최고 운명을 가졌다"고 찬사를 보냈다. 루는 그들의 지성에 매력을 느꼈고 그들과 지내는 시간을 즐거워했다.하지만 그들과 사는 것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19세기 말 여성에게 결혼은 영혼을 반납하는 일과 동일했기 때문이다. 살로메는 "남자들이 원하는 것에는 신경 쓰지 말라. 차라리 신이 원하는 걸 하라. 거기에 자유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강하고 현명했다. 


이상, 출처; 매일경제

https://www.mk.co.kr/news/culture/view/2019/11/974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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