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낙원(失樂園·Paradise Lost)’. 셰익스피어에 견줄 만한 영국 시인이라는 존 밀턴(1608~1674)의 대표작이다. 밀턴보다 44년 앞서 태어난 셰익스피어는 막대한 부동산을 제외하고도 창작으로만 연간 200파운드는 벌었다는데 밀턴은 대서사시 ‘실낙원’으로 인세(印稅)를 얼마나 가져갔을까. 대부분의 문헌에는 이렇게 나온다. ‘시력을 잃고 가난에 허덕이던 밀턴이 단돈 10파운드에 저작권을 넘겼다’고. 맞다. 한창 나이인 44세에 실명(失明)하고 반역자로 찍힌 52세부터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가난에 시달려 많지 않은 돈에 저작권을 출판업자에게 양도한 것도 맞다. 다만 저작권을 넘긴 대가로 받은 돈의 액수는 알려진 바와 다르다. 정확하게 10파운드가 아니라 5파운드. 1667년 4월 27일 작성된 계약서에는 ‘원고를 넘길 때 5파운드를 지급하며 초판이 매진되면 5파운드를 추가로 내준다. 추가 인쇄에 들어가 2판·3판·4판이 팔릴 때마다 5파운드씩 지급한다’고 명시돼 있다.
오늘날 영국 돈 5파운드면 우리 돈으로 약 8,400원. 빼어난 라틴어 문장으로 유럽 대륙에도 명성이 자자했던 밀턴이 왜 이렇게 계약했는지 의구심이 들겠지만 당시로서는 작가에게 다소 불리할 뿐 정상적인 계약이었다고 전해진다. 우선 349년 전의 돈 가치가 지금과 다르다. 소매물가상승률을 감안할 때 당시 5파운드의 가치는 요즘 2,807 파운드(약 884만원) 수준에 해당된다.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은 아니었지만 밀턴의 이름 값에 비하면 만족스럽지 못할 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따로 있다. 남다른 신념과 인생 역정, 정치 상황 탓이다. 박상익 우석대 교수(역사교육과)의 저서 ‘밀턴 평전-불굴의 이상주의자’에 따르면 밀턴은 평생 세 차례의 큰 위기를 겪었다. 어린 아내와의 이혼 논란과* 시력 상실, 왕정복고.
참수당한 찰스 1세의 아들 찰스 2세의 귀환과 왕정복고(1660)는 밀턴의 말년을 옥죄었다. 밀턴은 공화정의 이론가였기 때문이다. 시력을 잃은 이유도 실은 공화정에 대한 신념에서 비롯됐다. 1650년 프랑스의 유명 논객이 ‘찰스 1세를 위한 변명’을 출간하자 크롬웰의 외국어 담당 비서관으로 일하던 밀턴은 ‘잉글랜드 국민을 위한 변명’ 출간으로 맞대응하고 ‘잉글랜드 국민을 위한 두 번째 변명’을 써나가던 1652년 두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아내의 도망으로 책에 파묻혀 살던 1644년부터 시력에 이상이 생겨 점점 악화하던 상황. 친구들은 집필을 만류했으나 밀턴은 듣지 않고 일에 매달린 끝에 맹인이 되고 말았다. 공화국 옹호에 두 눈을 바친 셈이다. 찰스 2세가 귀환하기 두 달 전에는 ‘자유공화국을 수립하기 위한 준비되고 쉬운 길’을 펴냈다. 권력의 무게 중심이 왕당파로 완전히 넘어간 마당, 공화국의 이상을 부르짖던 이들은 모두 국왕에게 넘어가고 오직 시력을 잃은 밀턴만 홀로 끝까지 싸웠던 것이다.**
돌아온 찰스 2세와 왕당파에게 밉보인 밀턴에게는 재산 상실과 자의반 타의반의 자택 감금, 체포와 감옥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때 ‘역적 20명’의 명단에 포함돼 중형을 당한 처지였던 밀턴은 ‘시력을 잃은 작가는 더 이상 왕정에 위험이 안 될 것’이며 ‘신이 이미 시력 상실이라는 징벌을 내린 마당에 잉글랜드 의회가 신보다 심한 벌을 내릴 수는 없다’는 이유로 풀려났다. 사면 이후에도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혀 끊임없이 감시받던 그에게는 불행이 한꺼번에 찾아왔다. 첫째 아내에 이어 두 번째 아내와도 출산 후유증으로 사별하는 아픔을 겪었다. 혼자 어린 딸들을 키우면서도 밀턴은 대작 ‘실낙원’을 구술해 딸들과 세 번째 아내가 받아 적은 끝에 1665년에는 탈고를 마쳤다.
정작 출고까지는 2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런던 대역병(1665)과 대화재(1666)로 출판 여건이 좋지 않았던데다 출판사들이 ‘정치범 밀턴’을 꺼렸기 때문이다. 런던의 끄트머리에 살던 밀턴은 대화재로 인해 얼마 안 남은 재산까지 잃었다. 가까스로 5파운드를 받고 출판계약을 한 밀턴이 추가 인세 5파운드를 받은 시기는 만 2년 뒤인 1669년 4월. ‘실낙원’ 초판 1,300권이 매진된 뒤다.*** 적지만 밀턴은 이 돈으로 최저의 생계를 꾸리며 사망(66세) 전까지 거작 ‘복낙원(復樂園·Paradise Regained)’과 ‘투사 삼손(Samson Agonistes)’을 저술했다.
밀턴 사후에 유가족이 받은 ‘실낙원’ 인세라야 8파운드. 생전의 밀턴이 받았던 인세 총액과 합쳐 18파운드에 불과하지만 작품 ‘실낙원’은 영원히 빛난다. 빅토리아 시대를 풍미한 영국 윌리엄 워즈워드는 1802년 밀턴을 기리며 ‘런던’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읊었다. “밀턴, 그대야 말로 우리 시대에 살아있어야 할 사람/ 지금 영국은 고인 물이 썩어가는 늪 같나니/ 교회도, 군대도, 문학도, 가정도, 웅장한 부호의 저택도/ 마음 속의 행복을 잃었도다./ 아, 우리를 일으켜주오, 우리에게 돌아오라.”
무엇이 낭만주의의 거장인 워즈워드로 하여금 밀턴의 존재를 갈구하게 만들었을까. 프랑스 혁명을 지켜보며 낭만주의와 순수보다는 사회 변혁에 관심이 많았던 청년 워즈워드에게 밀턴이 지켰던 소신과 혁명을 향한 열정, 의지가 그리웠으리라. 밀턴은 믿었다. 신의 가장 훌륭한 종은 지식이 뛰어나거나 재산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주어진 굴레를 그대로 지고 가는 자라고. 그리고 그렇게 살았다. 서사시인으로, 혁명의 논객으로 불꽃처럼 뜨겁게.
* 밀턴은 국왕 찰스 1세와 의회 간 내전의 기운이 무르익던 1642년 봄 33세의 다소 늦은 나이에 결혼했다. 상대는 왕당파 집안에서 자란 16세의 메리 파월. 둘은 사랑의 열정으로 결혼했으나 신부는 두 달 만에 친정으로 돌아가 3년이 지나서야 돌아왔다. 아내의 공백 동안 밀턴은 이혼을 옹호하는 팸플릿 네 편을 써 평생 ‘이혼 주창자’라는 오명 속에 살았다. 정작 이혼의 정당성을 주장한 밀턴은 이혼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세 번 결혼했으나 두 번의 사별에 따른 결과였다. 첫 번째 아내와는 시력을 상실한 1652년 사별했다. 1656년 결혼한 두 번째 부인도 출산 후유증으로 1658년 사망하고 넷째 딸까지 출생 넉 달 만에 죽고 말았다. 밀턴은 1663년(55세) 23세의 신부 엘리자베스 민셜과 결혼하며 가정의 안락을 찾았다. 둘은 33년 나이 차이에도 행복했다고 한다. 부유한 약제상이자 자선사업가의 조카였던 엘리자베스는 1674년 밀턴이 사망한 이후에도 54년을 더 살았다.
** 밀턴은 진작부터 신념을 위해 압력에 맞섰다. 1643년 의회가 모든 출판물의 사전 검열과 출판 조합 등록을 강제하는 명령을 내리자 밀턴은 이듬해 ‘아레오파지티카(Areopagitica)’를 항의의 뜻에서 무검열·무등록으로 출간했다. 밀턴은 이 책에 ‘출판 허가제와 검열제도는 불합리하며 의회는 부당한 명령을 폐지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특히 “나에게 자유를 달라.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공부하고, 자유롭게 말하며 자유롭게 추론(推論)할 수 있는 자유를, 다른 모든 자유 이상으로 달라”는 대목은 언론 자유를 향한 최초의 봉화(烽火)로 평가받는다. 밀턴이 이 책에서 제시한 ‘사상의 자유 공개시장’이 바로 오늘날 ‘표현의 자유’다. 아레오파지티카는 고대 그리스의 법정인 아레오파고스에 ‘론(論)’이란 의미의 ‘카’(ca)를 덧붙여 만들어낸 말이다.
*** 실낙원 초판의 가격은 권당 3실링(20실링=1파운드)으로 결코 싸지 않았어도 2년 만에 다 팔렸다는 점은 당시 영국에서 읽을 만한 사람은 거의 다 읽었다는 얘기다. 보통 시집의 초판은 15년이 걸려도 남아 있는 경우가 많던 시대였다고 한다. 더욱이 초판 발매 시점은 대역병과 대화재의 뒤끝이었을 뿐 아니라 네덜란드 함대가 템스강에 정박한 영국 함대를 포격해 제 2차 영국-네덜란드 전쟁이 발발했던 시기였다.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히트작을 낸 밀턴의 평판도 올라갔다. 말년의 밀턴을 지탱해준 것은 이 같은 지적 자존감이 아니었을까 싶다. 유럽 수집가들이 인터넷에 올린 자료에 따르면 온전하게 남은 책은 단 5권뿐이라는 실낙원의 1667년 초판의 가격은 요즘 경매장에서 15만~20만달러를 호가한다. 실제 매매에서는 책의 상태가 안 좋았는지 알 수 없으나 지난해 12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6만8,750만달러에 낙찰된 게 가장 최근의 기록이다.
이상, 출처;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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