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살아가자/사람과 예술

펄 벅 이야기

BK(우정) 2020. 3. 2. 06:25

결혼 생활에 절망을 느껴 펜을 들다 미국 장로교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생후 3개월 만에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벅은 1910년 대학교를 다니기 위해 4년 동안 미국으로 갔다가 다시 1914년 랜돌프-매콘 여자대학교를 졸업하고 중국으로 돌아갔다. 중국에서 그녀는 미국인 농학자인 로싱 벅(John Lossing Buck)과 결혼했다.남편 로싱 벅은 자신의 일에는 열정적이었지만 가정에 충실한 남편은 아니었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딸 캐롤은 정신지체아였는데 펄 벅이 딸아이를 치료하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다닐 때 남편 로싱 벅은 아내와 딸에게 무심했다. 그녀는 자신의 결혼생활에 절망하였고 남편의 무관심, 딸로 인한 죄책감과 고통을 잊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중국인으로 반평생을 산 미국인 중국에서 성장기를 보낸 그녀는 모국인 미국보다 중국이 더 친숙하게 여겨졌다. 아버지는 선교 관련 활동에만 열중했기 때문에 집안일은 어머니가 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근본주의 기독교를 포교하는 엄격한 선교사로 활동을 하며 중국인들과 자신들의 삶을 분리했다. 하지만 중국에서의 생활은 펄 벅이 자신을 중국 사람으로 생각했을 정도로 애착을 갖게 만들었다. 그러던 중 1927년 국민군이 난징을 공격했을 때 가족이 몰살당할 뻔한 위기를 겪고 이때 그녀는 중국과 서양 사이에 채울 수 없는 균열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녀가 중국에서 오래 살았어도 중국인들에게 그녀는 낯선 서양인일 뿐이었다. 이런 그녀의 아픈 자각은 집필을 하면서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었고 펄 벅 문학의 평생 테마가 되었다.


<대지> 노벨문학상 수상 펄 벅은 문학계에 무수한 업적을 남겼다. 1925년 펄 벅은 첫 번째 소설 <동풍서풍 (EAST WIND, WEST WIND)>을 집필하였다. 미국에서 출간된 이 작품은 1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3번이나 재판을 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그 후 그녀는 1931년 그녀의 최고의 대표작인 <대지>를 발표했다. <대지>는 빈농으로 시작해 대지주가 되는 주인공 왕룽을 중심으로 왕룽의 아내 오란과 세 아들의 역사를 그린 장편 소설이다.이 작품은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았고 세계 여러 나라에 번역되고 출판되었다. 그리고 1938년 스웨덴의 노벨상 심사위원들은 그 해의 문학상으로 세계적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대지>를 선정했다. <대지>는 그녀를 그 당시 미국 여성 중 유일하게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동시에 수상한 최초의 여류작가가 되는 영광을 안겨 주었다.


사랑과 박애 정신을 몸소 실천하는 삶 펄 벅은 문학계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사업에도 무수한 업적들을 남겼다. 그녀는 미국의 인권과 여권운동에 앞장섰으며 7명의 아이들을 입양해 사랑과 정성으로 키웠다. 다문화 아동들을 위한 웰컴하우스를 미국에 설립한 후 1965년 펄벅 인터내셔널 한국지부를 설립했다. 경기도 부천시 심곡동에 <소사희망원>을 건립해 한국전쟁고아들을 손수 돌보고 교육하며 1973년에 생을 마감했다. 40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그녀는 다문화 아동들의 진정한 어머니로 여겨진다. 그녀가 실천해왔던 인종과 국적을 뛰어넘은 사랑과 박애 정신은 높이 평가된다. 한국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가난과 차별에 고통받던 아동들이 그녀가 만든 펄 벅 재단의 도움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다. 펄 벅의 이러한 헌신적인 삶은 우리에게 아직까지도 잔잔한 감동을 안겨준다.


이상, 출처; 시선뉴스

http://www.sisu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838

'알고 살아가자 > 사람과 예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릴케와... 루 살로메  (0) 2020.03.02
루 살로메... 릴케...  (0) 2020.03.02
펄 벅...과 한국  (0) 2020.03.02
밀턴  (0) 2020.03.01
실락원의 밀턴, 그리고 실락원  (0) 2020.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