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약속장소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오기로 한 상대방이 약속시간이 돼도 오지 않는다. 그 사람은 지금 어디쯤인지, 지금 오고는 있는 것인지, 오늘 올 수는 있는 것인지 당신은 아무 것도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얼마 동안이나 기다릴 수 있는가?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디야? 오고 있어?’ 하는 재촉전화를 수도 없이 하고 있는 당신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평생을 고도를 기다리며 일상을 보내는 두 주인공 블라디미르(이하 디디)와 에스트라공(이하 고고)의 이야기를 다룬다.
연극은 어느 한적한 시골길, 한 그루의 앙상한 나무만이 서있는 언덕 밑에서 디디와 고고라는 두 방랑자가 고도라는 인물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들의 기다림은 어제 오늘에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그들 자신도 헤아릴 길이 없는 아주 오래 전부터 기다림이 시작된 듯하다. 디디와 고고는 고도를 기다리는 지루하고 긴 기다림의 시간을 때우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해본다. 주머니에서 무를 꺼내 먹기도 하고, 자신의 신발을 신고 벗기를 반복하기도 한다. 고도가 오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초조함. 그리고 지루함을 극복하기 위해 끝없이 반복되는 그들의 일상은 언젠가는 고도가 올 것이라는 기대감과 희망 속에 이루어진다. 그러나 하늘이 붉게 물들고 그들의 기다림에 한계가 왔을 때 나타난 것은 고도가 아니라 고도의 전갈을 알리는 소년이다. 고도가 오늘 밤에는 오지 못하며 내일은 꼭 오겠다고 했다는 전갈만을 남기고 소년이 사라지면서 1막이 끝난다. 그리고 2막의 그 다음 날도 거의 같은 상황이 되풀이 된다.
특별한 무대장치도, 극적인 사건도 없는 이 너무나도 단순하고 기이한 무대에 관객들은 당황하면서도 배우들의 끊임없이 반복되는 대사와 동작을 통해 시종 신선한 즐거움을 경험한다. 연극이 계속 진행되며 관객들은 ‘도대체 고도는 언제 나오는 거야?’ 하는 의문을 갖는다. 그러나 관객들은 생각한다. 기다림의 연속이었던 1막이 다시 2막으로 이어지고, 그 2막 또한 기다림의 연장인 이 무대는 어쩌면 3막이 있다 해도 기다림의 상황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이다. 막이 아무리 길게 이어져도 고도는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관객은 예감한다. 연극의 제목에도 등장하고, 모든 연극의 흐름이 고도 중심으로 흘러가는데, 정작 고도는 등장하지 않으니 이리도 역설적일 수가 없다. ‘고도’라는 인물은 실존하는 인물인지,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언제 올지는 결국 아무도 모른다. 고도가 등장하지 않았기에 이 극은 더 큰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닐까 싶다.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의 원작자 사뮈엘 베케트는 ‘고도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다’라고 답한 것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고도가 누구인지 해석하는 것은 오롯이 관객의 몫으로 남아있다. 고고와 디디, 그들은 무엇을 위해 고도를 기다리는 것인가? ‘기다린다’는 행위는 상대방에 대한 환영의 의미가 전제로 깔려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연극에서의 고도는 디디와 고고에게 반가운 존재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인가? 그것에 대한 해석 또한 관객의 몫이다.
이상, 출처; 독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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