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살아가자/사람과 예술

도스토옙스키와 안나

BK(우정) 2020. 3. 1. 08:12

도스토옙스키가 도박판을 기웃거리며 그토록 꿈꾸던 인생 역전이 드디어 실현됐다. 행운의 여신은 실제로, 그러나 도박판이 아닌 매우 기묘한 다른 경로를 통해 그를 찾아왔다. 1866년 10월 4일 오전 11시 30분, 젊은 속기사 안나 스니트키나는 새로 산 서류 가방을 들고 알론킨 주택 13호의 벨을 눌렀다. 상인과 수공업자들이 주로 사는 허름한 셋집이었다. 잠시 후 나타난 유명 작가는 몹시 창백하고 늙어보였지만, 대화가 시작되자 금방 활기를 되찾았다. 작가는 앳된 속기사가 영 미덥지 않아 보였던지 시큰둥한 태도로 잡지의 한 대목을 구술했다. 속기사는 무뚝뚝하지만 어딘지 따뜻하고 진솔한 작가가 마음에 들었다. 도스토옙스키와 안나의 ‘역사적인 만남’은 이렇게 소소하게 시작됐다.  두 사람은 다음날부터 매일 정오에 만나 오후 4시까지 작업했다. 작가가 줄담배를 피워가며 머릿속의 내용을 구술하면 속기사가 속기로 받아 적고 집에 돌아가 인쇄 전지에 정서해 다음날 가져오는 식이었다. 쉬는 시간이면 작가는 속기사에게 자신의 인생 스토리를 들려주었다.   


도스토옙스키가 속기사와 작업을 하게 된 데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 이야기는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65년에 도스토옙스키는 형한테 물려받은 빚 중 3000루블을 당장 갚아야만 할 처지에 놓여 있었다. 채권자들은 그를 감옥에 처넣겠다고 협박했다. 하는 수 없이 야비하기로 이름 높은 출판업자 스텔롭스키와 계약을 맺었다. 1866년 11월 1일까지 새 장편 소설원고를 출판사에 넘기면 출판사는 작가에게 3000루블을 지불하고 그동안 발표한 작품들을 모아 전집으로 출간해준다는 내용이었다. 계약 불이행시 향후 9년간 작가가 쓰는 모든 것의 판권을 인세 지불 없이 출판사가 소유한다는 조항이 붙어있었다.


도스토옙스키는 선불로 받은 3000루블 대부분을 빚 갚는데 쓰고, 조금 남은 돈은 비스바덴 도박장에서 다 날려버렸다. 해가 바뀌고 마감 날짜는 다가오는데, 그 사이 연재가 시작된 ‘죄와 벌’에 완전히 얽매여서 계약한 소설은 구상만 했을 뿐, 한 줄도 쓰지 못했다. 달력은 이미 10월로 넘어갔다.  친구의 절망적 상황에 경악한 밀류코프가 마음씨 착한 문우들을 소집했다. 밀류코프 자신과 마이코프, 그리고 돌고모스티예프가 한 챕터씩 쓰면 도스토옙스키가 문장을 다듬고 수정 보완한다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이 실용적인 계획은 도스토옙스키의 단호한 거절로 무산됐다. “절대로 다른 사람이 쓴 글에 내 이름을 올릴 수는 없어!”  
 
속이 탄 밀류코프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속기사 고용을 제안했다. 유명한 올힌 교수의 수제자 스니트키나 양이 중차대한 작전의 주역으로 발탁되어 즉시 작가의 집을 방문했다. 처음에는 이런 식의 작업방식에 반신반의했던 도스토옙스키도 인쇄 전지가 쌓여가자 차츰 자신감을 찾아갔다. 10월 29일에 그들은 마지막 구술 작업을 했다. 장편 소설 한 권이 26일 만에 완성됐다. 집필 과정이 얼마나 드라마틱했던지 ‘도스토옙스키 인생의 26일’이란 제목의 영화까지 만들어졌다. 하지만 사악한 계약서는 끝까지 작가의 속을 태웠다. 작가는 마감 날인 11월 1일 최종 원고를 가지고 출판사를 찾아갔다. 그러나 사장은 “출장 중”이어서 만날 수가 없었고, 직원은 “사장에게 지시받은 일이 없다”며 원고 접수를 거부했다. 뛰다시피 지구 경찰서를 찾아갔더니 서류 담당자는 외근 중이었다. 도스토옙스키는 식은 땀을 줄줄 흘리며 밤 10시까지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마침내 담당자가 오고 원고는 계약 만료 2시간 전에 공식적으로 접수됐다. 이렇게 작가의 피를 말려가며 빛을 본 소설이 바로 『도박꾼』이다. 생생한 현장 체험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소설이다. 문학사상 가장 졸속으로 쓰인 장편이라지만, 완성도는 그다지 떨어지지 않는다.


속기사 스토리의 핵심은 계약 이행이 아니다. 바로 도스토옙스키와 속기사의 결혼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원고를 넘기고 1주일 후 안나에게 청혼했고, 안나는 기다렸다는 듯 이를 승낙했다. 이듬해 2월 15일, 46세 소설가와 21세 속기사는 시내 트로이츠키 성당에서 조촐하면서도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이 결혼은 도스토옙스키 인생에서 일어난 가장 행복한 사건이었다. 아니, 조금 과장을 보탠다면 인류 역사상 가장 행복한 결혼 중 하나였다. 그들은 부부이자 연인이자 친구였고, 고단한 인생 전투의 투쟁 동지였다. 빈곤도 질병도 중독도 그 밖의 온갖 시련도, 그들은 함께 이겨냈다. 도스토옙스키는 원래 ‘가정 지상주의자’(!)였다. 그의 이상은 언제나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아내와 함께 아이들을 키우며 오순도순 사는 소박한 삶이었다. 안나와의 결혼은 그가 갈망했던 “인생 최대의 행복이자 유일한 행복”을 실현시켜주었다. 그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환경에서 “위대한 장편의 시대”로 들어갔다.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에는 빚을 다 청산하고 심지어 시골에 조그마한 전원주택도 한 채 장만했다. 도박 중독은 4년 후  완치되었고 간질 발작도 말년에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도스토옙스키가 세상을 하직하자 부인은 37년의 여생을 오로지 남편의 문학을 기리는 일에 투신했다. 그녀가 남편 생전에 속기로 써두었던 메모를 정리하여 펴낸 회고록 『회상』(우리말 번역본 『도스또예프스끼와 함께한 나날들』)은 도스토옙스키의 사생활에 대한 가장 소중한 자료다. 안나 스니트키나는 화목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평범한 아가씨였다. 아버지를 비롯한 온 가족이 도스토옙스키의 애독자라는 것 외에 그녀가 대문호의 부인이 될 징후는 조금도 없어 보였다. 그런데도 천재 작가는 그녀를 언제나 “나의 천사, 나의 유일한 행복이자 기쁨”이라고 불렀다. “나의 모든 미래이자 희망과 신념 그리고 행복과 축복, 그 모든 것”이라 불렀다. 부인 또한 남편을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 내 생의 행복과 기쁨과 자랑이 되었던 사람, 나의 태양이요 나의 신인 그런 사람”이라고 불렀다. “14년간의 결혼 생활 내내 우리 두 사람은 지상에서 가능한 최고의 행복을 누리며 살았다.” 시쳇말로 ‘닭살 부부’다. 무엇을 어떻게 하면 이런 관계가 가능할까. 안나 자신도 의아해 했다. “나는 특출한 미인도 아닌데다가 천부적인 재능도 없고 지적 수준도 특별하지 않았다. 그런데 너무나 지적이고 천재적인 사람으로부터 깊은 존경과 거의 숭배에 가까운 대접을 받았다.”   


결혼의 행복과 불행은 부부 모두의 책임이다. 그러나 도스토옙스키의 경우, 연구자 거의 전원이 부인 안나에게 공로를 돌린다. 안나는 도스토옙스키 인생에서 가장 “센 여성”이었다. 나이도 성별도 교육도 다 초월하는 타고난 어떤 우직함으로, 그녀는 자기보다 나이가 25살이나 많은 천재 작가의 인생을 단박에 “평정”했다. 그녀는 마지막 사랑이자 궁극의 사랑이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안나는 웬만한 일에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삶에서 일어나는 온갖 변화와 불행을 꿋꿋하게 견뎌냈다. 대문호는 이 착하고 강인한 여성에게 언제나 ‘충성’을 다짐하며 행복하게 살다가 죽었다. 안나 부인은 자신이 지적으로 많이 뒤처진다며 겸손해 했지만, 다른 의미에서 대단히 현명했다. 섣불리 남편의 영역에 밀치고 들어가지 않는 게 답이라는 것을 알만큼 현명했다. 그녀는 남편의 천재성과는 다른 자기만의 영역, 자기만의 장점을 일관되게 유지했다. “인간 정신의 심오한 문제들에 관해 혼자서 오랫동안 생각하곤 했던 표도르 미하일로비치는 내가 자신의 정신세계에 개입하지 않는 점을 높이 샀다. 그래서 가끔씩 내게 ‘당신은 여자들 중에서 나를 이해한 유일한 사람이야!’라는 말을 하곤 했다.”  
 
두 사람은 이를테면 ‘벽’을 가운데 두고 함께 살았다. 다른 커플에게 벽은 불통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벽이 두 사람에게는 한 차원 높은 소통이었다. “나는 언제나 그 벽에 기댈 수 있다고, 아니 더 정확하게 의지할 수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 벽은 나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살아나게 했다.” 이는 “부부 일심동체”를 외치면서도 평생 싸움만 했던 톨스토이 부부와 비교된다. 안나 부인의 연민도 행복한 결혼의 원동력이었다. 도스토옙스키는 직관적으로 부인의 본성을 꿰뚫어보았다. “안나는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고 사람을 사랑할 줄 알고 있소.” 부인은 그와 구술 작업을 할 때부터 “지적이고 선량하지만 모든 이에게 버림받은 것 같은 불행한 사람”에게 “깊은 연민과 동정의 감정”을 느꼈다.  
 
한 가지 에피소드만 예로 들어보자. 결혼식을 치른 후 도스토옙스키는 첫 번째 결혼 때처럼 심한 간질 발작을 일으켰다. 이번에는 하루에 두 번이나 그랬다. 너무 흥분한데다 분위기에 휩쓸려 샴페인을 몇 잔 거푸 마신 것이 원인이었다. 안나 부인의 태도는 놀라웠다. “난생 처음 간질 발작을 보았음에도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나이 어린 신부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대신 쓰러져 입에 거품을 물고 경련을 일으키는 늙은 남편을 끌어안았다. 더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에 나오는 여성은 대개 첫 부인 마리야 아니면 수슬로바를 모델로 한다. 그러나 안나 부인을 모델로 하는 여성 주인공은 없다. 상관없다. 그녀는 ‘도스토옙스키의 삶’, 그 가장 극적인 드라마 속 여주인공이었으니까. ●


이상, 출처; 중앙일보

https://news.joins.com/article/2276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