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살아가자/사람과 예술

요한 세바스찬 바흐, 음악

BK(우정) 2019. 6. 1. 01:40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악기를 익히고 궁정악단에서 연주와 지휘를 맡았던 요한 세바스찬 바흐.  그는 교회음악가로 활동하면서 바로크 음악을 대표하는 수많은 곡을 남겨서 '음악의 아버지'라 불렸다. (바로크 음악; 유럽을 중심으로 16세기 말에서 18세기 중기에 이르는 약 150년간의 음악).  바흐에 대한 찬사 중에 베토벤의 말이 인상적이다.  바흐의 이름이 '시냇물'이라는 뜻에 빗대어 베토벤은 “그는 시냇물이 아니라 크고 광활한 바다라고 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서양음악의 바로크 시대는 1750년 바흐의 죽음으로 마감될 정도로 바흐는 서양음악사의 절대적인 존재이다.  이 절대성은 서양음악과 기독교의 관계에서 이루어진다.  그는 평생 교회를 벗어나지 않고 신탁을 받은 사제처럼 음악에 몰두했다.  그래서 "그의 소리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신의 명성에 오른 것"이라고 바흐의 전기를 쓴 슈바이처 박사는 말했다.  바흐는 음악에서만 바다처럼 풍요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는 두 부인에게서 스무 명의 자식을 둔 아버지이기도 했다.  더불어 바흐 집안은 약 200여 년에 걸쳐 50명 이상의 음악가를 배출한 음악 가족이었다. 


1685년 독일 튀링겐주 아이제나흐에서 요한 암브로지우스의 8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거리의 악사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바이올린과 오르간을 익혔다. 궁정악단에서 연주와 지휘를 하고, 교회음악가로 활동하면서 바로크 음악의 대표적인 곡들을 많이 남겼다.  바흐가 태어난 아이제나흐의 성 게오르크 교회의 옛 문서에 1685년 3월23일에 세례를 받았다고 기록된 것을 근거로 바흐의 탄생일은 3월 21일로 추측하고 있다.  이후, 바흐의 음악인생은 그가 살았던 장소에 따라 대별된다.  즉 아르슈타트과 뮐하우젠 시대, 바이마르 시대, 괴텐 시대,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고 만년의 걸작들을 만들었던 라이프치히 시대이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바흐는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음악가로서 취직을 해야만 했다.


바흐는 쾨텐 시대(1717~1723)와 라이프치히 시대(1723~1750)에 왕성한 활동을 했다.  바흐와 더불어 헨델은 항상 같이 거론되는 바로크 시대의 거장들이다.  바흐는 일찍부터 헨델의 작품을 알고 그를 높이 평가했는데,  헨델이 런던에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1719년 10월에 헨델의 고향인 할레에 갔으나 헨델이 떠난 뒤여서  결국 이 두 거장은 평생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헨델은 바흐와 더불어 서양 음악의 어머니라고 불린다. 


1749년 5월 뇌일혈 발작과 함께 그의 시력은 급속하게 감퇴되어 그 뒤로 직접 곡을 쓰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작곡 중이던 대작 '푸가의 기법'이 중단되고 미완성인 채로 남겨진다.  1750년 3월 말부터 4월에 걸쳐 두 차례의 눈 수술을 받았으나 성공하지 못해 끝내 바흐는 시력을 잃고 말았다.  1750년 7월 28일 오후 8시45분에 세상을 떠나, 성 요한 교회의 묘지에 안장되었다.


평론가들은 그를 '작업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평생 교회에 머물면서 묵묵히 오선지에 신의 음성을 기록한 삶이었다.  식물들도 바흐의 음악을 들으면 잘 자란다고 한다.  그는 생전에 1등이 아니라 2등이었다.  항상 경건하고 소박하게 자신의 일을 다 했다.  예술가의 삶은 그의 이름으로 사후에 평가된다는 전범을 바흐는 21세기의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평가는 기다리는 것이다.


- 독일 작곡가 (인물세계사, 원재훈)

- 두산 백과 등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Brandenburg Concertos


바흐 음악에서 관현악의 기틀이 되는 작품이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이다. 1718년에서 1721년에 걸쳐 쾨텐에서 궁정악단을 위해 쓰여졌으며, 1721년 브란덴부르크백작 크리스티안 루트비히에게 바쳐졌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이름이 붙었다.  여기에는 그 어떤 모음곡보다 다양한 분위기의 곡들이 들어 있다. 악기 편성이 같은 협주곡은 단 한 곡도 없으며, 그 결과 음색의 폭이 전례가 없을 만큼 넓다. 거기에 스타일과 연주의 차이가 더해지면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그래서인지 전곡 녹음 음반마다 각기 다른 연주자의 개성을 맛볼 수 있다.


양식적으로는 제1번(바장조) ·제2번(바장조)이 합주협주곡, 제3번(사장조) ·제6번(내림나장조)이 콘체르토 심포니아이며, 제4번(사장조) ·제5번(라장조)은 보다 새로운 독주 협주곡에 접근하고 있다.


-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클래식 1001, 2009. 6. 1., 매튜 라이, 스티븐 이설리스, 이경아, 이문희

- 두산 백과


19세기 낭만주의 음악가들이 ‘교향곡’을 통해 그들의 음악적 야심을 펼쳤다면, 17·18세기 바로크 음악의 거장들은 협주곡으로 작곡 기법을 시험했다. 아마도 협주곡으로 가장 명성을 얻은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는 500여 곡의 훌륭한 협주곡을 남긴 안토니오 비발디일 것이다. 하지만 협주곡의 대가 비발디도 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에서 구현해낸 음향의 다양성을 따르지는 못했다.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은 바흐가 남긴 협주곡들 가운데서 최대 걸작일 뿐 아니라 '합주 협주곡'이란 유형으로 분류되는 협주곡 가운데서도 최고의 경지에 오른 작품으로 평가된다.  ‘합주 협주곡’이란 바로크 시대의 여러 협주곡들 가운데 한 가지 형태로, 독주자가 여러 명 등장하기 때문에 오늘날의 음악회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협주곡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흔히 협주곡은 ‘독주 악기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하는 기악곡’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이런 정의는 주로 고전주의 시대 이후의 음악에 주로 통용되며 그 이전의 음악, 즉 바로크 시대의 음악에 있어서는 협주곡의 종류만도 ‘관현악 협주곡’(orchestral concerto), ‘합주 협주곡’(concerto grosso), 독주 협주곡(solo concerto) 등 다양하다.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은 독주 그룹과 합주 그룹이 대비되는 ‘합주 협주곡’으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작품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단지 합주 협주곡 유형으로 한정할 수 없는 여러 가지 특징들이 나타나고 있어 흥미롭다. 무엇보다 이 작품에 바흐 당대에 사용 가능한 거의 모든 악기편성이 다 동원되었다는 점은 놀랍다. 악상의 다양함과 화려함도 대단하지만, 트럼펫과 플루트, 오보에, 바이올린이 독주 악기로 사용되는 제2번이나 바이올린 파트가 완전히 빠져 버린 제6번 등, 상상을 초월하는 악기 편성법이야 말로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의 특별한 점이다.  이 바흐의 여섯 곡의 협주곡들이 ‘브란덴부르크’라는 명칭을 갖게 된 것은 1721년에 바흐가 이 작품들을 브란덴부르크 공 크리스티안 루트비히에게 바쳤기 때문이다. 음악 애호가인 브란덴부르크 공은 바흐에게 작품을 의뢰하였는데, 바흐는 쾨텐 공의 궁정 악단을 위해 작곡해두었던 6곡의 협주곡을 정리해서 브란덴부르크 공에게 헌정하기로 했다. 브란덴부르크의 크리스티안 루트비히 공은 바흐의 협주곡들을 몹시 마음에 들어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협주곡들을 연주하려면 여러 가지 악기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브란덴부르크 궁정악단의 멤버들만으로 이 곡을 연주할 수 없었다.


- 클래식 명곡 명연주, 최은규

'알고 살아가자 > 사람과 예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J.S.바흐, Orchestral Suites 1 & 2 (3, 4)  (0) 2019.06.05
회화의 종류, 추상 미술  (0) 2019.06.02
함민복 시인, 그리고 시  (0) 2019.05.20
종교 개혁에 관하여  (0) 2019.05.05
젤다 피츠제럴드  (0) 2019.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