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여행, 어디론가

위안

BK(우정) 2022. 6. 11. 07:26

 

언제이던가,

6월 이 무렵 우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요세미티를 향하였다

 

 

산으로 가면 나무가 된다

빛을 안고 하늘로 오른다

산으로 가면 물이 된다

순응하며 계곡을 흐른다

산으로 가면 바람이 된다

잎새와 풀잎을 연주한다

산으로 가면 영혼이 된다

몸은 두고 마음이 걷는다

 

 

 

그리고, 우린

더 북동쪽으로

호수가 있는 마을까지

깊이 더 깊이, 들어갔다

 

 

술을 사고, 호수 옆, 숲 아래~

이름 모를 마을에 은둔하였다

 

 

.

.

 

 

멀리 떠나왔고 깊이 들어온 날

세상 모르게 잊혀져 보자

네가 아는 나도 내가 아는 나도

세상 어디에도 없다

시간도 공간도 오지 않는 곳

숲 속 한 그루 나무로 서서

바람에 흔들리고

이슬에 젖을 뿐

한 줄기 바람결 닿은 적 있으랴

한 방울 밤이슬 젖은 적 있으랴

잃을 건 잃고 줄 건 주고

본성만 남은 중년의 사내가

생각하다가 헛웃음 짓다가

밤보다 검은 눈을 껌벅이며

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있을 뿐

 

 

.

.

 

 

오두막에서의 하룻밤

어제 저녁과 오늘 아침의 풍경~

빛만이 달랐다

 

가라앉는 빛과 일어서는 빛

 

.

.

 

 

하루가 가는 시간, 늘 그렇듯이

해는 붉게 넘어가고

황혼인 듯 풍경도

낮게 가라앉는다

하루가 오는 시간

늘 그렇듯이

해는 밝게 떠오르고

청춘인 듯 풍경도 다시 일어선다

.

.

 

 

그리고 떠났다

들판과 호수, 저 푸른 하늘

사막을 향하여~

자유이다

 

 

 

흐르자, 강이 되어

구름이 되어

바람이 되어

시간이 되어

 

몸이 지쳐 휘청이면

후일 앓아 누우면 되고

일이 밀려 쌓이면

후일 밤을 새우면 되고

주머니가 비워지면

후일 땀 흘려 채우면 되고

그리운 이가 멀어지면

후일 더 사랑하면 되고

 

마시자, 한 순간의 웃음

한 시절의 꿈

한 조각의 미련

한 잔의 술

 

우린 그렇게

캘리포니아를 섭렵하여 갔다

 

 

 

바람처럼

경계없이 방향없이 흐르고

이슬처럼

미련없이 흔적없이 가고 싶다

 

보이는 대로 보고

느끼는 대로 느끼고

마음가는 대로 걷고

시간가는 대로 가고 싶다

 

나 떠나는 날 네가

너무 슬퍼하지도 않고

너무 절망하지도 않고

잠시 이별이 아쉬워서

먼저 가서 기다리라는 듯 가고 싶다

 

나 떠난 후 네가

눈 오는 날 춥지 않은 쓸쓸함으로

비 오는 밤 아프지 않은 그리움으로

엷게 미소 짓는 입가의 커피 한 잔

그런 기억으로 가고 싶다

 

바람처럼

자유로이 시공을 흐르며 살고

이슬처럼

티없이 짧게 빛나는 모습으로 가고 싶다

 

위안

 

고독과 적막은 있어도

좌절은 없다

벗,

그리고 자연이 있으니

 

벗이 꼭 사람이어야만 할

이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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