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을 따라/뚜벅이의 하루

브라티슬라바를 걷다 ~

BK(우정) 2021. 3. 13. 15:36

브라티슬라바

 

 

10년전쯤이던가?

어느 겨울비 내리던 날

눅눅하게 내리던 날의 기차

비엔나에서 부다페스트로 가던 중

즉흥적으로 잠시, 내렸다

오후, 서너시간을 머무르려다가, 결국은

부다페스트를 하루 뒤로 미루었다

그저, 고즈넉함, 침묵이 좋았던 도시

 

 

 

그 느낌은

어린 시절, 한겨울 동네의 골목 어귀

놀아줄 친구가 없었던 그 날

쓸쓸하면서도 평온하던~ 그 기분

 

참, 오래도록 남았다

 

 

 

비가 내려도

사람들은 우산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우산을 접었다

 

비 오는 거리에 서면

온통 마음이 젖는 이들

맘 속에 묻힌 응어리들이

빗물에 젖어 쓸려 나오는

그 쓸쓸한 표정들에서

닮은 표정을 찾고 있는데

 

차가운 비는 더욱 더 내려

왜소한 이들의 마음을

밑바닥까지 헤집어 내고

나 또한 다를 바 없이

석조 지붕 아래

그 쓸쓸함을 맞고 있는데

 

잠시나마 갈 곳을 잃고

바라만 보는 거리

쓸쓸함이 두려운 이들은

등불을 찾아 들어가고

거리에는 젖은 낙엽마냥

젖은 이들만 머무르는데

 

그래도 비는 마냥 내리고

더 젖을 수 없는 몸과

더 젖을 수 없는 마음

그렇게 젖어버린 이들은

홀로 혹은 여럿으로

빗속, 어딘가로 떠나는데

 

 

 

체코슬로바키아의 분리

체코는 발 빠르게 움직여

개혁과 관광의 도시가 되었지만

슬로바키아에는 여전히

구시대의 매력

동유럽의 묵은 풍미가 남아있다

그리고

지하의 펍, 하우스 비어~

 

 

 

이제는 동유럽도

맛의 느낌이 다르다

 

화려한 맛이

프라하라면

깊은 맛은

브라티슬라바이다

 

화려한 맛은

시시각각으로

변해가야 좋지만

 

깊은 맛은

은둔과 침잠으로

머무를수록 좋다

 

깊은 동유럽은

더 깊이 숨어있다.

.

.

 

 

2년전, 나는

브라티슬라바를 걷기 위해

의도적으로, 비엔나발 부다페스트행

기차를 탔다

 

브라티슬라바, 2년전

 

 

 

브라티슬라바를 찾는 이들은

기차역에서 올드 타운을 향하여

차량으로 급히 움직이지만

한시간 남짓 걸어가는 길

그저 밋밋한 마을, 나무, 집들

생활과 일상, 사연들의 모습

우리네 같은 삶의 풍경이기에

외려, 오래도록 남을 듯 하다

 

 

 

그런데, 나는

이 거리, 이 느낌이

왜 그리도 그리웠을까

 

 

 

닿을 수 없는 풍경이 아름답듯이

그리운 이가 있음도 좋은 일이다

소나기가 길손 마냥 지나간 오후

떠난 너를 웃음 속에 그리워한다

 

그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

그 시절 추억들은 가슴속에 있나

바람에 흐르는 구름으로 떠난 너

시간의 강가에서 잊혀져 가는 너

 

혼자라서 익숙해진 텅 빈 곳에서

멀리 보이는 풍경에 너를 앉히고

한바탕 퍼붓고 간 비구름과 같은

젊은 날을 웃음 속에 그리워한다

 

 

 

여행

 

옆을 볼수록

돌아설수록

멈출수록

 

속살로 더 깊이 들어간다

 

 

새로운 고장에 오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풍경과 삶을 접한다

 

새로울 것 없이

낡아만 가는 이 나이에

이 때만은 다시 새로워진다

 

내가 바라보는 신비한 세상

나를 바라보는 신선한 눈빛

 

새로운 날

새로이 태어난 기분

오늘 나들이는 유쾌하다

 

그림이 된 사진

 

 

10년의 세월

주점은 그대로이고

내 모습만 변했네~

 

아, 벽장식과 테이블의

위치가 바뀌었네

 

 

보고픔도 잊고픔도 아픔이라면

기억의 창고를 만들 수 없을까

 

보고플 때

꺼내어 들여다 보고

잊고플 때

깊숙이 밀어 넣으면

 

보고플 때와 잊고플 때를

가리지 않는

기억의 짓궂음을 피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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