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티슬라바
10년전쯤이던가?
어느 겨울비 내리던 날
눅눅하게 내리던 날의 기차
비엔나에서 부다페스트로 가던 중
즉흥적으로 잠시, 내렸다
오후, 서너시간을 머무르려다가, 결국은
부다페스트를 하루 뒤로 미루었다
그저, 고즈넉함, 침묵이 좋았던 도시
그 느낌은
어린 시절, 한겨울 동네의 골목 어귀
놀아줄 친구가 없었던 그 날
쓸쓸하면서도 평온하던~ 그 기분
참, 오래도록 남았다
비가 내려도
사람들은 우산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우산을 접었다
ㆍ
ㆍ
비 오는 거리에 서면
온통 마음이 젖는 이들
맘 속에 묻힌 응어리들이
빗물에 젖어 쓸려 나오는
그 쓸쓸한 표정들에서
닮은 표정을 찾고 있는데
차가운 비는 더욱 더 내려
왜소한 이들의 마음을
밑바닥까지 헤집어 내고
나 또한 다를 바 없이
석조 지붕 아래
그 쓸쓸함을 맞고 있는데
잠시나마 갈 곳을 잃고
바라만 보는 거리
쓸쓸함이 두려운 이들은
등불을 찾아 들어가고
거리에는 젖은 낙엽마냥
젖은 이들만 머무르는데
그래도 비는 마냥 내리고
더 젖을 수 없는 몸과
더 젖을 수 없는 마음
그렇게 젖어버린 이들은
홀로 혹은 여럿으로
빗속, 어딘가로 떠나는데
체코슬로바키아의 분리
체코는 발 빠르게 움직여
개혁과 관광의 도시가 되었지만
슬로바키아에는 여전히
구시대의 매력
동유럽의 묵은 풍미가 남아있다
그리고
지하의 펍, 하우스 비어~
이제는 동유럽도
맛의 느낌이 다르다
화려한 맛이
프라하라면
깊은 맛은
브라티슬라바이다
화려한 맛은
시시각각으로
변해가야 좋지만
깊은 맛은
은둔과 침잠으로
머무를수록 좋다
깊은 동유럽은
더 깊이 숨어있다.
.
.
2년전, 나는
브라티슬라바를 걷기 위해
의도적으로, 비엔나발 부다페스트행
기차를 탔다
브라티슬라바, 2년전
브라티슬라바를 찾는 이들은
기차역에서 올드 타운을 향하여
차량으로 급히 움직이지만
한시간 남짓 걸어가는 길
그저 밋밋한 마을, 나무, 집들
생활과 일상, 사연들의 모습
우리네 같은 삶의 풍경이기에
외려, 오래도록 남을 듯 하다
그런데, 나는
이 거리, 이 느낌이
왜 그리도 그리웠을까
닿을 수 없는 풍경이 아름답듯이
그리운 이가 있음도 좋은 일이다
소나기가 길손 마냥 지나간 오후
떠난 너를 웃음 속에 그리워한다
그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
그 시절 추억들은 가슴속에 있나
바람에 흐르는 구름으로 떠난 너
시간의 강가에서 잊혀져 가는 너
혼자라서 익숙해진 텅 빈 곳에서
멀리 보이는 풍경에 너를 앉히고
한바탕 퍼붓고 간 비구름과 같은
젊은 날을 웃음 속에 그리워한다
여행
옆을 볼수록
돌아설수록
멈출수록
속살로 더 깊이 들어간다
새로운 고장에 오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풍경과 삶을 접한다
새로울 것 없이
낡아만 가는 이 나이에
이 때만은 다시 새로워진다
내가 바라보는 신비한 세상
나를 바라보는 신선한 눈빛
새로운 날
새로이 태어난 기분
오늘 나들이는 유쾌하다
10년의 세월
주점은 그대로이고
내 모습만 변했네~
아, 벽장식과 테이블의
위치가 바뀌었네
보고픔도 잊고픔도 아픔이라면
기억의 창고를 만들 수 없을까
보고플 때
꺼내어 들여다 보고
잊고플 때
깊숙이 밀어 넣으면
보고플 때와 잊고플 때를
가리지 않는
기억의 짓궂음을 피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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