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삶/그날, 거기에는

애들레이드에서의 날들 ~

BK(우정) 2021. 3. 13. 05:24

단기간의 여행이나 출장이 아닌

나름 짧지 않은ᆢ외국 생활은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의 추억이 있는

호주의 남쪽, 애들레이드에서였다

이국적인 생활의 신선함과 함께

홀로 있었던 외로움도 컸다

 

 

그림이 된 사진

 

삶은

행복과 불행이 어우러지는 것

불행이 행복을 덮는 날이 오더라도

그 위를 또 다른 행복으로 덮으며

잊은 채 살아가는 것

 

완전한 행복을 바라지 말자

영원한 생명을 구하는 것과

그 무모함이 다름 없을지니

 

다만

외롭고 힘겨운 날이 오더라도

묵묵히 참고 견디어가면

또 다른 행복이 오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살다보면

행복도 불행도 어우러져서

여러 꽃들로 덮인 화단처럼

어우러짐 자체로 아름다우며

세월이 지나면 그리워질 터이니

 

그림이 된 사진

 

 

사랑은 투명하여 보이지 않아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네

 

웃음으로 눈물로

포옹으로 입맞춤으로

가까이서 오는 숨결로도

멀리서 오는 그리움으로도

 

사랑은 수줍어하여 나서지 않아

요기조기에 숨어 있네

 

눈동자에 가슴 속에

동화 속에 낙엽 아래에

가까이 머무는 바람결에도

멀리 떠가는 구름 위에도

 

사랑은 조용하여 소란하지 않아

낮은 소리로 속삭이네

 

눈빛으로 손길로

현의 떨림으로 오르골 울림으로

가까이서 들리는 노래로도

멀리서 흐르는 메아리로도

 

 

애들레이드를 다시 찾았다

 

20대의 젊은 꿈이 머물러 있는 곳

두고 온 아내와 딸을 그리워하며 지낸 곳

젊은 날의 꿈과 홀로의 고독이

훈장이 되고 상처가 되어 가슴 깊이 남아있는 곳

 

20대 후반, 애들레이드에 발을 딛던 날

하늘은 높고 높았고, 숲은 푸르고 푸르렀다

남반구의 모서리

그 이국적인 하늘 아래에서 얼마나 설레었던가

 

짙은 갈색, 바로크 양식의 기숙사

유럽풍의 대학 캠퍼스, 푸른 눈의 친구들

이국적인 거리, 노상 카페에서의 카푸치노

끝없는 초원 위에 깊게 뿌리내린 아름드리 나무들

바로사 벨리의 와이너리, 넓게 펼쳐진 포도나무 벌판

 

외로움이 넘칠 때 습관처럼 찾아간 곳들

헨리 비치, 빅터 하버의 바닷가, 한도프 거리…

고독을 벗삼아 브리티쉬 바에서 만취한 다음 날

무작정 향한 여행지들

플린더스 레인지, 포트 오거스타, 마운트 갬비아…

 

지난 25년 동안 애들레이드의 경험과 추억은

가슴 저편에 그리움으로 아픔으로 머물러 있었다

 

50대가 훌쩍 너머

아내, 딸과 함께 애들래이드를 다시 찾았다

 

애들레이드의 풍경과 거리는 그대로였다

애들레이드의 언덕과 바다는 그대로였다

젊은 날의 꿈들은 이루어지고 있는가

가슴을 누르던 외로움들은 어디로 갔는가

 

빅토리아 스퀘어를 달리는 그레넬그 전차를 보며

런들 스트릿에서 즐거워하는 아내와 딸의 뒷모습을 보며

 

담배 한가치를 문다

담배 연기를 길게 뿜는다

하늘로 올라 구름이 된다

모든 꿈과 외로움은 시간이 되어 흘러가는 듯 하다

 

소중한 것들을 두고 온 듯 하여 찾아간 곳

무언지 모를 아련함과 그리움이 머물던 곳

이제는 허허로이 뒷모습을 보이며 돌아서는 곳

 

귀국 비행기에 오르며 생각한다

이제 애들레이드는 여러 도시들 중의 하나로 남으리라고

 

나 이제 애들레이드를 그리워하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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