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살아가자/사람과 예술

잉게보르크 바흐만

BK(우정) 2020. 4. 10. 17:07

실연한 사람은 '버림받은 악기'다. 더 이상 선율을 연주하지 못한 채 구석에 처박힌 악기라니! 사랑의 황홀경과 충일감에서 내쳐질 때, 그것이 어느 한쪽의 결정일 때 실연당한 자는 속수무책으로 사랑에 매달려 "설명해줘요. 내게, 사랑이여, 설명할 수 없는 것을, 그 소름 끼치는 시간을"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라는 시구로 유명한 여성 작가 잉게보르크 바흐만(1926~1973)이 그랬다.

바흐만은 작가 막스 프리슈와 사랑을 하다가 헤어졌다. "사랑을 위하여/차린 식탁을 바다에 뒤엎고/잔에 남은/포도주를 바다에 버리고 빵은 물고기에게 주어야 한다./피 한 방울/뿌려서 바닷물에 섞고/나이프를 고이 물결에 띄우고/신발을 물속에 가라앉혀야 한다" 같은 시가 실연의 시름에서 빚어졌다. 빵과 포도주는 삶의 양식이자 기쁨인 것! 사랑을 잃은 자는 그것마저 버리고 돌아올 것을 기약하지 않은 채 떠난다.


바흐만은 오스트리아 남부 클라겐푸르트에서 태어나 빈과 인스부르크 등의 대학에서 법학과 언어철학을 공부했다. 20대 때 방송국에서 스크립터나 편집자로 생계를 꾸리며 오직 시에 헌신하려고 메마른 날을 견뎠다. 1953년 첫 시집 '유예된 시간'을, 1956년 두 번째 시집 '큰곰자리의 부름'을 펴냈다.

서른 살 무렵 나폴리와 로마에 머물며 기념비적인 첫 소설집 '삼십세'를 써나간다. 나는 문장 전부를 외우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삼십세'라는 소설집으로 바흐만과 만났다. '말리나'와 '만하탄의 선신(善神)'을 잇달아 읽었다. 1980년대 내가 꾸리는 출판사에서 바흐만의 소설 '죽음의 방식'과 시선집 '소금과 빵'을 펴냈다.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시인 파울 첼란이 1970년 파리의 센 강에 뛰어들어 자살했다. 그를 사랑하던 바흐만은 큰 비통에 잠긴 채 "내 삶은 끝났다. 그가 강물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내 삶이었다. 나는 그를 내 목숨보다 더 사랑했다"라고 썼다. 그 뒤 바흐만은 로마의 한 호텔방에서 약물에 취한 채 담배를 피우다가 생긴 화재로 화상을 입고, 1973년 10월 17일 병원에 실려온 지 한 달 만에 숨을 거뒀다.


이상, 출처; 조선닷컴

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07/2018030702903.html


인디언어(語)로 '천국과 같은 지상' 맨해튼의 마천루, 한 쌍의 연인이 사랑의 생명을 영원토록 간직하기 위해 같이 죽기로 한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얀은 갑자기 '혼자 있고 싶어져' 그 자리를 피하게 되고, 검은 활자를 보면 눈에 생기를 띠는, 정상적이고 건전하고 정당한 남자로 되돌아가 살아남는다. 제니퍼는 혼자 기다리다가 쓸쓸히 '완전한 사랑'의 희생물이 되어 죽어간다. 1973년 로마에서 담뱃불로 인한 화상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방송극 '맨해튼의 선신'(1958)의 내용이다.

잉게보르크 바하만은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전후 독일문단의 간절한 열망으로 배출된 스타작가였다. 50년대 독일문단은 제3제국이 남긴 역사적 비극상황에 대한 허탈감으로 메시아적 존재로서의 시인을 갈망했는데, 마침 가장 시의적절하게 시집 '유예된 시간'으로 47그룹상을 수상하며 그녀가 화려하게 등장했던 것이다. 곧 슈피겔지(誌)의 표지사진을 시작으로 센세이셔널한 죽음을 맞을 때까지 20여 년간 독일 유수의 매스컴들은 그녀를 쫓아다니며 그녀의 주변에까지 후광을 입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메시아적 천부의 시인이라기보다는 서정적 언어를 매개로 세상과 인간의 실존에 대해 철저히 고민한 작가였다. 파울 첼란과 귄터 아이히 등 동시대 시인들과 마찬가지로 인간 실존의 한계를 보여준 전쟁과 폭력, 이데올로기를 잠들지 못하고 오롯이 눈을 뜨고 바라보아야 했던 고뇌에 찬 한 지식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 다시 재평가를 받을 때까지 과작이었다고 할 정도로 많지 않은 작품들에 실린 그녀의 호소와 비명에 대중들은 처음엔 하인리히 뵐이 조사(弔辭)한 것처럼 '단지 바하만 자체를 문학으로, 하나의 이미지로, 신화로' 만들어버렸다가 그녀의 사후 급격한 무관심과 심지어는 '밀폐시'류로 격하시켜 버리기까지 한다.

우리에게는 이문열이 인용한 소설 제목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의 시인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잉게보르크 바하만은 26년 오스트리아 클라겐푸르트에서 태어났다. 오스트리아 그라즈, 인스부르크, 비엔나에서 철학과 함께 법률, 음악을 공부했다. '하이데거 실존철학의 비판적 수용'이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빈 방송국에서 잠시 근무했다.

화려한 등단 몇 년 후인 30세 이후 모든 직업을 뒤로하고 글쓰기에만 전념하며 외국을 오래 여행했다. 그러던 중 73년 로마에서 원인모를 호텔 화재로 사망하게 되는데, 자살설과 함께 담뱃불로 인한 화상이 원인이라는 설이 스위스 작가 막스 프리시와 사랑에 빠진 뒤 파경에 이르자 오랫동안 방황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떠돌았다.


이상, 출처; 영남일보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060119.01028145133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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