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으로 한 시절을 풍미한 책이 있다. 1989년에 번역된 <상실의 시대>다. 당시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냉전은 종말을 고하고 6월 항쟁이 빚어낸 ‘여소야대’는 공안정국의 펀치를 맞으며 3당 합당으로 와해됐다. 물질적 급성장에 반비례해서 정신적 상실감이 커지던 시대적 분위기는 일종의 ‘묻지마 베스트셀러’를 만들었다. 애초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이었다면? 블록버스터급 소설이 되기는 힘들었을 듯하다. 저자인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려낸 1960년대는 ‘상실’이다. 이념 투쟁으로 과열됐던 일본의 대학생들에게 학생운동이 퇴색하고 혁명의 불꽃은 사그라졌다. 갑자기 넥타이를 매고 회사원이 되어야 했던 ‘투사’들은 삶의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기 위해 젊은 날의 가치와 이상을 버려야 했다.
실제로 1960년대 지구는 뜨거웠다. 68 학생운동, 여성해방, 흑인 민권운동의 열기는 화산처럼 분출했다. 그러나 확 달아오르는 다혈질은 팍 식어버리는 무기질로 바뀌는 법이다. ‘잘 가라, 청춘이여’. 가장 뜨거웠던 시간과 사랑을 그리워하는 것은 만국 공통의 심리이기에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만화만큼이나 하루키의 작품이 세계인의 정서에 호소력을 가지는 것일까.
줄거리는 딱 네 줄이다. 고교 시절 ‘절친’이 자살을 한다. 죽은 친구의 ‘여친’과 대학에서 재회해 연인이 된다. 이런저런 사정 끝에 연인도 목숨을 끊는다. 새로운 사람과 삶을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어떻게 보면 민담의 구조와 흡사하다. 누군가가 사라지고 주인공은 잃어버린 사람을 찾기 위한 모험을 떠났다가 복귀한다는 도식이다. 도입부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다. 독일에 도착한 비행기 안에서 흘러나온 비틀즈의 노래 <노르웨이의 숲>을 들으면서 잊혔던 과거로 시간이 역진한다.
어른으로 가는 입사식(initiation)은 재일학자 강상중의 비유처럼 절벽을 가로지르는 외나무다리 건너기다. 범상한 삶 한가운데 죽음의 덫이 놓여 있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되는 것이다. 두렵다고 마냥 미성년으로 머무를 수만은 없다. 만만하게 보다가는 막막한 인생으로 전락한다. 두려움과 어지러움이 뒤따라오는 청춘의 인간관계는 그래서 삼각형이다. ‘외로움, 괴로움, 그리움’은 세 개의 꼭짓점이다. 지금 여기에 없는 것들이다.
상실의 키워드로 시대를 집약했다는 상찬에 맞서 비판도 거세다. 문학평론가 유종호는 <상실의 시대>야말로 감상적 허무주의를 바탕으로 한 특이한 음담패설집이며 예술이 아닌 언어 상품이라고 단정했다. 소설이 시작되는 무대인 함부르크야말로 유럽 최대의 환락가라는 지적도 ‘도색소설’의 혐의를 강화한다. 성적 일탈을 다룬 이 같은 작품이 자칫 고전과 문학의 본령을 오도하는 사태는 막아야겠다는 교육자로서의 고언이 와닿는다
그럼에도 <상실의 시대>는 시장에서의 교환가치 이상으로 통과의례로서의 사용가치 또한 상당하다. 감상과 열정의 도가니에서 들끓던 20대의 나날이 순식간에 끝나고 사회의 일원으로 어느새 냉각될 때 혼란과 회의는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지금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인가’라는 중년의 주인공 와타나베의 자문(自問)이 마음에 묻은 상실감을 닦아주는 미덕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상, 출처; 주간경향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912271604081&code=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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