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살아가자/사람과 예술

움베르토 에코

BK(우정) 2020. 3. 3. 17:10
“두 세계를 넘나들며 가장 잘 팔린 학자.”

19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자택에서 세상을 뜬 움베르토 에코(사진)에 대한 뉴욕타임스 부음 기사의 제목이다. 향년 84세, 2년 여 암투병을 했다. 위에서 두 세계란 기호학과 문학이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장편소설 『장미의 이름』이 국내에서만 73만 부, 세계적으로도 40여 개국에 번역 소개돼 2000만 부가 팔렸다. 에코는 소설가이기 이전에 세계적인 기호학자였다. 1974년 밀라노에서 제1회 국제기호학 회의를 조직했을 정도로 영향력 있는 학자였다. 『일반 기호학 이론』(A Theory of Semiotics) 등을 통해 기호학을 대중적으로 알린 점이 공적으로 꼽힌다.

그의 죽음에 대한 애도 역시 ‘국제적’이다. 이탈리아 대통령과 총리는 물론 프랑스의 올랑드 대통령까지 그를 “어마어마한 인문주의자”로 평하며 “도서관은 만족을 모르던 독자를, 대학은 눈부신 교수를, 문학계는 열정적인 저자를 잃었다”고 애도했다.

그는 32년 이탈리아 서북부 알레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서재에서 쥘 베른, 마르코 폴로 등의 책을 읽으며 성장해 젊은 시절 방송 관련 일을 하기도 했다. 토리노 대학에서 중세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땄고, 71년부터 평생 볼로냐 대학에서 가르쳤다. 독일어·스페인어 등 5개 현대 언어와 라틴어, 고대 그리스어까지 7개 언어로 강의가 가능했다.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건 역시 80년 『장미의 이름』을 출간하면서다. 중세수도원을 배경으로, 웃음의 역할을 찬양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필사본 원고 공개를 막기 위해 살인도 마다 않는 호르헤 수도사에 맞서 윌리엄 수도사 등이 치밀한 두뇌 게임을 벌이는 내용이다. 추리소설 형식이지만 중세 건축 미학, 난해한 신학 논쟁, 숱한 인용구 등이 방대하게 들어 있어 결코 쉽지 않은데도 대성공을 거뒀다.

한글판 번역자인 고(故) 이윤기씨는 생전 “(나에게) 찬사와 (오역으로 인한) 비판을 동시에 안긴 책”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사물과 현상을 하나의 기호로 파악해 세상을 읽고자 하는 기호학 이론을 추리 형식 속에 녹인 소설로 꼽힌다. 볼로냐 대학에서 그에게 배운 김주환 연세대 교수는 “처음 인사 드릴 때 한국 인삼차를 선물했더니 ‘아내가 좋아할 것 같다’며 기뻐했던 게 인상적”이라고 회고했다. 그만큼 소탈한 성품이었다는 얘기다. 한국과도 인연이 있어 2002년 국내 문예지가 마련한 대담에서는 한국의 ‘식용 개고기 문화’를 비난하는 프랑스 여배우 브리지드 바르도에 대해 “어떤 고기를 먹느냐는 문제는 인류학적인 문제”라며 “파시스트”라고 비판한 적이 있다.

또 다른 소설 『푸코의 진자』 등 에코의 책은 국내에 30권 가까이 출간됐으며 모두 180만 부 가량 팔렸다. 오는 6월 그의 유작이 된 장편소설 『창간준비호(가제)』(Numero Zero)가 국내 출간된다. 미디어 세계를 풍자적으로 그렸다.

이상, 출처; 중앙일보



도서관이 눈을 감았다. 박람강기 무불통지(博覽强記 無不通知). 엄청난 독서와 뛰어난 기억,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살아 있는 도서관’. 말의 뜻 그대로 르네상스적 지식인. 생전 자신의 책으로 도서관을 만들고파 했던 사람. 움베르토 에코(1932~2016). 이탈리아 볼로냐대학에서 에코의 지도를 받아 박사학위 논문을 쓴 뒤 꾸준히 그의 책을 우리말로 번역해온 김운찬(59) 대구가톨릭대 교양교육원 교수의 글을 싣는다. 부채를 펴듯 종잡기 어려운 에코의 저작들을 부채를 접듯 간결하고 선명하게 살피면서 에코의 인간적인 풍모도 엿볼 수 있다. _편집자


좋은 소식보다 우울한 소식이 많은 요즈음, 움베르토 에코 선생님의 부음에 또 마음이 무거워진다. 뒤늦게 어느 신문기자의 전화로 소식을 듣는 순간 선생님의 모습들이 두서없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에코 선생님과의 만남은 나에게 가장 커다란 행운 중 하나였다. 우연한 계기로 시작된 만남이었다. 우리말로 번역된 책들을 통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다가 그분의 책을 직접 번역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그 미궁에 매료되어 빠져들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는 기호학 공부와 함께 그분 문하에서 학위를 받았고 기호학에 대한 초라한 입문서도 쓰게 되었으니 내게는 소중한 은사님이다.


에코의 도서관 만들고 싶다고


에코 선생님에 대한 글들에는 대부분 ‘세계적인 석학’ ‘기호학의 거장’ 또는 ‘천재’ 등의 수식어가 붙는다. 실제로 기호학을 비롯하여 철학, 미학, 문학, 예술, 역사 등 거의 모든 인문학 분야에서 다방면으로 예리한 통찰력과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었다. 그런 만큼 그분의 지적 편력 과정을 총체적으로 살펴보기는 쉽지 않다. 단순하게 큰 흐름으로 보면 이탈리아 토리노대학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미학 사상 연구로 학위를 받은 다음 현대예술과 대중문화에 대한 분석을 거쳐 기호학 이론으로 정립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거기에다 1980년 발표한 소설 <장미의 이름>이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다시 한번 지성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 작품은 모두 47개 외국어로 번역되어 2천만 부 넘게 팔렸고, 장자크 아노 감독의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이어서 <푸코의 진자>를 비롯하여 흥미로운 소설이 잇따라 나왔고, 지난해에는 마지막 일곱 번째 소설 <창간 준비호>가 출판되었다.


에코의 소설은 대부분 두툼한 분량에다 상당히 난해하고 읽기 어려운 작품으로 꼽힌다. 그런데도 오히려 많은 독자들이 그 안에 빠져들면서 두꺼운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아마 지적 호기심과 탐구심을 자극하는 효과적인 플롯과 서사구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수많은 텍스트들의 인용으로 가득한 <장미의 이름>이나 <푸코의 진자>는 화려한 지식의 향연을 펼치면서 고급스런 책읽기의 즐거움을 제공한다. 그 외에도 다양한 형식의 글과 강연, 발표, 인터뷰 등을 통해 사람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수많은 저술로 증명된다. 에코의 저술 목록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하기는 어렵다. 개정판을 낼 때마다 내용이 조금씩 바뀌거나 일부는 중복되기도 하며,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로 집필되거나 번역된 판본은 다르게 편집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워낙 다양하고 복잡한 텍스트들 사이의 관계와 계보를 정리할 필요가 있을 정도이다. 어쨌든 어림잡아 단행본으로 100여 권 될 것으로 추정된다. 몇 해 전 우리나라의 어느 출판사에서 에코의 저술 총서를 발간했는데, 소설을 제외하고 모두 25권이었고 이후에도 벌써 몇 권이 더 추가되었다. 오래전 사적으로 만난 자리에서 에코 선생님은 자신의 저술과 전세계에서 간행된 번역본, 비평서, 관련 자료 등을 모두 모아 조그마한 도서관을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충분히 가능한 계획이며 무엇보다 에코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계획이라 생각한다. 만약 그 도서관이 실현된다면, 많은 저술에다 <장미의 이름>에서 형상화된 도서관, 책으로 상징되는 지식에 대한 관념, 볼로냐에서 추진한 멀티미디어 도서관 프로젝트 등과 어울려 열광적인 희귀본 도서 수집가였던 에코와 분리될 수 없는 일체를 이루게 될 것이다.


‘열림’의 개념 설명할 도구로


에코의 마지막 저술은 <파페 사탄 알레페>(Pape Satan Aleppe)인데 원래 5월에 출판될 예정이었으나 앞당겨 2월 말에 출판될 것이라고 한다. 그동안 신문이나 잡지에 발표했지만 단행본으로 출판되지 않은 글들의 모음집이다. 책 제목은 단테의 <신곡> 지옥편 7곡에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재물의 신 플루토스가 외치는 말로, 그 의미는 정확하게 알 수 없는데, 에코는 현대사회의 특징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인용한 듯하다.  에코의 다양한 관심 분야들을 가로지르는 키워드를 찾는다면 단연 ‘기호학’일 것이다. 기호학으로 선회하게 된 것은 1960년대 후반이다. 나중에 술회하듯이 특히 1960년대 초반 현대예술과 대중문화 분석에서 논쟁적으로 제시한 ‘열림’의 개념을 이론적으로 설명하고 체계화할 수 있는 효율적인 도구로서 기호학에 접근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체계화되기 시작한 기호학의 여러 갈래에서 이른바 ‘해석 기호학’의 실질적인 대부가 되었고, 1969년 ‘국제기호학회’의 창립에도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특히 <일반 기호학 논고>(원래의 영어판 제목은 <기호학 이론>)는 기호학을 공부하려는 사람에게 필독서로 자리매김했다. 40대 후반부터 쓰기 시작한 소설들도 기호학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작품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기호학의 본질적 문제들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성찰을 담고 있기 때문에 ‘기호학의 소설화’ 또는 ‘소설화된 기호학’으로 일컫기도 한다.


그 배경에는 외국어 능력이 튼튼한 받침대 역할을 했다. 라틴어를 비롯하여 웬만한 유럽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일부 저술은 아예 영어로 집필하거나 발표되었다가 나중에 이탈리아어로 번역되기도 했다. 외국어의 중요성은 여러 곳에서 강조된다. <장미의 이름>에서 윌리엄 수사는 공부하려는 사람은 무엇보다 먼저 외국어를 공부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런 외국어 능력을 자랑하듯이 처음 만난 자리에서 에코 선생님은 무슨 언어로 말하면 좋겠느냐고 물었고, 내가 농담 삼아 한국어로 말하자고 대답했던 것이 기억난다.  두말할 필요 없이 외국어 능력은 번역에서 핵심적 요소이며 에코는 이 점도 놓치지 않는다. 그의 많은 저술이 다양한 외국어로 번역됐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외국 작가의 작품들을 이탈리아어로 번역해 출판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을 정리하여 번역에 대한 흥미로운 저술을 엮기도 했다. 물론 번역의 문제도 기호학의 관점에서 흥미로운 주제들과 연결된다. 예를 들면 이른바 ‘기호 상호 간의 번역’에 대해 기호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가령 소설을 영화나 연극으로 각색하고 만화·그림·음악으로 옮기거나, 반대로 그림이나 음악을 언어 텍스트로 옮기는 것이 거기에 해당한다.


‘에코’에 담긴 함축적 의미


이렇듯 그는 여러 분야에서 천재적인 팔방미인처럼 다재다능한 능력을 과시하면서 지적 유희를 즐겼던 듯하다. 보통 사람은 어느 한 분야에서 인정받기도 어렵다는 것을 생각하면 놀라울 뿐이다. 게다가 취미라고 하지만 상당한 실력을 보이며 리코더를 연주하거나, 아늑한 카페 한구석에서 위스키 한 잔의 도취감에 젖는 것을 즐기기도 했다. 그런 모습은 분명 부러움의 대상일 것이다. 혼자 그 많은 것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에 때로는 약간의 질투심과 함께 얄밉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뛰어난 능력은 마치 하늘에서 부여받은 것 같다. 엉뚱해 보일지 모르겠으나 그런 천부적 능력을 ‘Eco’라는 성과 결부해볼 수 있다. 사실 Eco는 기아(棄兒)로 발견된 그에게 시청 직원이 만들어준 것으로 라틴어 ‘ex caelis oblatus’, 말하자면 ‘하늘에서 보내준 선물’이라는 말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혹시 그 선물이 에코의 다재다능한 능력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또한 이탈리아어로 보면, 그리스 신화에서 나르키소스를 사랑한 요정의 이름이자 ‘메아리’를 뜻하기도 한다. 마치 ‘장미의 이름’처럼 에코라는 성도 다양한 함축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에코는 1932년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의 도시 알레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 우리말 표기는 다르지만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와 같은 이름이다. 알렉산드리아가 헬레니즘 문화의 중심지로 당시 최대의 도서관으로 유명했던 것을 상기해보면 그것도 에코와 연결되는 것 같다. 물론 알레산드리아는 12세기에 세워질 당시 교황 알렉산데르 3세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그렇게 명명되었다고 한다. 알레산드리아에 대한 회상은 여러 텍스트에서 발견되는데 그곳은 특히 안개로 유명한 곳이다. 어느 해 겨울 기차를 갈아타기 위해 알레산드리아역에 내렸던 적이 있는데, 한낮인데도 안개가 자욱이 깔려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소설을 비롯한 여러 글에서 안개에 대한 애정 어린 묘사나 분석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안개뿐 아니라 다른 전기적 요소들도 특히 소설 속에 여러 방식으로 스며들어 있다. 대표적 예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빨치산의 장례식에서 트럼펫을 부는 소년이 묘사되는데 그것은 바로 에코 자신의 경험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소설이 1월5일에 출판되었는데 그날은 바로 자신의 생일이다. 다만 2000년에 출판된 <바우돌리노>는 예외인데, 그해 여름 첫 손자가 태어난 날에 맞추어 출판했고 손자에게 헌정했던 것이다. 외관상으로 보면 더부룩한 수염에 약간 배가 나온 모습은 수더분한 이웃집 할아버지를 연상시킨다. 비교적 쾌활한 성격 때문인지 어디서든 시의적절한 재치와 유머 감각으로 좌중을 사로잡았다. 수업 도중 쉬는 시간에 밖에 나와 학생들과 함께 담배를 피우면서 유쾌하게 이야기하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그런 유머 감각은 소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다분히 장난기 어린 구절로 독자의 미소를 이끌어낸다. 대표적인 예로 <장미의 이름>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거나 개인적 친분이 있는 사람들 중 누군가를 넌지시 암시하는 등장인물을 배치하거나 다소 엉뚱한 구절을 인용하기도 한다. 물론 그것은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은근하게 통용되는 공모의 눈짓처럼 보인다. 따라서 곧바로 눈에 드러나지 않지만 그런 것들을 하나씩 찾아보는 것도 읽기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하늘이 아니라 땅에 필요하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에코 마니아’들이 상당수 있는 우리나라를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래전에 한국을 방문할 의사가 있는지 물은 적이 있는데, 앞으로 2년 동안 스케줄이 잡혀 있기 때문에 그 이후에 생각해보겠다고 대답했다. 물론 과장된 답변이겠지만 당시에 여러 가지 활동으로 한창 바빴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제는 모든 것이 기억으로만 남게 되었다. 장례식장에 참석한 영화배우 로베르토 베니니는 인터뷰에서 “에코 같은 사람은 하늘이 아니라 땅에 필요하다”는 말로 아쉬움을 표현했다. 어쨌든 에코 선생님의 이름은 최소한 내 머릿속에 오랫동안 ‘메아리’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상, 출처; 한겨레 21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126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