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2496년 어느 날. 격리된 원시보호구역에 살던 야만인 존은 운 좋게 근사해 보이는 문명세계로 초대를 받는다. 셰익스피어를 열심히 읽었던 이 야만인은 문명세계를 처음 보자 `템페스트`의 한 구절을 인용해 탄성을 지른다. "놀라워라! 잘생긴 인물들이 여기에 참 많기도 하구나. 인간은 아름다워! 오 멋진 신세계여. 이러한 종족이 살다니."
하지만 이 탄성이 구역질로 변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존은 고도 문명사회에 숨겨진 비인간성에 경악한다. 존은 감독관과 논쟁을 벌인다. "나는 안락함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신을 원하고, 시(詩)를 원하고, 참된 위험을 원하고, 자유를 원하고, 그리고 선(善)을 원합니다. 동시에 악도 원합니다." "사실상 당신은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는 셈이군." "그래요. 나는 차라리 불행해질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 거예요."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는 언제 읽어도 빼어난 작품이다. `멋진 신세계`는 과학 기술이 인간의 본성까지 지배하게 된 미래 디스토피아를 가정한 소설이다. 헉슬리는 소설의 시간 설정을 `포드 632년`으로 해 놓는다. 헨리 포드가 자동화 시스템을 만든 지 632년이 된 시점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다.
미래 인간들은 어머니 배 속에서 자라지 않는다. `런던 중앙 인공부화 및 조건반사 양육소`라는 간판이 붙은 곳에서 시험관에서 태어나 자란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의미가 없는 세상이다. 정해진 섹스 파트너가 있으면 사회에서 지탄을 받는다. 결혼 제도도 사라졌고 고뇌를 유발하는 연인 관계 같은 것도 없다. 의학 덕분에 60세가 되도록 늙지 않지만 그 시기가 지나면 시체처리소로 직행한다. 세계인구는 20억명으로 제한되어 있고 각각의 계급에 맞는 인원은 철저한 사전 계획에 의해 생산된다. 공유와 안정이라는 미명하에 강력한 중앙 통제 체제가 사회를 유지한다. 과학은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바로 이런 세계에 야만인 존이 오게 된 것이다.
소설에서는 `야만인`이라고 표현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존은 20세기식 사고와 경험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그에게 환희도 없고 위험도 없는 세상은 끔찍한 곳이다. 안정이라는 전제 아래 자유와 고통을 동시에 앗아간 세상은 결코 `멋진 신세계`가 아니다. 결국 존은 목을 매 자살한다.
헉슬리는 100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천재였다. 그는 가계 속에서는 이미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매력적인 통섭이 이뤄져 있었다. 헉슬리의 할아버지는 다윈의 진화론 서문에 등장하는 생물학자 토머스 헨리 헉슬리다. 어머니 줄리아 아널드는 옥스퍼드대 출신 시인이었다. 형 줄리안은 생물학자이면서 유네스코 사무총장을 지낸 인물이고, 동생인 앤드루는 훗날 노벨의학상을 받은 생리학자다.
헉슬리가 아우른 세계는 놀라웠다. 그는 폴리네시아 인류학에서 산스크리트 불교경전까지, 그리고 정신병원에 갇힌 부랑아에서부터 롤스로이스를 타고 다니는 재벌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모든 역사와 현상들을 이해하고 분석한 사람이었다. 각설하고, 헉슬리가 예언한 서기 2500년까지 소설 `멋진 신세계`는 끊임없이 읽힐 것이다. 사람들은 `멋진 신세계`를 읽으며 셰익스피어를 줄줄 외는 야만인을 만날 것이다. "문명이 나에게 독을 먹였어. 그래서 나는 오염되고 말았어."
이상, 출처;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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