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살아가자/사람과 예술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유자와...가보고 싶다...

BK(우정) 2020. 3. 3. 12:48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저녁 차창 밖으로 하얗고 찬 기운이 갑자기 흘러들어왔다. 일본 군마현과 니카타현을 잇는 간에츠 터널의 어둠이 10분 정도 이어지면서 약간 지루해질 찰나였다. 빛나는 설산, 그리고 터널 저쪽보다 훌쩍 높이 쌓인 눈이 시야를 때린다. 습기를 머금은 북풍이 1963m 다니카와 산을 넘지 못해 참았던 눈물을 모두 쏟아낸다는 이곳. 196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ㆍ1899~1972)가 `설국(雪國)`을 썼고, 또 배경이 됐던 니가타현의 유자와 마을이었다. 허무에 찬 남자 시마무라와 열정적이고 당돌한 게이샤 고마코, 그와 대조적으로 청순미의 결정체인 듯한 요코. 묘한 삼각관계를 만들며 서양 독자들까지도 감동시켰던 그들이 만나고, 이야기하고, 어긋난 감정을 공유했던 장소와 `설국` 관련 자료를 전시한 설국관을 찾으면서 문학기행은 이어졌다. 그러나 `눈의 나라`는 자신의 세계를 결코 쉽게 열어주지 않았다. 마치 때라도 맞춘 듯 폭설이 내려 여행을 시작하는 것부터 어렵게 만들었다.


1934년 유자와 온천 마을을 처음 찾은 가와바타는 이후 3년 동안 여러 차례 이곳을 방문해 글을 썼다고 한다. 그때마다 묵었던 곳이 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에 위치한 다카한 료칸(旅館), 정확히 말하면 2층의 가장 전망 좋은 방이다. 물론 이 료칸은 작가 본인의 분신이기도 한 시마무라가 고마코를 만났던 곳이기도 하다. 소설의 무대가 됐던 다카한 료칸은 여러 번의 증개축으로 옛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됐지만 자리는 그대로다. 특히 가와바타가 묵었던 방이 그 위치에 재현됐고, 그 옆에 자료관이 마련돼 있었다. 1930년대 유자와 마을, 작가의 친필 자료, `설국`이 연재됐던 잡지가 주요 전시품이다. 그러다가 한쪽 벽에 걸린 여성의 사진으로 자연스럽게 눈이 간다.

고다카 기쿠(小高キク), 소설 여주인공 고마코의 모델이다. "가늘고 높은 코, 조그맣지만 매끄러운 입술, 약간 아래로 처진 듯 한 눈썹, 순백의 도자기에 분홍빛 붓을 살짝 갖다 댄 듯한 살결" 사진 속 그의 모습은 `설국`의 묘사 그대로였다. 게이샤 시절 이름이 마쓰에였던 고다카는 갓 스무 살을 넘겼을 때 가와바타를 만났다. 그리고 아침마다 언덕을 기어올라가 작가의 방에 불을 넣고 목욕물을 데웠다고 한다. 마치 고마코가 시마무라에게 했던 것처럼. 그가 가와바타를 실제로 사랑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료칸을 나서 언덕을 내려가면 시마무라와 고마코가 처음으로 데이트를 했던 신사(神社)가 나타난다. "여자는 얼른 돌아서서 삼나무 숲 속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그는 말 없이 따라갔다. 신사였다. 이끼가 돋아난 돌사자 옆의 번듯한 바위에 가서 여자는 앉았다." 삼나무 숲은 사라졌지만 신사, 돌사자, 널찍한 바위는 그대로 남아 문학 기행자들을 반긴다는 장소. 하지만 이곳도 눈이 너무 많이 쌓여 들어갈 수 없었다. 사람 키는 족히 넘어보이는 눈을 뚫어보려고 애쓰다가 돌아서는 여행자의 마음이 더욱 아쉬운 순간이다. 다카한 료칸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떨어진 설국관, 시마무라 등의 흔적이 깃든 다른 장소를 찾는 와중에도 폭설은 여행자들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하지만 이 온천 마을 역시 `시대의 격랑`은 피해가지 못한 듯했다. 이제는 스키타운이 된 유자와를 찾은 젊은이들은 외지에서 온 문학 기행자들을 놀랍게 바라봤다. 


이상, 출처; 매일경제

https://www.mk.co.kr/news/culture/view/2010/01/42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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