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의 글/우정 시선

등불을 거는 밤

BK(우정) 2019. 12. 29. 19:32




등불을 거는

 

 

내가 등불을 거는 이유는

지금도 오고 있을 그대에게

한결같은 기다림을 전하고자 함입니다

 

등불은 감나무의 긴 그림자를 만들고

기껏해야 그 그림자 끝자락만큼만 비춥니다

 

등불이 가슴속 깊이 있을 때에는

눈을 감으면 참 멀리도 비추었습니다

 

어린 시절

감나무 꼭대기에 걸린 방패연도

저 멀리서 장 보따리를 이고 오시는

어머니의 옥색 치마의 일렁임도

감은 눈 속에서 떠오릅니다

 

어른이 되어 등불을 거는 밤

바람은 불고, 땅으로 내려 앉은 눈송이들은

다시 하늘로 오르고 있습니다

 

시린 가슴을 안고

기껏해야 감나무 높이에서 흩날리는

잘게 부서질 눈송이들을 곁눈질하며

등불을 걸고 있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외롭게 오고 있을 그대를 위해

내 기다림이 바람을 타고, 눈송이를 타고

멀리 멀리 전하여지기를 바라면서

 

그대여

내 등불을 보려거든 눈을 감고 오십시요

'우정의 글 > 우정 시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런던 프라이드  (0) 2020.01.01
뜰에 가을이 오네  (0) 2019.12.31
등불꽃  (0) 2019.12.28
들꽃의 강가에서  (0) 2019.12.26
두물머리  (0) 2019.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