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살아가자/사람과 예술

청자의 빛깔, 고려청자

BK(우정) 2019. 9. 26. 01:50

청자의 푸른 빛은 어떻게 나오는 것일까.

 

청자가 실크로드나 바닷길을 통해 전세계로 고가에 팔려나갔을때 이를 모방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이 나오는데, 1000도 이상으로 굽는 온도를 높이지 못하여 만들어진 토기나 도기에 청색 물감을 겉에 칠한 것들이 중국 청자를 구입했던 곳곳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도저히 중국 청자와 비교될수 없는 것들이었다. 청자의 푸른 빛은 흙의 색도 아니요, 안료의 색도 아닌 것이다. 그들은 바로 유약이나 태토에 포함된 철분 성분이 굽는 소성과정에서 고열을 받아 만들어낸 색인 것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유약에 약 1~3%의 산화제이철(Fe2O3)이 포함되면 이것이 1200도 이상의 열을 받아 발색을 하게 되는데 산소가 충분한 조건하에서는 황색 등 붉은 색 톤을 띄고, 산소가 부족한 조건하에서는 푸른 빛을 띄게 된다. 철분 Fe는 2가 (Fe2+) 와 3가(Fe3+)가 있는데 3가철이 산소와 염을 이룬 형태가 아래 그림과 같은 붉은색의 산화제이철(Fe2O3, Ferric Oxide)이다. 산소는 항상 2가를 띄기 때문에 3가의 철과 조합을 이루려면 철:산소=2:3 비율이 되어야만 한다.

 

노천에서 구덩이를 파고 산소 공급이 충분한 산화염 상태에서 굽는 선사시대의 토기 등이 붉은 계통의 색을 띄는 것은 바로 이 산화제이철이 그대로 남아 붉은색을 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천 대신 밀폐된 가마속에서 불을 때면 산소가 없는 조건하에서 굽게 되는데 이는 땔감이 그을음이 많이 생기는 불완전 연소가 되고 재가 다 타버리기 전에 다시 땔감을 또 넣어 계속 불완전 연소를 유지하는데 CO2 대신 일산화탄소인 CO가 많이 만들어지게 된다. CO는 불안정하기 때문에 1000도 이상의 고온 상태에서 태토나 유약안에 함유되어 있던 위 구조식인 산화제이철에서 산소 원자를 한 개 빼앗아 CO가 CO2가 되어 안정화 하려한다. 그럼 2:3 비율의 산화제이철(Fe2O3)이 Fe2O2, 즉 두 분자의 FeO (산화제일철, Ferrous Oxide)가 되버린다. 산화제일철 구조는 철:산소=1:1 비율로 이 산화제일철의 색이 바로 푸른색이다. 산소를 부족하게 유지하면 이러한 화학반응이 생기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처럼 푸른 빛은 유약에 의해 나오게 되므로 유약이 두꺼울수록 발색이 좋아져 두껍게 발라줘야 한다. 만약 진한 푸른색을 원한다고 3%이상의 산화제이철을 함유하게 하면 FeO로 다 안만들어져 (환원화가 전부 안되어) 남은 산화제이철에 의해 붉은색이 돌게 되거나, 과포화된 철 입자가 겉에 남아 검은색으로 변하게 되므로, 산화제이철 농도를 진하게 하면 오답이고 유약을 두텁게 해야 한다. 나뭇재 유약을 쓰면 그 안의 다양한 성분들이 색을 그윽하게 하며, 특히 인산은 유약속에 기포를 만들게 하여 빛의 산란 효과를 가져와 청명한 색을 돌게 한다.

 

이상, '청자 빛깔의 원리와 중국 청자 분류'

https://m.blog.naver.com/tasmanic/221085167979 ~ 에서 발췌


 

한국에서 교육을 받게되면 한국에는 빼어난 문화유산이 있고, 한국사람들은 뛰어난 창의력과 빼어난 손재주가 있어서 많은 찬란한 문화유산을 남겼다고 한다. 그러한 전통문화를 얘기할 때 빠지지않는 것들은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다. 고려의 비색翡色 청자가 천하제일이고 조선백자가 최고로 우수하고 그것이 일본으로 전파되어 일본의 도자기가 발전했다는 말은 한국에서 살다보면 수도 없이 듣게되고 세뇌되는 수준이 된다. 그런데 유럽을 여행하며 교회건물과 건물을 채우고 있는 조각상과 거리에 있는 조각들, 그리고 크렘린궁전의 사진을 보면서, 한국의 건축구조물과 불상조각을 생각해 보면 문제가 달라진다. 그리고 외국에서 외국사람들이 한국문화를 어떻게 생각하고 얼마나 알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게되면 생각이 흔들리게 되고, 그동안 세계최고인 줄 알았던 한국의 전통문화에 의구심이 들게 된다. 조선백자가 경매에서 비싸게 팔린다고 하지만 그런 경우는 역사상 몇 번 밖에 없었다. 징더전의 명,청도자기는 수백억을 호가하는 것이 허구한날 경매되는 것과는 비교되고, 일본의 현대도자는 새로운 모습으로 생존작가의 작품이 고가에 팔리고 있다. 경매결과가 말하듯이 서양인 중에는 그렇게 우수한 조선백자를 알아주는 사람이 거의 없고, 고려청자에 대해 외국에서 인식하는 것은(도자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의 경우) 송나라 청자가 변방인 고려에 퍼진 것이라고 알고 있다. 비색에 대해 인식하는 사람은 없고 청자의 색상은 다양하다는 말로 대신한다. 말하자면, 한국에서 국민들에게 세뇌시키는 내용과 다른 나라에서 한국문화를 인식하는 것에는 차이가 아주 크다.

 

그러고 나니, 과연 고려의 비색청자가 진짜 천하제일인지 의구심이 들고, 과연 이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아보았다. 고려청자를 칭찬하는 말은 ‘비색청자’ 와 ‘천하제일’ 이라는 수식어가 꼬리표처럼 나온다. 결론적으로, 이 말은 중국의 도자기 전문가나 중국황제가 고려청자를 보고 한 말이 아니고, 한국사람들이 두 개의 중국문헌에서 나온 말을 유추해석해서 짜깁기 한 것이다. 우선 첫번째 “비색翡色” 이라는 말은 선화宣和 5년(1123) 북송의 사신으로 고려에 온 서긍(徐兢, 1091~1153)이 쓴 『선화봉사고려도경 宣和奉使高麗圖經』(고려도경)에서 나온 말이다. 서긍이 기록한 “도기의 푸른 빛을 고려인은 ‘비색 翡色’ 이라고 말한다” 에 나오는 말을 우선 뽑은 것이다. 그런데 서긍은 참외 모양 술병과 사자 모양 향로에 대해서는 그 모양이 특이하고 독특한 비색秘色을 가지고 있다고 했고, 자신이 관찰한 나머지 청자들은 중국의 것과 유사하거나 중국 월주요(越州窯)와 여관요의 비색秘色을 가졌다고 하였다. 서긍의 비색은 술병과 향로에 국한된 것이지 나머지는 중국 것과 같다고 했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南宋 태평노인의 『수중금 袖中錦 』에는 “건주⋅촉 지방의 비단, 정요 백자, 절강의 차,‘고려비색 高麗秘色’ 모두 천하의 제일인데, 다른 곳에서는 모방하고자 해도 도저히 할 수 없는 것들이다” 라고 하여 천하의 명품 가운데 고려청자를 포함하였다. 이렇게 '천하제일 비색청자' 라는 말은 한 사람이 똑부러지게 말한 것이 아니고 두 사람이 말한 것을 유추합성한 것이다. 유추라고 하는 이유는 두 사람이 지칭하는 비색(翡色, 秘色)의 한자가 뜻은 같다고 해도, 글자가 다르다. 翡色과 秘色의 차이는 고려는 고려청자의 색을 翡色 이라고 칭했고, 중국에서는 청자의 아름다운 색을 말할 때 秘色이라고 한다. 그러니 고려비색 高麗秘色 이라고 한 것이 꼭 고려청자의 비색翡色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고, 서긍이 말한 비색은 술병과 향로 모양에 국한된 것이라고 한정했지 모든 고려청자를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주장되는 모든 것을 다 수용해서, 고려청자가 진짜로 그렇게 뛰어난 도자기라면 과연 고려청자를 이런 식으로 밖에 칭찬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다. 그리고 서긍과 태평노인 외에도, 다른 문헌에도 고려청자를 평가하는 말이 나와야 하는 데, 이것 외에는 없는 것 같다. 없는 것을 만들기 위해 두가지를 합성해서 말을 만드는 판에, 멋진 칭찬이 있었다면 이미 수 만 번 보도가 됐을 것이다. 그리고“비색翡色”이 그렇게 좋은 색상이라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비색으로 청자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고려시대에도 중국에서는 매우 유사한 비색이 있었지만 크게 유행하지 않고 다른 색상이 주류를 이뤘다. 하지만 고려시대의 비색을 완벽하게 재현하지 못한다는 말을 하지만, 현대에는 “비색翡色”을 거의 완전히 재현하고 있다. 청자는 유약과 작업환경의 영향변화로 수만가지 색상의 구현이 가능하다. 고려청자의 비색이 천하제일이라고 해도 당시에 만든 것이고 지금은 상황이 매우 달라졌다는 것이다. 청자종주국 중국이나 일본에서 많이 사용하는 청자색상에 비색은 없고 대체적으로 매우 옅은 쪽을 사용하고 있다. 최소한, 비색은 천년 전에는 좋게 보였을지 모르지만 현대와 같이 색상의 홍수인 시대에는 크게 어필하지 못하는 색상이 된 것이다. 특히 청자는 생활용기로는 호평을 받지못하는 데, 비색으로 찻잔을 만들어 마시면 진한 녹차의 색상과 비슷하기 때문에, 별로 선호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청백자를 주로 만들어 빙렬을 넣어 청자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것이 보기에 좋아 인기가 많기 때문이다. 녹차는 옅은 초록색이라 검은색이나 거친표면의 차완에 가장 잘어울린다.

 

세계적으로 최고의 청자를 찾으라고 하면, 한국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현대 스타일은 일본이고 골동품은 중국 것을 찾는다. 전체적으로는 일본을 최고로 꼽는 데, 현재 최고수준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1950년대 부터 송나라시대의 빙렬청자를 모두 재현했고, 전통을 기반으로 가장 다양한 청자를 만들고 있는 것을 전세계에 지난 50년 넘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다양한 색상은 물론이고 고려청자만 보아왔던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모습의 청자들도 즐비하고 있다. 문화적으로도 세계를 리드한다는 영국도 일본의 전통문화를 배우는 데는 시간과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 그래서 대영박물관에서는 일본공예품을 5가지 분야로 나누어 따로 소개한다. 초라한 한국관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중국은 자신들이 모든 도자기를 처음 만들어서 천 년 이상 세계의 문화를 선도할 때 중심이었고, 일본은 중국으로부터 기술을 배워 지금은 중국을 앞선 세계최고의 도예왕국이라서 영국에서 이렇게 취급하는 것이다. 영국이 한국사람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고, 한국문화를 중국의 변방으로 생각하고 중요한 것이 없다는 것을 이미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국이 옛날에는 중국의 변방으로 청자와 백자를 따라했지만 현대에는 세계적 수준에서 뒤쳐진 것으로 생각한다. 다른 유럽의 나라와 미국의 생각도 다를 바 없다는 것을 한국만 인정하지 않을 뿐이다. 고려청자와 조선백자가 아무리 우수했다고 해도, 현재 한국도예의 현실을 생각해야 한다. 남들은 저만치 앞서서 보이지 않을만큼 멀리 있는 데, 한국은 아직도 우리가 천년전에는 도예선진국이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허구한날 우리는 천년전에는 청자를 만들었고, 오백년 전에는 백자를 만들었다고 우물안 개구리처럼 아무리 떠들어도 들어주는 사람도 없고, 의미도 없다.

 

한국은 더 이상 청자의 우수성을 천년전 중국의 고문서에서 찾으려고 하면 안된다. 중국은 도자기를 발명해서 천년 넘게 세계문화를 선도했고, 아직도 그 자부심이 대단하지만 현재 만드는 것은 일본과 유럽보다 못하다. 그런 중국의 천년 전 고문서에서 비색청자의 단어를 조합해서 칭찬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직도 중국도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세계의 시류를 읽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하고 일본이 한국을 합방해도 명나라를 숭상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다는 것인가. 이제는 더 이상 천년 전 중국에게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지 말고, 세계에서 인정을 받는 청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이다. 세계의 도예계의 흐름이 어떤지를 보면서 그것을 따라가는 것이 발전하는 좋은 방법이지, 전통운운 하며 옛날 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과거에 안주하는 것이다.

 

[출처] 한국도예 [4] - 천하제일 고려 비색청자! 이제 그만하자.|작성자 우물안 개구리

https://m.blog.naver.com/sunonthetree/2213648380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