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살아가자/사람과 예술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26번, 고별

BK(우정) 2019. 9. 4. 16:21




베토벤은 왜 26번 소나타에 ‘고별’이라는 타이틀을 붙였을까?


클래식 음악에서 바흐의 평균율이 구약성서로 불린다면, 베토벤의 소나타는 신약성서로 일컬어진다. 57년을 사는 동안 수많은 작품을 남긴 베토벤은 고전 시대를 완성하고 낭만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자신의 음악에 많은 것을 담아냈다. 초기의 작품은 전형적인 고전형식을 보여주고, 중기 작품은 피아노라는 악기의 발달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낭만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후기 작품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획기적인 형식과 연주기법을 선보이고 있다. 한 작곡가의 작품에 이렇게 다양한 시대적 흐름이 담겨있는 것은 정말 위대한 일이다.  32곡 중 템페스트(폭풍), 발트슈타인, 열정, 함머클라비어 등 부제가 붙은 여러 작품이 있지만, 이는 베토벤이 붙인 것이 아니다. 출판사에서 베토벤의 동의를 얻은 후 붙인 타이틀일 뿐이다. 그중 베토벤이 직접 붙인 것은 26번 ‘고별’ 소나타뿐이다. (8번 ‘비창’ 소나타는 베토벤이 직접 붙였다는 설도 있고, 출판사에서 ‘grande sonata pathetique’라고 붙였다는 설도 있다.)  그럼 베토벤은 왜 26번 소나타에 ‘고별’이라는 타이틀을 붙였을까? 고별 소나타를 작곡한 1809~1810년은 그가 청력을 거의 상실해 신경이 극도로 예민했던 시기였다. 작곡가로서 귀가 들리지 않자 1802년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유서를 작성했을 정도로 큰 좌절을 했었던 그였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고 그 이후의 삶은 자신의 고통을 극복하며 작곡을 이어가는 투쟁적인 삶을 살았다. 그런 그의 곁에 거의 유일하게 마음을 나누었던 인물이 있었는데, 바로 루돌프 대공이다. 그는 베토벤의 후원자였으며 음악 레슨을 받는 제자이기도 했다. 1809년 어느 날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 군대가 빈을 공격하자 루돌프 대공은 잠시 빈을 떠났는데, 그때 그를 생각하며 작곡한 것이 바로 ‘고별’이다.


베토벤은 소나타 전체에 고별이라는 타이틀을 붙인 것 이외에도 각 악장마다 테마를 정했다. 악보의 각 악장 시작 부분에 1악장 ‘고별’, 2악장 ‘부재’, 3악장 ‘재회’라고 적혀있다. 베토벤은 그와 빈에서 하루빨리 재회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기에 ‘고별’이라는 단어와는 다르게 전반적으로 활기찬 분위기를 띤다. 베토벤이 붙인 독일어 제목은 ‘Das Lebewohl’인데 출판사에서는 ‘Les adieux’만 붙여서 출판했다. 이에 대해 베토벤은 굉장히 화를 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독일어 Das Lebewoh이 자신의 소중한 사람에게 마음을 다해 건네는 인사라면, Les adieux는 모두에게 건넬 수 있는 평범한 인사이기 때문에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제목에 대한 애착이 컸던 만큼 다른 작품과 달리 특별히 자신이 타이틀을 정한 것을 보면 소울메이트라고 할 수 있는 루돌프 대공에 대한 그의 마음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베토벤은 이 소나타를 루돌프 대공이 빈으로 돌아온 후 그에게 헌정했다.


루돌프 대공은 10대부터 베토벤에게 음악 레슨을 받기 시작해 베토벤이 사망할 때까지 연금 후원을 멈추지 않은 인물이다. 베토벤은 다정한 성격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루돌프 대공에게는 다정한 음악 스승이자 친구였다. 사적인 이야기도 자주 나눴고, 평생 나눈 편지가 100통이 넘는다고 하니 얼마나 각별한 사이인지 알 수 있다. 베토벤은 고별 소나타뿐만 아니라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함머클라비어 소나타’ 등 10곡이 넘는 작품을 그에게 헌정했다. 이후 베토벤이 후기 작품을 작곡할 시기엔 단 한 음도 들을 수 없고 사회적인 생활조차 불가능해 경제적으로도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런 그가 32개의 소나타를 작곡하고 마지막 9번 교향곡을 완성하기까지는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노력과 열정이 있었을 것이다. 투쟁과도 같았던 베토벤의 인생에 힘이 되었던 소중한 친구 루돌프 대공, 그에 대한 마음이 담긴 고별 소나타는 단순한 헤어짐이 아닌, 기쁨의 재회를 염원하는 베토벤의 마음이다.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독일의 본에서 태어난 베토벤은 제2의 모차르트를 만들고자 했던 아버지의 욕심으로 인해 아동학대에 가까운 연주여행을 견디며 자랐다. 이전 시대의 작곡가들과는 달리 귀족이나 왕족에게 후원은 받되, 의존적인 성향을 띠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프리랜서 작곡가로 활동했다.


■루돌프 Rudolf Johannes Joseph Rainier von Habsburg-Lothringen (1788~1831)

베토벤에게 20년간 작곡과 피아노를 배운 루돌프 대공은 레오폴트 황제의 막내아들이었으며 31세에 대주교로 취임했다


- 출처, 올뎃아트, 정혜원 공연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