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의 과학자들이 알아 낸 재미있는 현상 중에 '광전효과'가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금속에 빛을 쪼였더니 전자가 튀어나오는 현상이다. 이 현상 자체만 놓고 보면 고전물리학의 패러다임 속에서 그다지 신기할 일은 없었다. 빛은 전자기파이고 전자기파의 에너지가 금속에 속박된 전자에 전달돼 충분한 에너지를 받은 전자가 금속 밖으로 탈출할 수 있게 된다. 비유적으로 말해서 해안가 백사장에서 모랫바닥에 대고 마치 채찍처럼 밧줄을 휘두르면 모래알이 튀어 오르는 것과 비슷하다. 이때 밧줄이 만드는 파동의 에너지가 백사장의 모래알에 전달되어 모래알이 튕겨 나간다. 여기까지는 이상한 점이 하나도 없다.
문제는 디테일에 있었다. 전자가 금속에 튀어나올 때 가지고 나오는 최대에너지는 금속에 쬐어 준 빛의 세기와 전혀 상관이 없었다. 놀랍게도 전자의 최대에너지는 빛의 파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이런 결과는 1902년 광전효과를 연구하던 독일의 필립 레너드가 발견한 결과였다.
이 결과는 고전물리학의 관점에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놀라운 결과였다. 전자에 전달할 수 있는 빛의 에너지란 그 세기에 비례할 것으로 쉽게 짐작할 수 있는데 실제 실험결과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고 빛의 세기가 전자와 전혀 무관하지는 않았다. 일단 어떻게든 전자가 튀어나와 전류가 흐르게 되면 그 전류의 세기는 빛의 세기가 클수록 증가했다.
더욱 놀라운 점은 빛의 파장이 광전효과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강력한 빛을 쪼여도 그 파장이 길면 전자는 하나도 튀어나오지 않았다. 반면 아무리 빛의 세기가 약하더라도 파장이 충분히 짧으면 전자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파장은 진동수와 역수의 관계에 있으므로 짧은 파장은 큰 진동수에 해당한다. 고전물리학에서는 빛의 에너지가 파장, 또는 진동수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전자기파의 에너지는 전기장의 제곱에 비례할 뿐이다. 이는 말하자면 전자기파라는 파동의 진폭의 제곱에 해당한다. 이는 우리 일상의 경험과도 일치한다.
레너드의 결과가 얼마나 황당한지는 앞서 예로 들었던 백사장과 밧줄의 비유로 살펴보자. 레너드에 따르면 먼저, 백사장 바닥에서 모래가 튕겨 나가는 것은 밧줄을 휘두른 세기와 전혀 상관이 없었다. 오로지 중요한 것은 밧줄을 휘두르는 진동수였다. 진동수는 간단히 말해 1초에 몇 번 밧줄을 휘두르느냐 하는 숫자이다. 백사장을 내려치는 밧줄의 진동수가 크지 않으면 아무리 세게 내려쳐도 모래알이 밖으로 튀어나가지 않았다. 반대로 아무리 밧줄을 약하게 내리쳐도 그 진동수가 충분히 크면 모래알은 백사장 밖으로 튀어나가기 시작했다. 일단 진동수가 충분히 커서 모래알을 밖으로 끄집어낼 정도가 되면 밧줄을 세게 내리칠수록 더 많은 모래알이 밖으로 튀어나갔다. 이것이 레너드의 결과였다. 대체 광전효과의 이 기묘한 결과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바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다. 아인슈타인은 레너드의 결과가 나온 지 3년 뒤인 1905년 광전효과를 설명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1905년은 흔히 ‘아인슈타인 기적의 해’로 부른다. 이 해에 아인슈타인은 물리학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논문을 세 편 썼는데 가장 유명한 특수상대성이론 논문, 브라운 운동을 분자운동론으로 설명한 논문, 그리고 광전효과를 설명한 논문이 그것이다. 브라운 운동 논문은 분자와 원자의 존재를 강력하게 지지했고 광전효과는 양자역학의 시대로 진입하는 길을 넓혔으니,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이 세 편의 논문이 현대물리학을 열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이것이 스위스 베른의 특허국에서 일하던 26세의 청년이 한 해에 모두 이룩한 성과라고 하니 ‘기적의 해’라는 말이 결코 아깝지는 않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역시나 '아인슈타인'이다.
아인슈타인의 키포인트는 막스 플랑크가 5년 전에 도입한 광양자 가설이다. 광양자 가설이란 빛이 어떤 최소한의 에너지 덩어리로 분절돼 있으며 그 최소한의 에너지는 빛의 진동수에 정비례한다는 가설이다. 이때 비례상수가 바로 플랑크 상수다. 아인슈타인은 어릴 때부터 제임스 맥스웰과 그의 전자기 이론의 열렬한 신봉자였지만 광전효과를 설명할 때에는 전혀 다른 접근법을 취했다. 즉, 빛이 금속 안의 전자에 에너지를 전달할 때에는 광양자 가설에서처럼 빛이 진동수에 정비례하는 최소 에너지 덩어리의 분절된 단위들의 집합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아주 간단히 말해, 빛이 입자 알갱이처럼 행동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빛 알갱이, 즉 광자(photon)는 보통의 고전적인 입자와는 달라서 입자 각각이 고유한 진동수(또는 파장)를 갖고 있다. 광자의 분절적이고 입자적인 성질이 사라지면 보통의 고전적인 전자기파와 같게 행동하지만 금속 안의 전자에 에너지를 전달할 때에는 입자처럼 행동한다.
광전효과에서 빛이 입자처럼 행동한다는 것은 마치 하나의 당구공이 다른 당구공에 에너지를 전해 주는 것과도 같다. 이런 관점에서는 빛의 세기가 광자의 많고 적음으로 설명된다. 금속에 빛을 비춘다는 것은 수없이 많은 광자라는 알갱이를 금속 안의 전자를 향해 난사하는 것과도 같다. 이 과정에서 광자와 전자는 당구공처럼 충돌하면서 에너지를 주고받는다. 이때 각 광자의 에너지는 그 광자가 고유하게 품고 있는 진동수에 정비례한다.
아인슈타인의 아이디어에서는 레너드의 결과가 아주 간단하고도 쉽게 설명된다. 금속에 묻혀 있는 전자를 꺼내기 위해서는 전자 하나와 충돌하는 광자 하나의 에너지가 얼마인지가 중요하다. 그 에너지는 광자의 진동수에 비례한다. 이때 광자의 개수(빛의 세기)가 얼마나 많은지는 전자 하나의 입장에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많은 광자가 쏟아져도 전자 하나와 충돌하는 광자의 에너지가 크지 않으면 전자는 하나도 금속 밖으로 튀어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아무리 광자의 개수가 적더라도 각 광자의 진동수가 크기만 하면 광자의 에너지가 크기 때문에 그와 충돌하는 전자는 충분히 큰 에너지를 가질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광자의 개수가 적으므로 금속 밖으로 튕겨나가는 전자의 개수는 많지 않을 것이다. 만약 충분히 큰 진동수를 가진 광자가 충분히 많다면 금속 밖으로 탈출하는 전자의 개수도 그에 비례해서 많아질 것이다. 또한 광자의 진동수가 클수록 전자가 가지는 최대에너지도 비례해서 커질 것이다. 이 모든 결과는 레너드의 관측결과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러니까, 적어도 광전효과라는 현상에서는 빛이 광양자라는 알갱이처럼 행동한다.
광양자 가설에서는 광자의 에너지가 진동수와 플랑크 상수의 곱으로 주어지므로 광전효과의 실험결과들을 광양자 가설로 기술하면 언제나 플랑크 상수가 따라다닌다. 따라서 광전효과의 결과를 잘 분석하면 그로부터 플랑크 상수의 값을 얻을 수 있다. 미국의 물리학자인 로버트 밀리컨은 1916년 이와 같은 방법으로 플랑크 상수의 값을 아주 정밀하게 측정했다.
플랑크 상수는 미시세계를 지배하는 가장 근본적인 자연의 상수이다. 20세기에는 자연의 상수를 모두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실험을 통해 측정해서 그 값을 결정하였다. 그러나 지난 2019년 국제도량형국에서는 모든 단위를 자연 상수를 기준으로 해서 자연표준으로 바꾸기 위해 플랑크 상수나 광속 같은 중요한 자연 상수를 아예 얼마라고 ‘정의’해 버렸다. 이에 따르면 플랑크 상수는 로 ‘정의’된다. 여기서 J는 에너지의 단위인 줄이고 sec는 초를 뜻한다. 이로부터 질량의 단위인 킬로그램(kg)도 새롭게 정의되었다. 그때까지 1kg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원기둥 모양의 금속덩어리(kg원기)의 질량이다. 플랑크 상수가 이리도 작고도 복잡한 숫자인 이유는 그 단위인 줄과 초가 인간과 같은 거시세계에 적합한 단위이기 때문이다.
플랑크 상수는 거시세계와 미시세계를 가르는 기준이라고도 할 수 있다. 대략 말하자면 플랑크 상수를 무시할 수 있으면 거시세계인 것이고 무시할 수 없으면 미시세계이다. 광양자 가설에서는 광자의 에너지가 진동수와 플랑크 상수의 곱으로 주어지는 양을 최소량으로 주어지니까 특정한 진동수의 빛은 그 최소량의 정수배로만 분절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거시적인 시각에서는 플랑크 상수가 너무나 작기 때문에 최소량의 한 배와 두 배가 거의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연속적인 값으로 여길 수 있다. 반면 금속 안에 갇힌 전자의 입장에서는 광자 에너지의 최소량의 한 배와 두 배의 차이가 크게 느껴질 것이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이렇다. 아주 긴 계단을 멀리서 보면 거의 매끈한 경사면으로 보이지만 가까이서 자세히 살펴보면 한 계단 한 계단 분절적인 높이로만 쌓아올린 구조물이다. 한 계단보다 더 낮은 높이로는 오르거나 내려갈 수 없다. 여기서 한 계단의 높이를 대략 플랑크 상수라 생각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광전효과를 성공적으로 설명한 공로로 1921년 노벨 물리학상을 단독으로 수상했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으로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당연히 상대성이론으로 노벨상을 받았을 것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정확한 수상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론물리학에 기여한 공로, 특히 광전효과의 법칙을 발견한 것에 기여한 공로(for his services to Theoretical Physics, and especially for his discovery of the law of the photoelectric effect)”
아마도 ‘이론물리학에 기여한 공로’ 속에 상대성이론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 1921년이면 이미 영국의 천문학자 에딩턴이 1919년의 일식탐사로 일반상대성이론이 예측한 빛의 휘어짐을 확인한 뒤였고, 아인슈타인의 명성은 학계를 넘어 대중적으로도 큰 인기를 얻던 시점이었다. 아인슈타인이 단독으로 수상해서 챙긴 막대한 상금은 그와 이혼한 첫 아내 밀레바 마리치에게 돌아갔다. 이는 사전에 이미 합의된 사항이었다. 아인슈타인은 1919년 2월 마리치와 공식적으로 이혼했고 몇 달 뒤엔 사촌 엘자 뢰벤탈과 재혼했다.
이상, 출처; 동아사이언스
[사이언스N사피엔스] 아인슈타인이 노벨상을 받은 업적 '광전효과' : 동아사이언스 (dongascienc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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