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역
동막에서 한참을 걸어나와
버스를 타고 도착한 역
문명을 모르고 자란 상고머리가
멀리 서울로 가는 기차, 창가에서
창 밖의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결연한 얼굴로 서 계셨다
어머니는 몸집보다 큰 고추 포대를
이리 저리 옮기셨다
서울로 가면
생활의 밑천이 되고
더러는 담임에게 촌지로 건네던
부푼 고추 포대들이
부푼 불안감마냥 기차에서 뒹굴었다
검은 교복의 시절, 방학이 되면
청량리발 제천행 기차를 탔다
한 학기의 생활은
성적표 숫자와 담임의 글 한 줄에
혹독하게 요약이 되어 있었다
제천역에서 양화리로 들어가는 버스
내 생각은 버스처럼 흔들렸다
결국, 고교 1년을 쉬었다
자전거를 타는 중학교 국어선생
그 꿈은 멀리 밀쳐졌고
나는 새로운 꿈을 꾸었다
학생도 아닌, 일반인도 아닌
고교 휴학생은 거리낌없이
동막으로 가는 성황당 고개를 넘었다
세
월
은
흘
러
출장길, 제천역에 들른 날
넓게 둘러본 역에는
청량리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는 철길들도 있었다
안동역, 대전역, 강릉역..
알고는 있었지만
떠나지 못하였던 철길
왜 청량리역만을 향하였을까
청량리역에서 제천행을 탄다
노부모를 만나러 가는 길
기차는 남한강을 지나 치악을 넘는다
아버지의 굽은 어깨
어머니의 생활이 숨 쉬는 곳
돌아가고플 때나 떠나고플 때나
제천역은 그 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