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핵가방’이 논란의 대상이 됐다. 바이든 정부에 전달해야 할 ‘핵가방’을 트럼프 대통령이 인계하지 않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미국은 현재 6,900여 기가 넘는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 중 900여 기는 상시 발사할 수 있다. 미국 대통령은 가방 안 버튼을 눌러 핵미사일을 쏠 수 있는 ‘핵가방’은 언제든지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핵전쟁이란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을 사용하는 전쟁을 말한다. 과거 원자폭탄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에 투하됐다. 그 결과 일본은 항복했고 전쟁은 끝났다.
원자폭탄의 아버지, 오펜하이머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존 로버트 오펜하이머(John Robert Oppenheimer, 1904~1967). 그는 세계 최초로 원자폭탄을 만드는데 성공하며 오늘날 ‘핵의 아버지’라 불린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3~1945년경 로스앨러모스(Los Alamos) 국립연구소장으로 재직하며 원자폭탄 설계 및 제작을 감독하며 결국 원자폭탄 제조에 성공한다.
원자폭탄의 위력은 과거 일본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결과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1945년 8월 6일 당시 미국은 세계 최초의 원자폭탄, 일명 ‘리틀보이’를 日 히로시마 한복판에 떨어뜨렸다. 폭탄이 투하되고 폭심지에서 반경 1.2km 범위에 있는 사람들의 절반이 즉사했다. 히로시마에서는 34만 명 인구 중 14만 명 이상 사망했다. 하지만 일본은 투항하지 않았다. 미국은 3일 후 나가사키에 ‘팻맨’이라 불리는 원자폭탄을 발사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나가사키에서는 7만 명 이상이 즉사했다. 이후 피폭자들은 일본 전역에 수 십만 명에 달했다.
일본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터진 후 즉시 투항했다. 오랜 시간 전 세계인들을 살육의 현장으로 끌어낸 일본의 최후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의 항복을 받아낸 원자폭탄은 수많은 인명을 살상한 무기였지만 역으로는 더 큰 살상을 막은 무기가 됐다. 그 결과 종전 후 그는 ‘원폭의 아버지’라 불리며 국가적 영웅이 될 수 있었다.
오펜하이머는 천재였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탁월한 학습능력을 지니고 공부에 열중했다. 하버드대학교 화학과를 조기 졸업한 후 양자역학이 태동하는 유럽으로 유학을 갔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이론물리학을 연구하는 괴팅겐대학으로 옮겨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그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UC 버클리 대학교수가 된다. 이때 그의 나이는 불과 25세였다.오펜하이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미국 정부 주도하에서 우라늄을 이용한 폭탄을 연구하는 ‘맨해튼 계획(원자폭탄 개발 계획)’에 참여한다. 그는 뉴멕시코주에 위치한 로스앨러모스(Los Alamos) 국립연구소장으로 재직하며 최대 6천여 명의 과학자를 참여시켜 결국 원자폭탄 개발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수소폭탄의 아버지, 에드워드 텔러
오펜하이머가 원자폭탄의 아버지라면 에드워드 텔러(Edward Teller, 1908~2003)는 수소폭탄의 아버지라 불린다. 미국의 원자물리학자인 에드워드 텔러는 오펜하이머와 마찬가지로 1943년 로스앨러모스 과학연구소가 설립했을 때 비밀리에 참여했다. 그는 원자폭탄을 연구하면서도 개인적으로 원자폭탄보다 더 강력한 수소 열핵분열 폭탄을 연구했다. 종전 후 그는 수소폭탄에 대한 연구를 더 이어갔다. 이후 그는 세계 최초로 수소폭탄을 개발하는데 큰 공헌을 하게 된다.
수소폭탄은 원자폭탄의 더 위협적인 위력을 지녔다. 미국이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하자 소련(현 러시아)도 원폭실험을 강행했다. 그러자 미국은 이에 맞서기 위해 더욱 강력한 핵무기를 원했다. 1950년 미국 해리 트루먼 대통령(Harry S. Truman)은 수소폭탄 개발과 원자폭탄 개량을 지시했다. 텔러의 수소폭탄 연구는 1952년 남태평양 에네웨타크 환초(Enewetak Atoll)에서 실시한 수소폭탄 실험으로 이어졌다. 결과는 연이어 대성공이었다. 이후 태평양 비키니섬에서 진행된 수소폭탄 실험은 과거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한 원자폭탄의 850배에 해당하는 파괴력을 보였다.
원자폭탄의 아버지라 불리지만 오펜하이머는 수소폭탄 개발에 대해서는 극렬히 반대했다. 핵무기는 결국 사람과 모든 자연을 파괴하는 엄청난 살상 무기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에드워드 텔레는 공산주의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더욱 강력한 핵무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제 핵무기의 파괴력을 모르는 이는 없다. 핵전쟁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쟁이다. 핵폭탄은 한순간에 인류가 만든 모든 것을 파괴할 것이다. 평화를 위해 만들어진 핵무기가 앞으로 인류의 종말을 주도할 심판의 도구가 될지 평화의 도구가 될지는 인류 모두가 지켜보고 노력해야 할 일이다.
이상, 출처; 사이언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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