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살아가자/일상의 상식

페니실린의 진정한 영웅들

BK(우정) 2021. 5. 22. 06:11

“1989년 10월 23일 뉴욕 맨해턴 이스트 사이드에 자리한 미국 록펠러대에서는 그라미시딘 발견 50주년을 기념하는 '항생제 시대의 개막'이라는 주제의 심포지움이 열렸다. 세계 의학사가들과 전염병 전문가들을 포함하여 350여명이 참석한 이 모임은 지금까지 잘못 전해진 항생제 발견의 기록을 바로잡고 페니실린의 그늘에 가려 햇빛을 못본 르네 듀보스의 업적을 재조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현원복 《최초로 항생제를 발견한 듀보스》 중에서⁠

 

르네 듀보스는 최초의 항생제를 발견한 미생물학자이자, 과학과 사회의 관계를 성찰했던 과학지식인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플레밍을 기억할 뿐, 듀보스를 기억하지 않는다. 록펠러재단제공

 

영웅서사와 4할타자

 

페니실린의 발견사는 과학사에서 흔히 발견되는 영웅서사의 표본이다. 과학사가 왜 영웅서사로 채워지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영웅서사는 과학현장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사건들과 거리가 멀다. 우리에게 익숙한 과학사의 영웅은 실제로는 영웅이 아니거나, 평범한 과학자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영웅이거나, 혹은 그저 운이 좋은 사람들일 가능성이 크다. 과학생태계가 지금처럼 복잡하거나 경쟁적이지 않던 수백년전의 과학자는, 실제로 영웅적으로 한 분야를 개척하는 것이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현대를 사는 과학자들 중 그런 영웅이 등장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pxhere 제공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풀하우스》 라는 책에서 프로야구 리그에서 더이상 4할 타자가 나오지 않는 이유에 대해 나름의 분석을 내놨다.야구선수들의 전체적인 수준이 동반상승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었다. 물론 굴드는 진화의 역사가 오래될 수록 특이한 돌연변이가 등장하는 일은 무척 어렵다는 점, 즉 인간과 같은 종이 다시 등장할 가능성이 아주 작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 이런 비유를 들었다. 하지만, 과학사에서 어쩌면 존재했을지 모를 아이작 뉴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찰스 다윈 같은 영웅을 더이상 찾기 어려운 이유 또한 4할 타자가 사라진 이유와 동일할 것이다. 과학자들의 수준은 점진적으로 상승하고 있으며, 100년 전에는 영웅이 되었을지도 모를 뛰어난 과학자 또한, 현대의 과학생태계에선 평범한 보통과학자가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페니실린 발견사는 여전히 과학사가들 사이에서 논쟁 중이다. 역사가들에 의해 합의된 바에 따르면, 알렉산더 플레밍의 역할은 실제에 비해 지나치게 부풀려져 있다. 물론 플레밍이 곰팡이균 페니실륨 노타툼의 포도상 구균을 용해현상을 발견하고 이를 연구하기 시작한 최초의 발견자임엔 틀림이 없다. 하지만 플레밍은 페니실린을 제대로 추출하지 못해 10여년간 연구에 진척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고, 영국 옥스퍼드대의 병리학자 하워드 플로리와 생화학자 에른스트 체인이 페니실린으로 생쥐와 인간에서 패혈증을 치료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나서야, 언론을 통해 주목을 받게 된다. 훗날 이 세 명의 과학자는 함께 노벨상을 받게 되지만, 플레밍은 플로리와 체인의 연구에 거의 기여한 바가 없다.

 

플로리와 체인, 발견과 치료의 사이에서

 

플레밍의 영웅신화에서 재미있는 사실은 그가 페니실린을 발견하게 된 이유가 그의 게으름과 독특한 성격, 그리고 지독할 정도로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플레밍은 일하던 병원에서 게으르고 지저분한 학자로 유명했다고 한다. 20세기 초반 세균학이 막 발전하던 시기에,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배양접시를 바로바로 세척하고 치웠지만, 플레밍은 실험이 끝난 배양접시를 그냥 내팽개쳐두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페니실린을 만드는 곰팡이 포자가 우연히 포도상 구균 포자에 떨어진 바로 그 날도, 플레밍은 실험이 끝난 배양접시를 세척하지 않고 실험실에 내버려 둔채 휴가를 떠났다. 만약 그가 휴가를 가지 않고 열심히 일했더라면 페니실린 발견은 몇십년 후로 미뤄졌을지 모를 일이다. 이후 그는 여러 방면으로 페니실린의 효과를 증명하려 애썼지만, 플로리와 체인이 순도 높은 페니실린을 정제해서 효과를 제대로 증명하기 전까지 그다지 유명한 과학자가 아니었다.

 

스웨덴 국왕으로부터 노벨상을 받고 있는 알렉산더 플레밍 경. 위키피디아 제공

 

플레밍이 발견 자체에 만족하는 기초과학자에 가까운 정체성을 지닌 인물이었다면, 플로리와 체인은 페니실린으로 세균성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목적인 기초의학자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다. 동물실험에 성공했지만, 대량의 페니실린을 정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지자, 이들은 연구에 만족할 수 없었다. 플레밍이 유명해진 이유도 바로 이런 차이 때문이었다. 페니실린의 효과가 언론에 대서특필된 건, 2차 세계대전에서 병사들의 전염병 치료에 탁월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플로리와 체인은 페니실린의 대량생산이 아직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언론과의 인터뷰를 꺼리고 연구에 몰두한 반면, 플레밍은 언론을 호의적으로 대하며 유명세를 즐겼다. 순식간에 플레밍은 페니실린 개발에서 잊혀진 최초의 발견자로 유럽전역에 알려졌고, 그의 페니실린 발견사는 도시전설로 굳어졌다.

 

플레밍이 유명세를 즐기고 있을 무렵, 플로리와 체인은 페니실린의 대규모 생산을 위해 미국의 제약업체들에 지원을 호소했다. 마침 록펠러재단이 이 둘의 연구를 지원하자 플로리와 체인은 아예 미국으로 건너가 페니실린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결국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된 페니실린은 전장에서 수많은 병사들의 목숨을 살렸고, 노벨상 위원회는 1943년부터 전선에서 사용된 페니실린에 대해 이례적으로 1945년 노벨상 시상을 결정한다. 즉, 페니실린이 실제로 전장에서 사용될 수 있었던 공로는 플레밍이 아니라 플로리와 체인에게 있다. 심지어 플레밍은 플로리와 체인이 연구에 집중하던 기간 동안 아예 페니실린 연구를 덮어두고 있었다. 유명해지는 것도 실력일 수 있지만, 플레밍이 지독할 정도로 운이 좋은 과학자였던건 분명해 보인다.

 

듀보스와 루소, 페니실린의 뒤에서

 

인터넷에 떠도는 가벼운 대중과학자들의 이야기 속에서 플레밍은 최초로 항생제를 발견한 과학자로 소개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플레밍의 페니실린은 2차 세계대전이라는 특수한 환경과 그 뛰어난 효과로 인한 언론의 대서특필, 그리고 노벨상위원회의 이례적인 빠른 수상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만들어낸 과학사의 독특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플레밍과 푸른곰팡이가 만드는 페니실린의 영웅담 때문에, 실제로 항생제 발견과 생산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과학자들의 상당수가 잊혀졌다. 아니, 잊혀졌다기보다 플레밍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과학자들은 무시되고, 과학의 발견을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이야기로 만들기 좋아하는 언론의 왜곡으로 실제로 존중받아야할 과학현장의 이야기는 억울하게 묻히고 말았다.

 

르네 듀보스 (1901~1982). 록펠러재단 제공

 

여기에 르네 듀보스가 있다. 듀보스는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가 럿거스대에서 세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과학자다. 그는 록펠러대에서 우연히 세균학자 오즈월드 에이버리를 만나, 훗날 에이버리가 유전물질이 DNA임을 밝히기 위해 사용했던 폐렴구균과 관련된 연구를 함께 수행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듀보스는 토양미생물에서 폐렴구균의 다당류 코팅을 벗기는 물질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 물질이 최초의 항생제인 그라미시딘이다. 그리고 바로 이 듀보스의 연구결과를 알게 된 플로리와 체인은 자신들의 페니실린 연구에 듀보스의 연구를 적용해 페니실린 치료제 개발에 성공하게 된다. 듀보스의 발견엔 노벨상이 주어지지 않았지만, 그는 미국 11개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고 로버트 코흐상을 비롯한 수많은 상을 받으며, 세균학계에서 플레밍보다 훨씬 광범위한 영향력을 끼쳤다. 특히 그는 과학적 사회를 건설하는 일에 관심을 갖은 과학 지식인이었고, 1969년 환경운동 등에 대한 저술로 퓰리처상까지 받는다.

 

마가렛 허틴슨 루소는 페니실린 대량생산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 여성 화학공학자다. 마가렛 허친슨 루소는 페니실린 대량생산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 여성 화학공학자다. 월터P로이터 도서관 제공

 

듀보스 뿐 아니라, 페니실린의 대량생산 과정에 크게 기여한 여성 공학자 마가렛 허친슨 루소도 플레밍의 유명세 때문에 잊혀졌던 인물이다.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최초 여성 화학공학 박사학위자였던 루소는 원래 합성고무의 생산과 전투기용 연료를 증류하는 법을 개발한 화학공학자였다. 하지만 플로리와 체인이 페니실린 대량생산을 위해 미국제약회사에 도움을 청했을 때, 제약회사 화이자는 그녀에게 이 막중한 임무를 맡긴다. 루소는 화이자가 개발한 ‘딥 탱크 발효’ 공정을 응용해 뉴욕 브루클린의 쓰러져가던 얼음 공장을 페니실린 생산 공장으로 탈바꿈시켰다.

 

루소가 아니었다면 페니실린의 대량 생산은 오랫동안 불가능했을 것이고, 만약 그랬다면 2차세계대전 중에 페니실린이 사용될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3명에게만 수상의 기회를 주는 어리석은 노벨상 시상위원회는 루소에게 노벨상을 수여하지 않았다⁠. 이미 반세기가 넘게 지났지만, 코로나19 사태에서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둘러싼 과학현장에서 벌어지는 언론의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기사들과 사실 왜곡은 별반 달라진게 없다. 이제 더이상 플레밍과 같은 영웅서사가 등장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상, 출처; 동아사이언스

[김우재의 보통과학자] 언론 왜곡으로 잊혀진 페니실린 탄생의 진짜 주역들 : 동아사이언스 (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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