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물론
오늘도 막걸리이다
흔들려 보자
와인을 흔들면 '와인의 눈물'이 흘러
향이 더 깊게 오고
막걸리를 흔들면 '지게미'가 위로 올라
맛이 더 깊게 오고
마음을 흔들면 '누운 감성'이 일어나
삶이 더 깊게 오고
막걸리를 따는 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지
첫 번째는 그냥 따서
윗쪽 맑은 술부터
아래쪽 앙금까지
변하는 맛을 보는 거야
어차피 인생의 맛은
살아갈수록 변해가니
두 번째는 마개를 잡고
위 아래를 유지한 채로
휘휘 몇바퀴를 돌리면 되지
어차피 인생이란
돌고 도는 것이니
세 번째는 흔들고 나서
두 번쯤 길게
병 모가지를 죄면 되지
어차피 인생이란
숨막힐 때도 있어야하니
네 번째는 흔들고 나서
쇠숫가락으로
병의 대가리를
열댓번쯤 때리면 되지
어차피 인생이란
맞으면서 가는 거야
다섯 번째는 흔들고 나서
그냥 따는 거야
넘치면서 퍼지는
막걸리에 몸을 적시며
어차피 인생의 맛은
눈물 젖을 때 최고이니
그저 살아 볼 일이다
잘살고 못사는 것은 오만일 뿐
불행이 있어야 행복이 있고
눈물이 있어야 웃음이 있다
거역을 모르는 나무도 비바람에 꺾이는데
만물의 영장이라 자칭하는 사람이 되어
꺾이지 않고 세파를 헤쳐갈 수 있으랴
작은 나무는 덤불을 이루고
높은 나무는 하늘을 향하듯이
두 발은 뿌리가 되어 땅을 딛고
두 팔은 가지가 되어 하늘을 안고
비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같은 인생
안고 부대끼며, 더러는 원망도 하고
진한 눈물에 웃음을 말아
막걸리 잔을 기울이고
그리 살다가 홀로 집을 향하듯 돌아설 일이다
잔치가 끝난 뒤, 바지춤을 추리며
붉은 눈으로 일어서는 황혼이 되는 날
그 때까지는 그저 살아 볼 일이다
막걸리 찬가/BK
막걸리가 좋다
열살 무렵에는
술 받아오라는 어르신들의 말씀
친구랑 댕겨오며 홀짝거렸고
스무살 무렵에는
민주화다 뭐다, 최루탄의 거리들
동지들과 분에 떨며 들이켰고
서른 무렵에는
달동네 산기슭에서 산아래 불빛들
식솔들을 생각하며 기울였고
마흔 무렵에는
돌아온 캠퍼스, 옛일을 떠올리며
후배, 제자들과 건배를 했고
쉰 무렵에는
글이 좋아 책이 좋아, 종로 뒷골목에서
글쟁이들의 말을 섞어 마셨고
예순에 다가서는데
나의 사랑 막걸리는
어디에서 익어갈까
술벗들은 어디에 있을까
막걸리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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