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살아가자/일상의 상식

AC와 BC (Corona) 사이에서

BK(우정) 2020. 4. 29. 04:47
지구가 잠시 쉬고 있다. 일상의 쳇바퀴 위에서 질주하던 세상이 멈춰서거나 속도를 줄이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은 전 지구 1일 생활권에서 도미노파장을 일으키며 경제활동의 휴지기를 가져왔다. 역사상 페스트 창궐을 비문명 암흑기의 비극으로 치부했던 것은 현대인의 오만이었고, 이는 시대•사회•문명을 가리지 않는 것이었다. 인간의 욕망이 심은 대로 거두는 인과응보는 만고불변의 규칙이었다.

지구촌 도처에서 거주민들이 극심한 고통에 처해 있다. 사랑하는 이들을 잃고, 국경과 도시봉쇄 및 직장폐쇄로 재정파탄과 생활고에 시달리고, 식료품 조달과 끼니 연명이 어렵고, 의료체계 붕괴로 희생자가 속출하고, 인생의 중대사를 겪으면서 감염위험 때문에 기쁨도 슬픔도 위로도 고난도 더불어 나누지 못한다. 21세기에 최저 생존 여건이나 인간 존엄 유지가 여의치 않은 때가 도래한 것이다.

심각한 민생고를 초래한 지구의 틈새 휴지기는, 하지만 뜻밖에도 예상치 못한 경우의 수를 살며시 제시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일상사가 정지되고 보니 그간 살면서 중요하게 보인 많은 것은 사실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꼭 필요하다고 여겼던 것은 별로 필요치 않았다. 가졌다고 생각했던 것은 허상이었고, 당연시했던 것은 결코 당연하지 않았다. 하찮게 여겼던 것은 의외로 아주 귀한 것이었다. 이 휴식기는 지나온 삶에서 소중한 것과 부질없는 것의 반전, 남겨진 시간과 사라진 시간의 이면을 보여주며, 삶의 경중의 가려진 진실을 들춰냈다.

매일같이 반복했던 일들에 급제동이 걸렸다. 등교 제한으로 한적한 캠퍼스에서 갖는 최소한의 비상대책회의는 인생의 수많은 시간이 회의로 소비되었음을 직시하게 한다. 많은 것을 포기당하고 보니 삶에서 진정 중요한 것들이 우선순위에서 밀려있음을 깨닫는다. 물질주의와 인간중심주의 문화에 중독되어 살아왔음에 화들짝 놀라며, 가장 기본적인 것만으로도 삶이 영위됨에 감사한다. 하루 24시간 동안 당연시했던 것이 실상은 매 순간 우리를 생존케 하는 축복이었음에 감사한다. 스스로 인생의 주인이고 자기 세계의 주관자인 양 살아온 우둔함, 그리고 까뮈의 <페스트>에서처럼 ‘너와 나의 상관관계’에 내 존재가 속해있다는 겸허한 처지를 다시금 깨닫고 감사한다.

눈을 떠보니 잊고 지낸 감사의 조건이 수두룩하다. 온라인이 아니라 학생들과 강의실에서 대면수업하고 캠퍼스 안팎에서 그들의 찬란한 삶의 만화경을 나누는 것, 수시로 여행하고 자연과 세상의 경이로움을 한껏 즐기는 것, 마음 맞는 이들과 외식하는 것, 사람들과 악수와 허그를 나누고 대화하는 것, 미술관과 영화관과 공연장에서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모든 것이 감사한 일이었다.

마치 이 행성의 주인인 양 착각하고 학대하고 착취해온 인간들 때문에 중병이 든 지구가 잠깐 휴식으로 선보이는 회복의 징후들도 감사하다. 대기와 대지와 바다의 오염을 야기한 문명의 폐해요인들이 감소하면서, 우리 등쌀에 시달려온 지구의 무수한 생명체는 생존이 한결 수월해졌다. 대기오염이 잦아들자 인도의 대도시 앞에 드러난 웅장한 히말라야산맥처럼, 도시의 가리개 뒤에 숨겨졌던 자연의 크고 작은 자태들이 눈부시다. 도처에서 숨어 지내던 동물들이 고개를 내밀고, 바다에 출현하는 낯선 어류들이 사람들의 환호에 답한다.

광대한 우주에 산재한 1천억 개 이상의 은하 속에서 어쩌면 생명체가 살기에 최적합하면서도 가장 ‘임자’ 잘못 만난 행성, 거주민의 과욕과 착취에 사멸해가는 행성 지구가 아직 치유 가능함을 보여준다. 소싯적 읽은 매들린 렝글의 소설 <시간의 주름, A Wrinkle in Time>에서 미스 위치가 말하듯 나와 너는 우주의 일부이다. 우리는 모두 수십억 년 유래의 물질로 구성된 유기체적 세계와 우주의 일부이다. B.C.와 A.D.로 나뉜 인류사가 또다시 “B.C.(Before Corona)와 A.C.(After Corona)”로 전환되는 역사적 시점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이다.

이상, 출처; 대학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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