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프리 데이비(Humphry Davy)는 1778년 영국에서 태어나 과학자로서 성공 가도를 달리며 영광스러운 왕립학회장까지 지냈다. 가장 잘 알려진 업적은 화학에 관한 것인데, 마침 새로운 원소들이 잇따라 발견되던 시절이 그의 전성기였던 덕분에, 데이비는 1807년에 칼륨과 나트륨을 발견하고 이듬해에 칼슘, 스트론튬, 바륨, 마그네슘, 붕소를 발견했다.
실생활에서도 ‘데이비 램프’라는 그의 발명품이 유명했다. 당시의 탄광에서는 조명등의 불꽃이 갱도에 들어찬 가연성 기체들에 옮겨붙어 일어나는 폭발사고가 빈번했는데, 데이비램프는 그런 폭발의 위험을 대폭 감소시킨 새로운 안전등이었다. 원리는 등의 심지 주위를 촘촘한 철망으로 감싸 심지에 붙은 불꽃이 철망 바깥으로 삐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 간단한 원리가 수많은 탄광 노동자들의 목숨을 구하고 그 가족들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았다.
데이비보다 2년 먼저 현재의 폴란드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활동한 과학자 요한 빌헬름 리터(Johann Wilhelm Ritter)는 그렇게 찬란한 삶을 살지 못했다. 독일 낭만주의나 근대 과학사에 특별한 관심이 있는 독자가 아니라면, 34세로 요절한 이 기이한 과학자의 이름조차 모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리터는 자그마치 자외선을 발견했으므로 과학자로서 존경받을 자격을 충분히 갖췄다.
하지만 더 흥미로운 리터의 진면목은 그 발견의 과정에서 드러난다. 가시광선 스펙트럼의 양 끝 바로 너머에 위치한 적외선과 자외선은 각각 1800년과 그 이듬해에 발견되었다. 적외선의 발견자는 일찍이 1781년에 천왕성을 발견하여 태양계를 두 배로 확장한 윌리엄 허셜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리터는 단박에 자외선도 존재한다고 예측했다. 왜냐하면 스펙트럼의 대칭성이 보존되어야 한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확신의 과학적 근거는 전혀 없었다. 아무튼 스펙트럼의 반대쪽 끝에서 또 다른 보이지 않는 빛을 찾아내기 위하여 실험과 탐구를 거듭한 끝에, 그는 정말로 자외선(화학반응을 일으키는 광선이라는 뜻으로 리터 본인이 붙인 명칭은 ‘화학선(chemical ray)’)을 발견했다.
사실 리터는 과학자였을 뿐 아니라 오늘날의 기준에서는 신비주의자에 가까운 철학자이기도 했다. 독일 자연철학을 대표하는 셸링은 리터보다 고작 한 살 위였지만 리터가 다닌 예나 대학교의 교수로서 그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괴짜 과학자 리터의 열정은 거의 독학으로 터득한 예리한 관찰력과 실험 솜씨만을 길잡이로 삼지 않았다. ‘맞선 양극의 통일’이나 ‘자연의 심층적 주기성(週期性)’과 같은 형이상학적 원리와 “만물은 변용된 물이다”라는 탈레스 풍의 기이한 믿음도 그를 이끌었다.
이쯤 되면 사이비 과학자의 풍모가 느껴질 법한데, 실제로 리터는 지하의 물이나 기타 광물을 찾아낼 목적으로 사용하는 ‘수맥 탐지용 막대(divining rod)’를 연구하기까지 했다. Y자 모양의 나뭇가지 한 개나 L자 모양의 막대 두 개를 들고 지하수 따위를 찾아다니는 우스꽝스러운 관행은 당연히 사이비 과학이다. 그러나 한 건의 실수로 한 사람 전체를 매장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데이비와 리터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두 사람 다 약방에서 조수로 일하며 독학으로 과학을 공부했다. 데이비는 끝내 대학교에 다니지 않았고, 리터는 나중에 예나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긴 했지만 과학에 대한 공부는 내내 독학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이 특징은 그리 예외적이지 않다. 당시에 특히 영국에는 대학교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유명 과학자가 꽤 있었다. 대표적으로 라부아지에의 공격에 맞서 플로지스톤 이론을 옹호한 조지프 프리스틀리와 데이비의 조수로서 과학자 경력을 시작한 마이클 패러데이가 그러하다.
둘째, 데이비와 리터는 자기 몸을 이용한 실험을 서슴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것 역시 당대에는 상당히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데이비는 아산화질소를 직접 흡입하는 실험을 통해 그 기체가 웃음을 일으키고 상당한 마취 효과도 발휘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1800년에 볼타 전지를 발명한 알레산드로 볼타도 전류가 일으키는 효과를 탐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동원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시에 가용한 전류 탐지기는 그의 몸뿐이었다. 그는 전류가 기이한 맛, 시각적 섬광, 탁탁거리는 소음을 일으킨다는 것을 자가 실험으로 발견했다. 그의 보고에 따르면, 전류로 일으킬 수 없는 유일한 감각은 후각이었다.
독일 낭만주의자들이 사랑한 과학자 리터의 자가 실험은 더 과감했을 것이 뻔하다. 그는 전기 등에 관한 실험에 자신의 모든 감각을 바치다시피 했다고 한다. 그의 요절은 그런 자가 실험과 무관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지금 돌이켜보면 무모하다고 평가해야 마땅할 텐데도, 데이비와 리터의 독학과 자가 실험은 대단히 매혹적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들은 교과서로 정리된 글을 통해 과학을 배우고 안전성이 확인된 경로로 새 터전을 개척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그들은 외톨이 개인으로서 길들지 않은 자연과 맞닥뜨린 모험가였다.
시인 노발리스는 리터를 이렇게 평가했다. “정말이지 리터는 자연에 깃든 진정한 세계 영혼을 탐색하고 있다. 그는 보이고 만져지는 문자들을 해독하고자 한다.” 이 중에서도 ‘보이고 만져지는 문자’라는 인상적인 표현이 가슴에 남는다. 어쩌면 우리는 조직과 제도의 품 안에서 안락을 누리는 대가로 모험의 아름다움과 짜릿함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꽤 많은 시를 남긴 시인이기도 한 데이비는 아산화질소를 직접 흡입한 경험을 담아 이런 시를 썼다.
부정한 불도 없는데 내 가슴은 불타네.
하지만 내 뺨은 장밋빛으로 붉어져 따뜻하고
하지만 내 눈은 반짝이는 광채로 가득 차고
하지만 내 입은 웅얼거리는 소리로 가득 차고
하지만 내 팔다리는 내면의 황홀감으로 전율하고
새로 태어난 힘을 입었네.
장난기가 적잖이 밴 이 운문과 달리, 마지막으로 인용할 데이비의 문장은 훨씬 더 진지하다. 과학계 안팎의 모든 사람이 담아 들을 만하다. “과학에 대한 우리의 견해가 궁극적이라는 생각, 자연에 수수께끼란 없다는 생각, 우리의 승리가 완벽하다는 생각, 정복할 신세계는 없다는 생각만큼 인간 정신의 진보에 해로운 것은 없다.”-1810년의 강의에서
이상, 출처; 사이언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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