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이외의 분야에서도 10대 시절에 중요한 발견을 한 이들이 있는데, 대표적인 경우로서 인공 염료를 처음 발견한 화학자 퍼킨(William H. Perkin, 1838-1907)이 있다. 그는 천재적이라는 평가를 받지는 않았으나, 어릴 적부터 화학에 심취하여 열심히 매진한 끝에 일찌감치 큰 업적을 남겼다. 퍼킨은 영국 런던에서 부유한 토목 업자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퍼킨의 부모는 그가 화학을 공부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굳은 의지를 지니고 있었던 그는 15세의 나이에 왕립화학학교에 입학하였고, 바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는데 행운도 그의 편이었다.
즉 그는 학교에 입학한 지 2년 후에 독일 출신인 호프만(August W. Hofmann, 1818-1892) 교수의 조수로 일하게 된 것이다. 호프만은 유기화학의 창시자 리비히(Justus von Liebig,; 1803-1873)의 제자로서 여러 업적으로 화학자로서 명성을 날렸기에,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특별 초빙으로 독일로부터 건너와 왕립화학학교 교수로 일하고 있었다. 호프만의 연구실에는 뛰어난 학생들이 많이 모여들어 함께 일하였는데, 퍼킨이 참여했던 연구는 말라리아의 특효약인 퀴닌(quinine)를 합성하는 국가적 프로젝트였다. 퀴닌은 남미에 자생하는 키나(kina) 나무로부터만 얻을 수 있어서 가격이 매우 비쌌으므로, 이를 인공적으로 합성할 수 있다면 말라리아 치료제를 저렴하게 대량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되므로 중요한 연구사업이었다. 또한 당시 세계 각국에 군대를 파견하던 영국 정부로서는 더운 지역에 주둔하는 병사들이 말라리아에 시달리지 않도록 하는 일은 큰 관심사였다. 퍼킨은 석탄 찌꺼기인 콜타르에서 추출한 아닐린에 몇 가지 화학약품을 가해 보았으나, 검은 침전물이 생길 뿐 퀴닌은 합성되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버리려 하다가 알코올에 녹여 본 순간, 뜻밖에도 더러운 침전물이 화려한 보라색의 액체로 변하는 것을 관찰하게 되었다. 바로 세계 최초로 인공 염료를 발견하게 된 것인데,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18세였다.
퍼킨은 자신이 새로 발견한 액체에 보라색 들꽃 이름을 따서 ‘모브(Mauve)’라고 이름 짓고 사업화에 착수했다. 그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학교마저 그만두고 인공 염료 모브의 대량생산법을 확립하고 특허를 취득한 후, 인공 염료 공장을 차려 직접 생산과 판매에 나섰다. 퍼킨은 인공 합성염료 모브를 프랑스에도 대량으로 수출하였는데, 모브의 보라색 옷감이 패션의 본고장인 파리에서 크게 유행하였고, 다시 영국에까지 유행이 번지게 되었다. 퍼킨은 젊은 나이에 큰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고, 합성염료 모브의 제조는 화학염료공업의 시초가 되었다.
사업가로서도 큰 성공을 거둔 퍼킨은 36세까지만 현업에서 일하고 은퇴하여, 이후에는 다시 화학자로서 연구에 몰두하였다. 그는 유기화학에서의 퍼킨 반응을 발견하였고 다른 유기물질의 합성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는 등 기초화학 및 합성염료산업의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그의 이름은 딴 퍼킨상이 이후 미국에서 제정되어 ‘유기화학 분야의 노벨상’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퍼킨의 인공 합성염료 발견은 10대 소년의 업적이라는 측면 이외에도 몇 가지 중요한 의미들을 지닌다. 첫 번째로는 뜻밖의 우연한 발견, 즉 발명 발견의 역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세렌디피티(serendipity)’의 예라는 점이다. 처음에는 말라리아의 특효약인 퀴닌을 합성하려 연구를 하였으나, 이는 실패하고 그 대신에 합성 염료라는 더 귀중한 성과를 얻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퍼킨의 성공은 혼자만의 업적으로 보기는 어렵고, 그의 스승과 선구자들의 연구를 계승한 것이기도 하다. 즉 천연염료의 원료인 쪽(藍)과 성분이 동일한 아닐린을 콜타르로부터 처음 분리한 화학자는 독일의 룽게(Friedlieb F. Runge, 1795-1867)였다. 그는 아닐린으로부터 합성 염료를 만들어내려는 선구적인 연구를 성공시키지는 못했다. 그러나 호프만이 이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한 끝에 콜타르에서 아닐린과 벤젠을 대량으로 제조하는 방법을 알아내었고, 그는 다름 아닌 퍼킨의 스승이다.
퍼킨의 또 한 가지 탁월한 면은, 화학자뿐 아니라 사업가로서도 크게 성공하였다는 점이다. 사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자신의 선구적 연구를 사업화로 연결하려 노력한 과학자들 중에 당대에 성공을 거둔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즉 실험실에서의 성공과 그것의 상용화는 또 다른 문제로서, 도리어 여러 가지 이유로 사업과 실용화에 실패하고 불우하게 삶을 마친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퍼킨은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벤젠 등의 원료 공급 문제, 폭발사고의 위험이 따르는 제조공정의 문제, 기존의 염색업자들에게 보급하는 일 등 실용화에 따르는 숱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인공 염료의 상품화에 성공한 것이다. 또한 산업혁명의 과정 등에서 자주 발생하는 일이지만, 합성 염료라는 새로운 산업에 의해 기존의 시장과 산업이 크게 타격을 받는 산업구조의 재편이 뒤따르게 되었다. 즉 인도에서 주로 생산되던 쪽(藍)이나 멕시코에서 나오던 코치닐, 꼭두서니 등 기존의 천연염료들은 비싸게 팔리던 예전의 소중한 지위를 잃고 급속히 사양길로 접어들었고, 이에 따라 천연염료와 관련 섬유산업에 종사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일터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이상, 출처; 사이언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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