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살아가자/사람과 예술

유진 오닐

BK(우정) 2020. 3. 5. 19:06

사람들이 상처를 대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상처를 묻어버리는 것이다. 기억 어딘가에 상처를 파묻어버리고 다시는 꺼내보지 않는 방식이다. 또 하나의 방식은 상처를 맞대면하는 것이다. 패배하든 극복하든 결판을 내는 것이다. 미국의 극작가 유진 오닐은 처음엔 상처를 묻어두었다가 나중에서야 그 상처를 꺼내 맞대면했다. 오닐은 활발하게 활동하던 젊은 시절 자신의 가족사를 작품에 반영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그가 젊은 시절 쓴 희곡의 상당수는 바다가 무대다. 자신의 아픈 경험을 작품에 옮기지 않고, 바다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를 그린 것이다.

오닐이 자신의 상처와 본격적인 맞대면을 시도한 것은 말년에 이르러서였다. 그는 죽기 직전 슬픈 가족사를 그대로 드러낸 `밤으로의 긴 여로`를 쓰기 시작한다. 오닐은 "오랫동안 묵은 내 피와 눈물로 이 작품을 썼다"고 고백했다. 작품을 완성하고 나서도 "내가 죽은 후 25년이 되기 전에는 책으로 펴내거나 무대에 올리지 말아 달라"고 부인에게 당부한다. 그만큼 상처와의 맞대면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오닐의 부탁과 달리 부인은 그가 죽은 지 2년 만에 작품을 공개했고, 오닐의 가족사는 `밤으로의 긴 여로`라는 희대의 명작에 실려 온 세상에 공개됐다.


작품은 어느 여름날 하루 동안 벌어진 가족들의 이야기다. 집안을 돌보지 않는 늙은 연극배우 아버지 타이론, 질병에서 벗어나기 위한 값싼 방편으로 마약에 손을 댔다가 중독자가 되어버린 어머니 메리, 어머니의 비극을 보고 자라며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버린 큰 아들 제이미, 집을 떠나 방탕한 생활을 하다 폐결핵에 걸린 에드먼드가 주인공이다. 한자리에 모인 이들은 서로를 탓하며 분노하고, 다시 허탈해지기를 하룻밤 동안 몇 차례 반복한다. 가장 밀접했기 때문에 가장 저주스러운 가족들, 그들은 원망에 지쳐 빨리 밤이 오기를 기다린다. 그래서 제목이 `밤으로의 긴 여로(Long Day`s Journey into Night)`가 아닐까. 그 피폐한 가족들의 모습을 통해 오닐은 끊임없이 묻는다. 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오닐의 가족사는 등장인물 이름만 바뀌었을 뿐 작품과 똑같다. 오닐의 아버지 제임스 오닐은 유랑극단 배우이자 구두쇠였다. 그는 치료비를 아끼려고 출산후유증에 시달리던 부인을 싸구려 의사에게 보내고 그때 모르핀 주사를 맞은 그녀는 평생 마약중독이 된다. 오닐의 큰형은 술과 향락에 빠져 살다가 이른 나이에 죽었고, 둘째 형은 두 살 때 홍역으로 죽고, 막내인 자신은 떠돌이 작가로 살다 결핵에 걸려 요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작가였지만 가족사의 비극은 언제나 그를 따라 다녔다. 그는 운명의 무거움에 평생을 허덕였다.

"운명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손을 써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 멀리 떨어진 일들을 하게 만들지. 우리는 운명을 거역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을 잃고 마는 거야."

`밤으로의 긴 여로`에 나오는 어머니 메리의 대사다. 지나친 운명론자였지만 오닐은 나중에서야 그렇게 살았던 생을 후회했다. 그는 자신이 운명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던 것을 한탄했다. 작품에 등장하는 대사는 아니지만 오닐은 이런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

"행복은 수줍은 사람을 싫어한다."

행복하기를 주저하는 사람. 행복 앞에 나서기를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행복할 자격이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다른 사람이 아닌 오닐이 한 말이라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이상, 출처; 매일경제

https://www.mk.co.kr/news/culture/view/2018/01/43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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