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작가 루이제 린저는 '생의 한가운데'라는 작품으로 국내 독자들에게도 익숙한 인물이다. '생의 한가운데'는 '니나'를 주인공으로 해, 전후 독일의 암담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참된 삶을 추구하는 '여성'을 성공적으로 보여주는 소설로, 니나를 사랑하는 '슈타인'의 일기·편지·니나와 주변인물과의 만남과 대화 등으로 구성돼 있다. 니나는 삶과 사랑이라는 근원적 의미를 좇으며 인간이 지닌 존재가치를 심오하게 추적한다. 전편에서는 행복·결혼·연애·실의·삼각관계를 다뤘다면 속편에서는 진정한 사랑과 결혼생활에 대한 고민, 예술가적 기질의 분석 등 연대인의 정신적 갈등을 주요 소재로 두었다.
독일 문학계에 속해있는 작가의 작품이면서, 국내 독자들에게도 '열광적'으로 읽혔던 '생의 한가운데'는 그러나 제대로 '독해'되지 않았다. '생의 한가운데'는 무척 강렬한 느낌의 주인공인 니나를 통해 '주체적인 여성'을 담은 작품이었지만, '휴머니즘', '인간', '보편', '구원', '행복'이라는 가치중립적인 듯 보이는 단어들에 갇혀 '여성'이 지워진 채 비평되었다. 김미정 연구자(성균관대)는 '여성 교양소설의 불/가능성: 한국-루이제 린저의 경우' 발제를 통해, 왜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를 비롯한 그의 작품들이 '교양소설'로 읽히지 못했고 나아가 '오독'되었는지 그 배경을 살펴봤다.
◇ '드센' 여성에 대한 거부감과 의도된 오독으로 평가절하되다
교양소설은 독일에서 비롯된 소설 형태로, 체념과 향수의 정서가 깔려있긴 하지만 긍정적으로 어조로 끝나는 방식이다.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가 대표작이다. 하지만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는 교양소설로 대접받지 못했고, 국내 평단에서도 꽤 박한 평을 들었다. 물론 그 혹평을 한 주체는 남성 평자였다.
1978년 5월 '문학사상'에 실린 '영원한 여자와 한번 태어난 여자-루이제 린저, 생의 한가운데'라는 글에서 김창활은 "생존해 있는 외국작가의 작품으로는, 기가 차게도 우리나라에서 단연 제일 많이 읽힌 작품"이라며 노골적인 거부감을 드러냈다. 김창활은 "내가 사랑할 수는 없는 남자라도 나를 죽도록 사랑하는 나머지 애가 타 죽어가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며, 사랑하는 남자라도 내 식으로 길들여 자기 구실을 못하게 망가뜨려 놓는 거, (…) 그러다가 종내는 둘이 다 파국에 이른 걸 종교에 귀의하게 되는 과정으로 치부하여 미화시키는 거, 이게 '니나 부슈만'의 '생의 한가운데'"라고 평가했다.
그는 "그 흔한 노벨문학상 하나 못 받은 것이 무려 일곱 여덟 군데의 출판사에서 번역 출판이 되어 설쳐 댔"다거나 "독일에서는 그녀의 다른 작품 '파문'과 '고원'처럼 베스트셀러에도 한 번 못 올랐던 작품이 이 작품인데, 우리나라에선 대학생 필독의 명작으로 교수들로부터 추천도 받는 판이니 가시 알다가도 모를 요상스러운 노릇"이라며 작품을 폄훼하기에 급급했다. 김 연구자는 "굳이 분석을 요할 것도 없이 굉장히 투명한 얘기(비평)이다. '생의 한가운데'의 니나가 남자들에게 상처를 주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사회에서 요구되는 젠더 역할을 수행하지 않기에 너무 싫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이어, "(비평 앞머리에서) 독일 교양소설 이야기를 하면서도 루이제 린저 소설이 독일 교양소설의 적통이라고는 굳이 하지 않았다. (김창활이) 좋아하는 작품은 '모르는 여인의 편지'(슈테판 츠바이크)인데, 이름이 없는 굉장히 지고지순하고 자기 희생을 바탕으로 남성을 구원하는 캐릭터가 나오는, 옛날 남성들의 로망 절정을 이루는 소설이다. 그런데 니나는 너무 엉망진창이라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김 연구자는 이같은 비평이 '지면을 얻어' 나간 글이라는 점을 유심히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연구자는 "이런 노골적인 발화들이 '문학사상'이라는 지면을 얻었다. (공적으로) 허용되는 발화라는 것"이라고 전했다.
1976년 쓰여진 홍경호의 글에서도 '생의 한가운데'가 '주체적 여성'을 그리고 있다는 점은 마치 없었던 것처럼 치부됐다. 홍경호는 "세계의 젊은 여인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이유도 결코 주인공을 여인으로 설정한 점이 아니"라고 하는가 하면 "작품의 주제는 여성을 통한 남성의 구원"이라는 맞지 않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 '생의 한가운데'에서 '여성'을 읽어내려 했던 시도들
물론 '여성' 작가가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에서 '여성'을 읽어내려는 시도는 당연히 존재했다. 앞서 제시된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생의 한가운데'를 평가절하하려는 분위기 속에서 공론장에서 제대로 '말해지지' 못했을 따름이다.
루이제 린저를 처음 한국에 소개했던 작가 전혜린은 '생의 한가운데'에 대해 3번 공식적인 언급을 했다. 1~2번째 언급 때에는 "새로운 산문형식을 낳은 소설"이라거나 "형식의 참신성에 의해서 매우 찬탄되었다"고 하는 등 '일반적인' 비평을 했다.그러나 마지막 언급에서만은 달랐다. 전혜린의 생전 글을 모은 유고 에세이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에서는 '생의 한가운데'에서 '여성'을 발견해 낸 흔적을 볼 수 있다.
"전형되고 초월화된 또 하나의 자기를 흰 종이 위에 창조하는 과제에 온 정열과 지성을 기울이고 있는 니나에게, 남성이란 그림자와도 같이 지나가 버리는 존재인 것이다. 남자, 연애 이런 일은 나에게 있어서 중요하지 않다고 니나는 종종 말하고 있고,나는 통과의 기분을 느낀다고도 말하고 있다. (…) 남자뿐 아니라 여자라 할지라도 그러한 투기 없이는 결코 행복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 무엇보다도 결혼이라는 신기루에 속지 말라는 것, 결혼 속에 도망가더라도 결국 계산서는 뒤늦게라도 오고야 만다는 것"
김 연구자는 앞의 1~2번째 언급과 마지막 언급의 결정적인 차이는 '젠더 기입 여부'라고 설명했다. 그는 "공식적으로 지면을 얻어 쓴 글에서는 소설 형식에 대해 얘기하지만, 유고 에세이에서는 달랐다. 말하자면, 공적으로 발화 가능한 것이 있고 개인적인 내밀한 공간에서 드러내야 할 것이 있다고 (전혜린은)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남성 평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생의 한가운데'에 대한 혹평에도, 국내에서의 인기는 막강했다. 1987년 10월 21일 경향신문에는 파란만장한 삶을 꿋꿋하게 살아가는 주인공 니나에게서 자아를 발견하면서 짜증스러움을 떨칠 수 있었다는 사시 수석 합격생 김소영 양의 인터뷰가 실렸을 만큼, 수많은 여성들에게 꾸준히 읽혔다. 김 연구자의 표현에 따르면 "배운 남성들이 뭐라고 욕을 하든 말든 대중 독자들은 열광했다."
당시 사회 상황의 변화도 이같은 '열광적 반응'에 기여했다. 1970년대 중반에는 관변단체 성격이긴 하지만 한국여성단체협의회라는 페미니즘 협의회가 생겼다. 1975년 유엔에서는 '세계 여성의 해'를 선포했으며, 1970년대 한국 여성 고득학교 취학률 평균 3.4%, 여대생 비율 평균 29.43%를 기록했던 것들을 예로 들 수 있다. 김 연구자는 "(평단에선) 여성 교양소설이란 불가능하다고 했고, 당시 2~3류 대중지를 통해서만 읽히는 방식으로 소비되었지만 대중은 ('생의 한가운데'를 열렬히 읽음으로써) '여성'을 선취하고 '여성 교양소설'을 실현시켰다"고 바라봤다.
이상, 출처;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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