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의 달인` `세계의 경영인` 등 기업 경영의 구루로 불렸던 잭 웰치 전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향년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웰치 전 회장의 부인이 2일(현지시간) 그의 별세를 발표했다고 미국 경제매체 CNBC가 보도했다.
1960년 일리노이대학 화학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웰치는 GE에 입사해 8년 만에 최연소 사업부장으로 승진한다. 웰치가 책임지는 사업부 규모가 20억달러를 넘으며 그의 능력도 덩달아 인정받아 차기 회장 후보까지 된다. 당시 회장이던 렉 존스 회장은 후계자 선정을 위해 1979년 웰치를 본사로 불러들여 부회장에 임명한다. 그는 기존 플라스틱 같은 신물질 개발은 물론이고 의료기기와 크레디트카드 등 40억달러가 넘는 사업부를 책임지게 됐다. 치열한 승계경쟁 끝에 승리한 웰치는 1981년 4월 GE 회장으로 취임한다. 회장에 오른 웰치는 `고쳐라, 매각하라, 아니면 폐쇄하라`는 경영 전략을 통해 10만명 이상의 직원을 해고했다. 이러한 그의 경영 스타일로 인해 당시 언론으로부터 `중성자탄 잭(Neutron Jack)`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포천은 미국에서 가장 무자비한 경영자로 웰치를 꼽을 정도였다.
그러나 웰치는 `6시그마·e비즈니스·세계화` 등의 전략으로 GE를 혁신해 세계 최고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회장으로 부임한 지 20년 만인 2001년 GE의 회사가치는 4500억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1981년 회장으로 부임할 당시의 120억달러보다 40배나 늘어난 것이다. 이 같은 경영 능력으로 그는 2001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경영인`에 선정됐고, GE 역시 2000년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선정됐다.
2001년 제프리 이멀트에게 회장 자리를 물려주고 퇴임할 때까지 총 1700여 건에 달하는 기업의 인수·합병을 성사시켰다. 당시 하나의 전문 분야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 옳다는 기업 풍토와는 다른 획기적인 경영방법이었다. GE가 다른 업체와 달리 전자제품에서부터 비행기 엔진, 플라스틱까지 개발할 정도로 다양한 사업 분야를 가지게 됐다. 웰치는 굴뚝 기업이었던 GE를 서비스산업의 대표주자로 전환시키면서 새로운 경영모델이 됐다. 퇴임 직후 그는 자서전 `Jack: Straight from the Gut`를 출간했다. 한국에서는 `잭 월치, 끝없는 도전과 용기`로 번역 출간됐다.
하지만 그늘도 있었다. 웰치가 이끈 다각화가 최근 GE의 몰락을 가져다준 원인으로 지목됐다. `혁신의 왕`으로 불렸던 이멀트가 웰치의 뒤를 이어받았지만, GE는 GE캐피털을 통해 조달한 부채를 다른 계열사의 해외사업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문어발 확장을 지속했다. 미국 경제성장에 기댄 손쉬운 금융사업에 의존해 GE가 근본인 제조업 경쟁력과 기술혁신을 잃어버리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에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GE캐피털은 직격탄을 맞았다. 잘나가던 금융사업이 GE에 부메랑이 된 셈이다. GE캐피털은 연방정부에서 1390억달러를 빌려 겨우 파산을 면했다. 하지만 GE는 경쟁력이 사라졌고, 실적은 뒷걸음질했다.
GE는 결국 2017년 이멀트 대신에 존 플래너리 CEO를 기용했다. 플래너리는 10개가 넘는 사업을 정리하고 전력 부문에서 1만2000명을 감원했다. 하지만 이 같은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GE는 2018년 미국을 대표하는 30개 우량종목으로 구성된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에서 불명예 퇴출을 당하게 됐다.
이상, 출처;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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