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살아가자/사람과 예술

릴케, 말테의 수기

BK(우정) 2020. 3. 2. 21:19

'말테의 수기'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사진)가 남긴 단 한 권의 소설이다. 29세의 릴케가 400쪽도 안 되는 이 소설을 위하여 7년을 바쳤던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말테의 수기'는 다양한 문화권에서 번역 출간되어 광범위하고도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살아있는 고전이다.

이 소설은 말테 라우리츠 브리게라는 덴마크 출신의 한 젊은 무명시인이 낯선 도시 파리에서 살아가며,죽음과 고독과 신(사랑)의 의미를 깨달아 실존에 눈 뜨는 길목에서 남긴 일기 토막,풍물의 묘사,사유의 단편들,쓰다만 편지들을 아무런 서열 없이 모아놓은 글 모듬이다. 따라서 사건도 줄거리도 없는 특이한 형식을 선보이고 있다. 일부 사람들이 이 책을 현대소설의 원조로 꼽는 것도 이러한 독특한 수법 때문이다. 


릴케는 자기의 주제를 추상적인 개념으로 다루지 않고 시인으로서의 상징과 은유로 파고들어 '산다는 일의 보람'을 향한 시선을 다지고 가꾸어 가을 햇살처럼 맑은 언어를 자아내고 있다. 삶의 궁극적 가치를 깨닫게 하는 순수한 표현력은 독자들 에스프리를 보이지 않는 깊이에서 사로잡는다. 서정적이면서도 사유의 깊이를 지니고 있는 그의 시 세계를 여는 열쇠가 이 자전적인 작품 속에 감추어져 있는 것을 독자들은 알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책은 쉽게 읽혀지지 않을 수 있다. 단숨에 읽어내기는 힘들지 모르지만 차라리 머리맡에 두고 생각이 미칠 때마다 책갈피를 넘기며 좋아하는 대목을 깊은 성찰을 곁들여 읽는 것이 릴케의 뜻에 맞을지도 모른다. 

젊은 날의 나를 매료했던 대목은 '나는 보는 것을 배우고 있다'로 시작하는 초반부에 나오는 '한 줄의 시를 위해서 많은 도시와 사람들 그리고 사물들을 보아야하고 동물들을 알아야한다. 새들이 어떻게 나는지를 느낄 수 있어야 하고 조그마한 꽃들이 아침에 짓는 몸짓을 알아야한다. 낯선 고장의 길과 예상하지 못했던 느닷없는 만남 그리고 오래 전부터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았던 이별을 알아야 한다'는 구절로 아름다운 이미지들이 엮어내는 문장과 그 깊은 여운이었다. 이 대목은 이 소설의 주조음처럼 세계의 많은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미국의 판화가 벤 샨(1898~1969)은 별세 한 해 전에 이 대목의 22개 이미지를 석판화 작품으로 형상화하였다. 리투아니아 출신인 그는 이 소설의 주인공 말테와 같은 스물 여덟의 나이 때 파리에 도착하여 세느강 기슭 헌 책방에서 산 '말테의 수기'를 읽다가 만난 감동적인 이 구절을 평생 잊지 못했던 것이다. 말테의 행보에서 젊은 날의 자기를 읽었던 그는 노경에 이르러 자신에 대한 소임처럼 이 구절을 형상화했던 것이다. 

나는 미국 뉴저지주의 숲 속에 있는 이 예술가의 집을 찾아 그의 미망인과 짧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고 이 석판화를 만들 때의 공방을 둘러본 적이 있다. 1968년 그의 작품은 '한 줄의 시를 위하여'라는 책으로 출판되었다. 희귀본이 된 이 책을 나는 지난 2월에 입수하여 이따금 펼쳐보고 있다. 그것을 나는 의예과 학생 시절 내가 애독했던 릴케의 시편들이 마련해준 인연의 힘이라 생각하고 있다.

'말테의 수기'에는 많은 씨앗이 묻혀 있다. 그 씨앗들은 독자들 가슴 안에서 저마다 다른 빛깔의 꽃으로 피어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 고전이란 그런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정신의 밭이다. 우리는 흙 냄새나는 그 밭을 가는 것이다. 


이상, 출처; 부산일보

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020813000565

'알고 살아가자 > 사람과 예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릴케, 말테의 수기... 조금 더~  (0) 2020.03.02
릴케... 또...  (0) 2020.03.02
릴케  (0) 2020.03.02
이란, 페르시아. 조로아스터교  (0) 2020.03.02
니체, 차라투스트라, 그리고 히틀러  (0) 2020.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