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세상을 낯설게 여기는 주인공 뫼르소의 이야기이다. 세상의 부조리를 고발한 이 소설은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는 구절로 시작한다. 북아프리카의 알제에 사는 평범한 직장인 뫼르소는 한 통의 전보를 받고 양로원을 찾아가 장례식에 참석한다.
“나는, 언제나 다름없는 일요일이 또 하루 지나갔고, 이제 엄마의 장례가 끝났고, 나는 다시 일을 하러 나갈 것이고, 그러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뫼르소가 다니는 회사의 사장은 그에게 파리의 사무실에서 일할 것을 제안한다.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사장은 그에게 삶의 변화에 흥미를 느끼지 않느냐고 묻는다.
“나는, 삶이란 결코 달라지는 게 아니며, 어쨌건 모든 삶이 다 그게 그거고, 또 나로서는 이곳에서의 삶에 전혀 불만이 없다고 대답했다.”
연인인 마리와의 관계도 이런 식이다.
“저녁에 마리가 찾아와서, 자기와 결혼할 마음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마리가 원한다면 우리가 결혼할 수도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내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알고 싶어 했다. 나는 이미 한 번 말했던 것처럼, 그건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지만 아마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뫼르소는 한 아파트에 사는 이웃 레몽에게서 친구의 바닷가 별장에 함께 가자는 제안을 받고 수락한다. 해변에서 레몽의 옛 애인 때문에 아랍인들과 싸움이 벌어진 뒤 그들 중 한 명이 비스듬히 누운 채로 칼을 뽑아들자 뫼르소는 주머니에 있던 레몽의 권총을 그러쥐었다.
“빛이 강철 위에서 반사되었고, 번쩍하는 긴 칼날 같은 것이 되어 내 이마를 쑤셨다. 그와 동시에, 눈썹에 고여 있던 땀이 단번에 눈꺼풀 위로 흘러내려서 미지근하고 두꺼운 막으로 눈꺼풀을 뒤덮었다. 내 두 눈은 이 눈물과 소금의 장막에 가려서 캄캄해졌다.”
그 순간 방아쇠를 당겼다.
“나는 땀과 태양을 흔들어 털었다. 나는 내가 대낮의 균형과, 내가 행복을 느끼고 있었던 어느 바닷가의 그 특별한 침묵을 깨뜨려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된 그는 엄마의 장례식에서 냉담했다는 비난을 받는다. 법정에서는 정작 살인죄보다는 그가 패륜아라는 데 관심을 기울인다.
“아마도 나는 엄마를 사랑했겠지만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거였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많게건 적게건 바랐던 적이 있는 법이다.”
재판장이 아랍인을 살해한 동기에 대해 묻자 그는 태양 때문이었다고 답한다. 사형 선고를 받은 뒤 그를 찾아온 사제는 하느님의 심판을 받게 될 테니 이제라도 죄의 짐을 벗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죄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남들이 나에게 가르쳐주었을 뿐이었다. 나는 죄인이었고, 죄의 대가를 치르고 있었고, 나에게 그 이상을 요구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뫼르소는 세상의 기호들이나 게임의 법칙, 다시말해 살아가는 법에 서툴다는 게 다른 사람들에게 문제가 된 것이다.
‘이방인‘은 다음과 같은 구절로 끝을 맺는다.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고뇌를 씻어주고 희망을 비워버리기라도 했다는 듯,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한 이 밤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가 그토록 나와 닮아서 마침내 그토록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닫자,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여전히 행복하다고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내가 외로움을 덜 느낄 수 있도록, 내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처형되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들어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
이상, 출처;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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