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살아가자/사람과 예술

체 게바라와 괴테...

BK(우정) 2020. 2. 28. 18:33

사진 한 컷만으로 명작소설 이상 가는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피사체가 있다. 체 게바라다. 게바라가 남긴 사진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을 고르라면 필자는 주저 없이 한 장의 사진을 꼽는다. 쿠바혁명 직전 시에라 마에스트라 산맥 캠프에서 게바라가 독서에 열중하고 있는 사진이다.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전쟁터에서 책을 읽고 있는 여유로운 모습도 특이하지만, 더욱 눈길을 끄는 건 책 제목이다. 책의 제목은 `괴테`다. 그렇다. 게바라는 그날 에밀 루드비히가 쓴 괴테 전기를 읽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부터 생각은 시작된다. 왜 괴테였을까? 괴테와 게바라. 어울리는 듯 아닌 듯 애매하다. 둘의 공통분모는 무엇이었을까.

얼마 전 이 궁금증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책을 읽었다. `생태주의자 괴테`(김용민 지음)다. 책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 등을 분석하면서 그속에서 괴테의 사상이나 가치관을 찾아낸다. 이렇게 해서 추출해낸 괴테의 정신은 물질문명 비판자이자 생태주의자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는 발전론을 부정하고 소박한 삶을 추종하는 괴테를 찾아내고, `파우스트`에서는 출세와 욕망에 경도된 인간의 태도에 경종을 울리는 계몽주의자 괴테를 발견한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서는 공존의 논리를, `친화력`에서는 요즘 자주 거론되는 생태페미니즘을 외치는 괴테를 찾아낸다. 실제로 괴테는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그는 인간은 지구 전체와의 조화 속에서 다른 생명체들과 평등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자연관을 가지고 있었다. 괴테는 공리주의로 무장한 물질문명에 대단히 회의적이었다. 그래서 문학작품을 통해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낙관적 발전론`을 비판한다. 그는 속도와 발전을 추앙하기보다는 약자에 대한 배려, 타인에 대한 공감과 연민을 더 중시했다. 게바라가 왜 괴테 전기를 붙들고 있었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간다.

괴테는 시도 썼다. 그의 시 중에 이런 게 있다. `발견`이라는 시다.

"그늘 속에서 나는 /한 송이 작은 꽃을 보았네 /별처럼 빛나는 / 작은 눈동자 같은 꽃을 / 나는 그 꽃을 꺾으려 했네 / 그러자 꽃이 속삭였지 / 나는 꺾여져서 / 시들어야만 할까요? / 그 꽃을 온전히 캐내어 / 예쁜 정원으로 옮겨 왔네 / 그러자 그 꽃은 조용히 살아났지 / 지금 그 꽃은 넓게 가지를 뻗고 / 점점 더 많은 꽃을 피우고 있다네."

시에는 생태주의자 괴테의 모습이 완벽하게 담겨 있다. 괴테는 책상머리에서 글만 쓰지는 않았다. 그는 게바라와 같은 행동주의자였다. 오죽했으면 바이마르 공국에서 가장 잘나가던 시절에 "나는 날개를 가지고 있지만 써먹지 못하고 있다"며 모든 걸 박차고 뛰쳐나왔을까. 그는 책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 싶어했다. 괴테는 대표작 `파우스트`에서 물질문명이 가져올 디스토피아를 암시했다. 주인공 파우스트는 악마와 계약을 맺은 대가로 젊음을 되찾고, 성공한 정치가가 되고, 최고의 미인을 차지하고, 자연을 무시하면서 간척사업을 벌인다. 그러면서 결국 파우스트는 심판에 직면한다. 게바라는 괴테를 읽고 현대인의 모순을 해결하겠다는 꿈을 꾸었는지도 모른다. 


이상, 출처; 매일 경제

https://www.mk.co.kr/news/culture/view/2019/10/874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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