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살아가자/사람과 예술

괴테... 호기심...

BK(우정) 2020. 2. 28. 18:24

강연에서 종종 이런 질문을 던진다. "만일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왔는데, 당신의 어린 자녀가 거실에 있는 피아노를 다 해체해놓아 집안이 엉망이 되었다. 이 광경을 보고 당신은 뭐라 하겠나?" 열에 아홉은 이렇게 대답한다."욕을 퍼붓지요." "이게 얼마 짜린데 하고 호통을 칩니다." "귀싸대기를 때립니다." 그러면 청중들이 와~ 하고 웃는다. 그렇다. 보통의 부모들은 대개 이런 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18세기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한 상류층 가정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교양인이었던 부모는 그 아이를 덮어놓고 혼내지 않았다. 아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를 물었다. 아이가 말했다. "피아노 소리가 어떻게 해서 나는지 궁금해서 피아노를 뜯어봤어요." 부모는 "우리도 피아노 소리가 어떻게 나는지가 궁금했었다"며 맞장구를 친다. 부모는 아이와 함께 피아노 부품들을 살펴가며 아이의 호기심에 편승해 소리가 나는 원리를 탐구한다. 혼날 줄만 알았던 아이의 상상력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를 상상해보라. 이 가정에서는 이런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졌다. 이 아이가 훗날 독일의 대문호가 되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다. 괴테는 독일인의 정신이다. 괴테를 모르고서는 독일인과 대화를 할 수가 없다. 서울 남산의 독일문화원의 이름을 왜 '괴테 인스티투트'라고 지었겠는가.  


노년에도 시들지 않은 호기심
 
생몰연대에서 알 수 있듯 괴테는 83년의 생애를 살았다. 평균 수명이 50세에 머물던 19세기의 83세면 지금 기준으로 치면 100세에 육박하는 나이다. 말 그대로, 괴테는 천수(天壽)를 누렸다. 더 놀라운 것은 그의 말년이다. 이 세상 모든 노인의 소망은 단 한 가지로 수렴된다. 아프지 않고 눈을 감고 싶다! 괴테가 그랬다. 그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 아프지 않았고 펜을 놓지 않았다. 죽기 1년 전인 1831년 그는 대작 '파우스트 2부'와 '괴테 자서전-나의 인생, 시와 진실'을 완성했다. 이렇게 괴테의 대표작들은 대부분 60대 이후에 쓰였다.

1832년 3월 22일 오후, 괴테는 바이마르 저택의 집필실 책상에서 글을 쓰다 극도의 피로감을 느꼈다. 그는 지팡이를 집고 집필실과 붙어 있는 작은 침실로 갔다. 그리고 침대 옆의 푹신한 의자에 앉았다.(괴테는 잠자는 시간 외에는 절대 침대에 눕지 않았다. 침대에 눕기 시작하면 일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창밖으로 흘러가는 구름을 쳐다보았다. 괴테가 오른손을 들어 허공에 더블유(W) 써보였다. 그 광경을 비서가 지켜보았다. 잠시 후 괴테는 머리를 뒤로 젖히고 잠시 눈을 감았다. 곧이어 그는 영면(永眠)에 들었다.


괴테의 생애는 호기심과 탐구심으로 충만한 인생이었다. 황실 고문이었던 아버지는 끝없이 어린 아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했다. 영어를 가르쳤고, 이탈리아어를 배우게 했다. 7년전쟁으로 프랑크푸르트가 프랑스군의 점령을 받을 때 괴테는 어머니와 함께 프랑스어를 배웠다. 새롭고 앞선 것을 배우는 데 가족 모두가 열성적이었다. 어린이들은 누구나 호기심이 넘친다. 무엇을 보든지 어디에서든지 궁금한 것 투성이다. "왜 그래요?" 라며 귀찮을 정도로 묻고 또 묻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점점 호기심이 촛불처럼 사그라든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호기심에 대한 호응이 없으면 더 이상 묻지 않게 된다.

괴테는 젊은 시절에는 성에 대한 호기심으로 여체를 끝없이 탐구했고, 부인과 사별하고 난 뒤인 70세에도 10대 소녀를 사랑해 청혼하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맛에 대한 호기심으로 광활한 미식(美食)의 세계에 탐닉했다. 그러나 평생을 걸쳐 변하지 않은 것은 지적 호기심이었다. 바이마르 들판에서 우연히 주은 광석에 호기심을 느껴 광물학과 지질학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다. 현재 괴테국립박물관으로 운영되는 바이마르 저택에 가면 괴테가 수집한 광석만을 전시하고 있는 방이 따로 있다.


만년에 괴테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동방'이었다. 운문으로 된 중국 소설을 처음 영어판으로 접하고 그는 흥분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다시 독일어로 중역(重譯)된 중국 소설을 읽고는 중국문화에 빠져버렸다. 이런 소설의 세계도 있을 수 있구나! 그의 호기심은 중국에만 머물지 않았다. 페르시아 여행을 상상하며 아랍세계에 대한 관심을 넓혀나갔다. 만년에 아랍어를 배웠다는 사실이 문호의 호기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준다. 비서와 지인들은 괴테의 이런 코스모폴리탄적 관심을 이해하지 못했다.사람을 늙어 보이게 하는 것은 주름살과 머리칼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정신을 늙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호기심을 잃어버린 것이다. 호기심이 왕성한 사람은 늙어도 늙은 게 아니다.



이상, 출처; 뉴스 1

https://www.news1.kr/articles/?37428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