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기 정주 생활이 시작된 후 두 가지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첫째 전염병이 크게 유행하면서 주기적으로 인류의 생명을 앗아갔다. 천연두, 홍역, 매독, 황열병, 말라리아, 주혈흡충 등 바이러스부터 연충에 이르는 다양한 감염체가 인류의 몸을 삶의 터전으로 삼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터전이 죽기 전에 얼른 다른 터전으로 옮겨갔다. 둘째 의사라는 직업이 탄생했다.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최초의 의사는 기원전 2600여 년 전 이집트에 살았던 임호테프다. 물론 그도 스승이 있었을 테니 아마 최초의 의사는 문명의 탄생과 더불어 등장했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의사와 질병은 서로 공진화했다. 의학은 생물체가 아닌 문화적 개념이므로 진화라는 말을 쓰는 것이 저어하지만, 하나의 은유로 보고 소위 ‘의학의 진화’ 과정을 살펴보자. 인류가 나타난 이후 질병은 점점 늘어났고, 의사도 그에 발맞추어 점점 전문화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해 나갔다. 아쉽지만 아직까지는 질병의 판정승이다. 아직 치료할 수 있는 병보다 치료할 수 없는 병이 더 많다. 이미 정복한 질병이 적지 않지만, 여전히 의사는 ‘더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인상 깊은 작은 승리를 거둔 전장이 있는데, 바로 전염병 전장이다.
초기 의학의 진화
동굴 벽화나 구석기 유적을 보면 외과 수술의 흔적이 있다. 얼마나 치료 효과가 있었을지 의문이지만, 아무튼 의학적 시술의 역사는 문자가 없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임호테프를 시작으로 몇몇 의학의 선구자가 나타났다. 기원전 280년경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는 너무 유명하여 다시 언급할 필요도 없다. 동양에서는 춘추전국시대 황제내경이 저술되었다. 전설적인 군주, 황제가 쓴 책이라지만, 실제로는 오랜 기간 수많은 의사가 써 나갔을 것이다. 유럽의 의학은 서기 2세기 클라우디우스 갈레노스에 의해 집대성되었고, 이후 이슬람 등 주변 세계로 전파되었다. 12세기경에는 이븐 시나가 의학정전을 저술했고, 이는 다시 유럽에 역수입되어 수많은 의사가 읽었다. 동양에서도 본초강목과 동의보감 등이 저술되었다.
동서양의 전통적 의학은 초자연적 질병관에 기반을 둔 원시 의학보다 상당히 진일보한 것이었지만, 과학적 견지에서 보면 터무니없는 내용이 많았다. 사실 중세 의사는 신체 장기의 위치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평생 한 번도 해부를 해보지 못한 의사가 넘쳐났다. 사체액설은 가장 중요한 의학적 교리였고, 이를 의심하는 의사에게는 큰 수모가 기다리고 있었다. 동양도 마찬가지였다. 존재하지 않는 장기인 삼초는 수천 년 동안 의학적으로 ‘존재’하는 장기였다. 음양오행에 기반을 둔 의학적 전통에 도전하는 의사는 거의 없었다. 의학의 ‘도약 진화’를 위해서는 강력한 자극제가 필요했다. 바로 전염병이었다.
악취 나는 공기?
미아즈마 이론은 안개나 밤공기의 위험성, 땅에서 올라오는 안 좋은 기운 등 입증할 수 없는 괴상한 주장으로 이어졌다. 또한, 공기 중의 악취를 없애면 질병도 없어진다는 주장으로 발전했다. 아로마 향초를 켜면 전염병을 막을 수 있을까? 물론 일부 감염병이 공기로 전파될 수 있지만, 이는 원인과 결과가 반대로 된 설명이다. 뿌리는 탈취제가 방역에 도움이 된다는 식이다. 19세기까지 의학계의 정설은 미아즈마 이론이었다. 하지만 이미 1546년 지롤라모 프라카스토로는 과감하게 세균설을 주장했다. 진실은 믿음보다 강력하다. 페스트는 주로 지중해 연안에서 많이 발생했는데, 이탈리아의 일부 의사들이 검역을 통해서 페스트를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세균의 정체는 몰랐지만 어쨌든 효과가 있었고, 죽느냐 사느냐는 문제 앞에서 의학의 오랜 전통은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스위스의 의사 파라셀수스는 갈레노스의 권위를 부정하고 새로운 질병에는 새로운 약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예방접종의 발명
전염병의 운명을 결정지은 것은 위생과 영양의 개선이었지만, 분명 백신의 역할도 상당했다. 18세기 영국에서 널리 보급된 인두접종은 사실 아주 위험한 시도였다. 천연두 환자의 고름에서 나온 물질을 다른 사람의 피부에 넣는 것이다. 지금이라면 연구 윤리 위원회를 절대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다. 원래 인두접종은 인도에서 시작되었고, 12세기 무렵 송나라에서도 시행되었다. 환자의 딱지를 말려 콧속에 넣었다. 서아시아에서는 종교적 의례의 일환으로 시행되었고, 장거리 상인에게는 의무적인 접종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효과는 좋았지만, 당연히 일부 접종자는 천연두에 걸려 죽었다. 열 명 중 한 명이었다. 살아남은 사람은 발진을 앓은 후 면역력을 얻었다. 인두법의 진짜 기전은 아무도 몰랐지만, 어쨌든 효과가 있었다. 인두접종은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18세기 무렵, 영국의 한 시골에서 개업하고 있던 에드워드 제너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우유를 짜는 여인이 소가 앓는 우두를 앓으면 나중에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너는 서둘러 실험을 해보았다. 사실이었다.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했던 인두법에 비해 큰 인기를 얻을 수밖에 없었다. 천연두를 앓는 사람의 고름을 접종하는 인두법은, 이제 안전한 우두법으로 발전했다. 미아즈마 이론은 점점 위세를 잃었다. 새로운 치료법에 대한 소문은 삽시간에 유럽 대륙 전체로 퍼졌다. 의사들은 예전 교과서를 집어 던지고 새로운 접종법에 기반한 치료에 열을 올렸다.
계몽주의적 의학의 진화
전염병의 감소에는 위생과 영양의 개선이 가장 큰 역할을 했지만, 대중의 눈에는 의사의 직접적인 치료 행위가 더 깊게 각인되었다. 마을 주민 전체를 떼죽음으로 몰고 가는 전염병이 점점 사라지자, 타락에 대한 거룩한 심판을 들먹이는 종교의 힘도 약해졌다. 생의학적 질병관에 의거한 의학은 선배 의사들이 의지하던 자연주의적 의학에 비해 더 믿음직스러웠다. 때마침 유럽 사회는 계몽주의 열풍이 불고 있었고, 이성과 지식이 세계와 인간, 건강을 개선하는 새로운 신의 자리에 올랐다. 의학의 앙시앵 레짐은 무너졌다. 이제 서구에서 전통 의학은 사실상 명맥이 끊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의학자들은 병원균을 찾아내고, 알맞은 약을 개발하고, 백신을 만들었다. 차곡차곡 승리의 기록을 쌓아 나갔다. 이제 인류를 수백만 년 동안 괴롭히던 감염병에서 곧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독일의 로베르트 코흐는 탄저균과 결핵균, 콜레라균을 발견하고, 미생물과 질병의 관련성에 관한 네 가지 기준, 이른바 코흐의 공리를 제창했다. 이제 의대생은 갈레노스의 사체액설 대신 코흐의 네 공리를 배우게 되었다. 루이 파스퇴르는 세균설을 정립하며 수많은 목숨을 구했다. 더불어 우유를 깔끔하게 저온살균하는 법을 찾아냈다. 한때 유럽 사회를 거의 파멸 직전까지 몰고 간 페스트는 파스퇴르 연구소의 의사, 알렉상드르 예르생에 의해 그 소박한 정체가 발각되었다. 페스트균에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 의사의 승리가 목전에 다다른 것 같았다.
의사들의 연대
전염병 정복을 위한 신무기는 바로 백신과 항생제다. 하지만 일부 전장에서 무기와 병력을 축차적으로 소진하면, 전투는 승리해도 결국 전쟁에서 지게 된다. 콜레라가 기승을 부리던 19세기 유럽의 의사들은 각개전투를 통해서는 전염병을 퇴치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았다. 1851년 파리에서 열린 국제위생회의(The international Sanitary Conference)에 유럽의 수많은 의사가 모였다. 아직도 미아즈마 이론을 주장하는 의사로 인해 합의는 이루지 못했지만, 일단 한번 모이니 두번째는 더 쉬웠다. 1938년까지 총 14회의 회의가 열렸다. 주요 주제는 콜레라, 황열병, 가래톳 페스트였다. 각국의 보건 당국은 의료 자원을 통제하여 전염병의 발병과 전파를 막고, 치료를 촉진하는 행정적인 시도를 감행했다. 때맞춰 항생제와 백신이 보급되고, 방역과 위생, 상하수도 시설의 개선 등 다양한 노력이 뒷받침되면서 구체적인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DDT의 등장은 말라리아모기의 숫자를 급격히 줄였다. 오랫동안 인류를 괴롭히던 결핵의 정체도 점점 분명해졌다. 결핵균을 발견한 코흐는 노벨상을 받았다.
군 의료조직은 좀 더 빠른 속도로 개선되었다. 전투에서 죽는 군인보다 전염병으로 죽는 군인이 더 많다는 것을 몇몇 현명한 지휘관이 깨닫았기 때문이다. 군의 특성상 강압적인 위생 개선과 백신 접종이 가능했고, 따라서 효과 입증도 선명했다. 군의관에 의해 검증된 치료방법은 곧 민간에도 적용되었다. 전쟁 중 민간인에 대한 배급은 전시 물자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는 목적이었다. 의사들은 맛에는 관심이 없었다. 최적 영양 성분에 맞춘 식량이 배급되었다. 이는 뜻밖에도 빈부 수준과 관계없이 안정적으로 영양을 공급하는 효과를 낳았다. 일부 하류층은 오히려 전쟁 전보다 영양 상태가 더 좋아졌고 더 건강해졌다.
1909년 파리에서 국제공중위생국이 창립되고, 이후 국제 연맹은 보건 기구(the Health Organization of the League of Nations)를 설립했다. 1945년 유엔 중국 대표 쉬시밍의 발의로 3년간의 준비를 거쳐, 1948년 4월 7일 드디어 세계보건기구가 창설되었다. 창설 당시 최우선 목표는 말라리아 확산 방지, 결핵 및 성병 감염 통제, 모성 및 아동 건강 개선, 영양 및 환경 위생 개선이었다. 말라리아 퇴치 프로그램과 결핵 예방을 위한 대량 BCG 접종은 큰 성과를 거두었다. 1958년 천연두 근절을 위한 글로벌 이니셔티브를 착수했는데, 당시에는 매년 2백만 명이 천연두로 죽고 있었다. 1979년 천연두는 완전히 근절되었다.
감염병의 반격
지금까지는 최소한 전염병 전장에서는 의사들이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것처럼 보인다. 인류 역사상 수많은 사람을 떼죽음으로 몰고 간 감염병은 완전히 박멸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수준에서 관리되는듯 보인다. 하지만 감염균도 팔짱만 끼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금세 DDT에 저항력을 가지는 모기가 등장했고, 각종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세균이 나타나고 있다. 기존의 방법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신종 감염균이 게릴라처럼 산발한다. 모든 진화는 공진화다. 척추동물의 면역계와 감염균의 병원성은 수억 년 동안 군비경쟁을 벌이며 공진화했다. 인류는 혐오의 심리적 모듈을 통해서 당시의 진화적 환경에서 효과적인 행동 면역계를 진화시켰다. 식재료의 종류와 요리방법, 식사 방법 및 향신료 등의 다양한 식문화도 감염병을 막는 문화적 장치다. 넓은 의미에서 현대 의학도 이러한 행동 면역 반응이자 감염을 막는 문화의 확장형이다. 하지만 감염균은 지치지도 않고 계속하여 이러한 다층 면역 체계의 허술한 부분을 찾아 공격하고 있다.
인구의 증가와 공장식 사육, 세계화로 인한 물자와 인력의 이동 등 현대 사회의 여러 상황은 감염병과 싸우는 의사나 의학자에게는 아주 불리한 조건이다. 미지의 감염균이 나타나면 어김없이 원시적인 초자연적 질병관과 자연주의적 패러다임이 고개를 치켜 든다. 신의 심판과 저주 혹은 깨어진 심신의 조화 등 변방으로 밀려나 있던 설명론이 다시 득세한다. 뭐 궁극적으로는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장 환자를 치료하거나 전염병의 전파 방지에는 별무소용이다. 나는 김치를 좋아하지만, 단언하건데 감염병 예방에는 전혀 효과가 없다. 감염병에 걸리면 단전 호흡을 하는 것보다 일단 병원에 가는 것이 지혜로운 선택이다.
신종 코로나 사태 이후 수많은 의학 논문이 쏟아져 나오고, 다양한 연구가 광속으로 진행되고 있다. 아마 곧 전염병에 큰 타격을 날릴 새로운 백신이나 항생제 혹은 공공보건 혁신이나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의학적 진보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도 잠잠해질 것이다. 분명 시간 문제다. 하지만 안심하지 말자. 사스와 메르스 사태는 그리 오래전의 과거가 아니다. 우리의 기억은 금세 사라지고, 어두운 곳에서 감염균은 다시 새로운 길을 찾아낼 것이다. 아마 전염병과 인류의 전투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알베르 카뮈는 그의 책, ‘페스트’에서 수많은 희생자를 낳은 후 드디어 페스트를 이겨낸 오랑시를 바라보는 주인공의 말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했다. 책의 마지막 구절이다. “그는 이 연대기가 결정적인 승리의 기록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 기록은 다만 공포와 그 공포가 지닌 악착같은 무기에 대항해 수행하여야 했던 것, 그리고 성자가 될 수도 없고 재앙을 용납할 수도 없기에 그 대신 의사가 되겠다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이 그들의 개인적인 고통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수행하여야 할 것에 대한 증언일 뿐이다… 군중이 모르는 사실, 즉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십 년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있다가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상, 출처; 동아 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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