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살아가자/사람과 예술

라부아지에의 죽음... 과학자 ~ 혁명가 ~ 화가의 스토리

BK(우정) 2020. 1. 28. 13:06

1788년 프랑스에 살던 화가 다비드는 과학자 라부아지에의 집을 방문하게 됐다. 라부아지에는 당시 정치가로서도 명망이 높았다. 다비드는 라부아지에의 그림을 그려주며 주변의 유명 인사들을 소개받았다. 하지만 자신의 아내와 다비드의 다정한 모습을 본 라부아지에는 아내와 다비드의 관계를 의심했고 다비드에게 모욕적인 말을 퍼부었다. 억울함을 느낀 다비드는 라부아지에에게 복수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5년 뒤 다비드는 프랑스 혁명을 이끈 급진 혁명파 마라가 괴한으로부터 암살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당시 라부아지에는 재정 총감으로 임명돼 왕당파의 수장으로 활동을 했었기에 마라와 사사건건 부딪혔다. 프랑스 시민 혁명이 성공하면서 당시 루이 16세의 편에서 일했던 라부아지에는 루이 16세가 처형을 당했음에도 과학자로서 공로를 인정받아 목숨을 부지했다. 이런 상황에서 다비드는 마라의 죽음을 활용해 라부아지에에게 복수를 하고자 마음먹었다.


다비드는 '마라의 죽음'이라는 그림을 그려 마라를 안타깝게 죽은 혁명가로 미화시켰다. 그림 속 마라는 목욕을 하는 중에도 오른손엔 펜을 왼손에는 청원서를 들고 있다. 죽는 순간까지도 시민들을 위해 몸 바쳐 일했던 마라를 표현한 것이다. 다비드는 또 마라를 순교자로 그려냈다. 마라의 가슴에 난 상처는 창에 찔린 예수를 연상하게 했고 몸을 비튼 각도와 표정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떠올리게 했다. 실제 마라는 심각한 피부 질환을 앓던 추남이었지만 다비드는 마라를 희고 깨끗한 피부를 지닌 미소년으로 묘사했다.

다비드는 '마라의 죽음' 그림을 완성한 직후 프랑스 파리 시내 곳곳에 그림을 전시했다. 시민들은 다비드의 의도대로 마라를 추앙했고 라부아지에를 비난했다. 결국 라부아지에는 마라가 죽은 지 한달 만에 체포돼 사형 선고를 받았다. 1794년 라부아지에는 다비드가 지켜보는 가운데 처형됐다.

 

이상, 출처; 머니 투데이

https://n.news.naver.com/article/008/0003243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