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의 글/우정 시선

가을비 소묘

BK(우정) 2019. 10. 16. 05:53




가을비 소묘

 

 

밤새 비가 왔나 보다

비가 채 그치지 않은 아침

문을 열고 길을 나서면

가로등의 차가운 불빛이

젖은 노면에 닿아 잘게 부서진다

 

가을이 떠날 준비를 하나보다

뒤안길, 북악에서 내려오는 바람이

젖은 낙엽, 그 처량한 내음을

담배 연기와 함께

폐 깊숙이 밀어 넣는다

 

가을은 오갈 때 늘 인사를 한다

나뭇잎을 물들이고

세상 가득 쓸쓸함을 채우고

이제는 흠뻑 젖은 마음을 두고

작별 인사를 한다

 

그리고 멀리 떠나려나 보다

여물지 않은 과일

물들지 못한 이파리들이

거두지 못한 마음과 함께

가을 바람에 쓸쓸히 흔들리는데

 

밤새 비가 왔나 보다

비가 채 그치지 않은 아침

문을 열고 길을 나서면

외로운 사람들은

제각기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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