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탄 아름다운 여인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거리를 돌고 있다. 보기 좋게 살찐 고급 품종의 아라비아산(産) 백마의 입에는 황금으로 된 재갈이 물려있고, 자주색 안장은 고급스러움이 묻어난다. 또한 사자와 방패 무늬의 문장으로 장식된 고삐와 덮개는 화려하기 그지없다. 고개를 숙인 가녀린 여인의 모습, 무슨 죄를 지었기에 발가벗고 있을까. 분명 범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 것은 분명하지만 여인의 곱고 아름다운 자태에 동정심이 절로 인다.
여인의 이름은 고디바(Godiva). 11세기 영국 런던 북부에 위치한 코번트리를 지배하던 레오프릭 백작의 부인이다. 레오프릭은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며 통치했던 고약한 영주였다. 농사가 잘 되든 못 되든 무거운 세금을 징수해 백성들의 원성이 컸다. 이를 보다 못한 그의 아름다운 아내 고디바가 남편에게 세금을 줄여 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레오프릭은 아내의 충고를 하찮게 여기듯 “세금을 줄이고 싶으면 발가벗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시오”라며 쏘아 붙였다. 신앙심이 깊고 천성이 고왔던 고비다는 남편의 말을 듣고 실행에 옮기기로 작정했다. 엄청난 수치심을 감내해야 했지만 주민들을 위해서 발가벗기로 한 것이다. 영주의 부인이 발가벗은 채 동네를 돈다는 소문은 급속히 퍼져 모든 주민들이 알게 되었다. 주민들은 고디바의 결정에 감동해 회의를 가졌다. 많은 이야기가 오간 끝에 내린 결론은 그녀의 발가벗은 모습을 보지 않기로 한 것이었다.
이윽고 실행을 옮기는 날이 왔다. 고디바 부인은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옷을 벗고 말 위에 올라탔다. 백마위에 올라 탄 채 동네의 어귀로 들어섰지만 거리에는 단 한사람도 보이지 않았고, 모든 집과 가게의 문과 창문은 닫혀져 있었다. 주민들이 그녀의 아름다운 마음에 아름다운 행동으로 대답한 것이다. 하지만 거의 한 바퀴를 돌며 마무리 할 쯤 톰이라는 동네의 재단사가 문틈으로 고디바의 나신을 엿봤다. 아름답기로 이름난 여인이었기에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몰래 본 것이었다. 흑심을 채운 톰.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톰은 이후 장님이 되어 평생을 살아야 했다. 부인의 아름다운 마음과 주민들의 선량함에 감동한 레오프릭은 세금을 감면하는 것은 물론이고 독실한 종교인이 되어 선정을 베풀기 시작했다.
▶레이디 고디바 - 고디바 부인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인물은 실제하지만 발가벗고 말을 탄 이야기는 13세기 이후의 문헌에서 최초로 발견된다. 영주가 죽은 후 선행을 베푼 고디바 부인을 기리기 위해 전설적인 이야기로 윤색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에게 고디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초콜릿 상표다. 고디바 초콜릿의 창업주인 조셉 드랍스는 고디바 부인의 선행에 큰 감동을 받아 그녀의 이름을 상호로 썼다. 사업은 대성공을 거둬 지금은 초콜릿의 대명사가 됐다. 또한 고디바 부인의 알몸을 훔쳐 본 톰의 행각은 ‘피핑 톰(Peeping Tom)’이라는 관용어로 정착돼 관음증과 엿보기를 대표하는 용어가 됐다.
▶문장(紋章)의 기원 - 중세의 기사를 다룬 영화를 보면 다양한 문장이 등장한다. 문장은 중세 유럽각국이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쟁탈전을 벌일 때 만들어 졌다. 문장에는 보통 사자와 독수리, 방패, 칼, 창 등의 장식이 많이 쓰였다. 모두 용맹함과 군대를 상징하는 것들이다. 전투 중 피아 식별을 위한 실용적인 목적으로 처음엔 쓰였지만 점차 국가와 가문을 상징하는 것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십자군전쟁은 유럽 각국에 문장을 확산시켰다. 전쟁의 특성상 문장에는 십자가 문양이 많이 그려졌고, 원정 후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간 기사들에 의해 유행처럼 퍼졌다. 현대 유럽국가들의 국기에 십자가 모양이 많은 것도 그 영향 탓이다.
▶고디바 초콜릿 - 고디바 초콜릿처럼 사람의 이름을 따서 회사명으로 쓴 기업들은 부지기수다. 한국의 롯데(Lotte)는 창업주인 신격호 회장이 괴테의 유명한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샤롯데(Charlotte)’에서 ‘샤’를 빼고 이름을 붙인 것으로 유명하다. 스포츠용품 회사 아디다스(Adidas)는 창업주의 이름 아돌프 다슬러(Adolf Dassler)에서 따왔다. 아돌프의 애칭이 아디(Adi)여서 이름과 성을 빌려왔다. 미국을 대표하는 영화사 20세기 폭스(20th Century Fox)사는 창업주의 이름 윌리엄 폭스(William Fox)에서, 여객기와 전투기 제조업체 보잉(Boeing)도 창업주 이름 윌리엄 보잉(William Boeing)에서, 운송업체 DHL은 세명의 창업주(Adrian Dalsey, Larry Hillblom, Robert Lynn)의 이니셜에서 따왔다. 나이키는 그리스 신화속 ‘승리의 여신’인 니케(Nike)에서 따왔고, 여행가방 전문 제조업체 삼소나이트(Samsonite)는 구약성서속의 영웅 삼손(Samson)에서 따와 재질의 튼튼함을 강조했다. 전기차로 유명한 테슬라(Tesla)는 세르비아 출신의 발명가이자 물리학자인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의 이름을 차용했다. 커피브랜드 스타벅스(Starbucks)는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속의 항해사 ‘스타벅(Starbuck)’에서 유래했는데 복수인 이유는 창업자가 3명이었기 때문이다.
▶피핑 톰(Peeping Tom) - 피핑 톰처럼 역사적 일화에서 유래한 고사성어 또한 서양에는 많이 있다. 여성들간의 동성애를 뜻하는 레즈비언(Lesbian)은 그리스 에게 해에 있는 레스보스(Lesbos)섬에 여인들이 많이 살았기 때문에 유래했다. 자연분만이 어려워 배를 가르고 수술로 아기를 낳는 ‘제왕절개(Caesarean Section)’는 고대 로마의 영웅 줄리어스 시저(Julius Caesar)가 절개수술로 태어났기 때문에 ‘제왕’이라는 영예로운 호칭을 얻게 되었다. 육체적이지 않고 이상적이며 지적인 사랑을 뜻하는 ‘플라토닉 러브(Platonic Love)’는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Platon)의 ‘진정한 사랑은 신성해야 되고, 신성하기 위해서는 육욕을 버려야 한다’라는 철학에서 비롯됐다. 반면 육체적인 사랑을 뜻하는 에로티시즘(Eroticism)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아들이자 ‘사랑의 전령사’로 유명한 에로스(Eros)로부터 유래했다. 정신분석학 용어로 잘 알려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와 ‘엘렉트라 콤플렉스(Electra Complex)도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인 오이디푸스와 엘렉트라의 일화에서 유래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아들의 어머니에 대한 강렬한 사랑과 아버지에 대한 질투심을 뜻하게 되었고, 엘렉트라 콤플렉스는 그 반대 개념으로 딸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어머니에 대한 질시를 뜻하는 용어로 쓰이게 됐다.
▶존 콜리어(1850 ~ 1934) - 영국의 화가다. 전아한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19세기 후반의 라파엘 전파를 대표하는 화가로 인물화에 능했다. 1875년 독일 뮌헨으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미술공부를 시작했다. 콜리어는 평범할 수 있는 인물화에 강렬한 색상감각을 적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레이디 고디바’를 비롯해서 그의 대표작중의 하나인 ‘릴리트’ 또한 이전의 인물화에서 볼 수 없었던 파격을 보여줬다. 그는 유명가문의 자제로서 당대에 왕립미술협회의 일원이 되기도 했다. 또한 다윈과 함께 진화론자로 유명했던 토마스 헉슬리가 그의 장인이었다. 특히 콜리어는 두 번 결혼했는데 모두 헉슬리의 딸들이었다.
이상, 출처; 스포츠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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