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의 목련, 목련들
순결하게 피고
순간으로 머무르다가 떠난다
캠퍼스의 아이들처럼
창밖으로 보이는 목련, 옛 기억들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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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무렵의 봄
오전 수업만 있는 날
우리는 각각 못 몇 개씩을 필통에 넣고
내를 건너고 고개를 넘어
기차가 지나는 마을로 갔다.
철길에 귀를 대고 가만히 있으면
멀리서 기차가 오는 소리가 들리고
못들을 철로 위에 가지런히 놓아두면
기차가 지나고 난 후
못들은 납작하게 눌려
적당히 날이 선 작은 칼들이 된다.
우리는 다가오는 기차에 맘이 설레었고
멀어져 가는 기차의 뒷모습을 보며
가보지 못한 곳을 떠올렸다.
지금도 기차소리가 들리면
괜스레 맘이 설레고
멀어져 가는 기차의 뒷모습을 바라보면
약간은 슬픈 그리움이 된다.
2014년 봄, 오전 수업을 하는 날
금속의 열팽창 특성을
여름과 겨울의 철로 길이의 변화
철로 이음매에 작은 틈이 있는 이유로
설명하며
불현듯 바라보는 유리창 밖에는
기차소리가 들려오고
떨어지는 목련 꽃잎들 사이로
어린 시절의 기차가 지나고 있다
(기차소리, 은혜의 땅 아름다운 금성면,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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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이 지면, 나는
봄의 제1막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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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을 보내며
목련이 지는 날이면
들창을 닫는다
이별에는 칩거가 필요하다
순간이지만
짧지 않은 이별
하루, 그리고 한달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갈 동안
나에게는 하나 둘
목련이 진다
새 봄이 오면 기억해야지
떨어져간 목련
지난 봄날의 찬란함을
검게 떨어져간 빛 바랜 꿈들을
새로운 계절
꽃이 진 자리에는 잎이 돋아도
떠난 이들은 잊혀져도
나에게는 여전히
목련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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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이 지는 날에는
목로주점에서 술을 마시자
하얀 꽃잎들이
검은 빛깔로 떨어지는 날
검은 뒷모습으로
떠나간 사랑을 그리워하자
잎보다 먼저 피는 꽃
철들기 전에 온 사랑이었다
봄을 먼저 알리는 꽃
사랑보다 먼저 너는 왔다
사계절을 기다려 짧게 피는 꽃
긴 기다림, 사랑은 짧았다
빛이 아닌 북쪽을 향해 피는 꽃
먼 곳으로 너는 떠났다
목련이 지는 날에는
목로주점에서 술을 마시자
빛이 어둠으로 떨어지는 날
휑한 두 눈
구부러진 어깨로
돌아올 사랑을 그리워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