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살아가자/일상의 상식

"빛이 예술과 과학의 다리가 될 때", KIST 서민아 박사

BK(우정) 2022. 4. 1. 05:43

과학자를 인터뷰할 때는 주로 실험장비가 가득한 연구실에서 만난다. 복잡한 이미지가 나타난 모니터나, 고가의 실험장비에 손을 얹고 사진을 찍을 때가 많다. 하지만 2월 3일 오전, 서민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센서시스템연구센터 책임연구원(고려대 KU-KIST 융합대학원 교수)과의 인터뷰는 서울 영등포구의 스튜디오에서 진행됐다. 그가 직접 그린 그림 앞에서였다. 2월 발간한 두 번째 저서 ‘빛이 매혹이 될 때’의 표지로 활용된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의 ‘채링 크로스 다리’에서 모티브를 얻은 그림이다.

 

서민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센서시스템연구센터 책임연구원·고려대 KU-KIST 융합대학원 교수. 홍덕선 제공

 

“미술계에서 인상파를 필두로 현대 미술이 시작된 시기와, 물리학계에서 빛의 정체에 관한 논쟁이 종결되며 현대 물리가 시작된 시기가 20세기 초반으로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 시기 과학자들과 미술가들은 실제로 교류하면서 서로의 시야를 넓혀주기도 했죠. 지금은 키네틱아트, 미디어아트 등 과학적 현상 자체를 모티브로 작품 활동을 하는 미술가들이 있어요. 과학과 미술은 여전히 상호작용하고 있습니다.”


서 교수의 연구 분야인 테라헤르츠 광학은 미술과 활발히 상호작용하는 대표적 분야다. 테라헤르츠 빛은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길어 눈에 보이지 않는다. 대신 가시광선보다 물체에 깊이 침투할 수 있다. 사람의 눈이 닿지 않는 밑그림 층까지 도달할 수 있는 테라헤르츠 빛의 특성을 이용해 그림을 분석하면 화가의 작업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서 교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이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림의 역사를 보여준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면서도 재미있다”고 말했다. 

 

이공계 대학원생들과 함께하는 색채학 수업

 

미술과 연결 지을 수 있는 과학 분야는 테라헤르츠 광학 외에도 많다. 서 교수는 고려대에서 이공계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색채학 개론을 가르치고 있다. 수업 첫 시간에는 태양광 스펙트럼 실험을 통해 가시광선의 정체를 탐구했던 아이작 뉴턴을 이야기한다. 이어 빛이 전자기파임을 예견했던 제임스 클라크 맥스웰 등 과학자들을 통해 현대 과학의 발전을 소개한다. 동시에 그들이 활동했던 시기의 미술 작품들을 소개해 과학과 미술의 연관성을 짚는다. 


기말과제는 자신의 연구 주제와 자기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연결 지어 분석하는 것이다. 서 교수는 “형광 이미징 기술을 활용해 뇌를 분석하는 한 학생은 뇌의 활성을 이미지화할 때 사용하는 빨간색, 녹색, 파란색이 앙리 마티스의 작품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점을 들어 마티즈의 그림과 자신의 연구가 유사하다고 분석했다”고 했다. 그는 “이런 과정을 거치면 자신의 미술 취향을 찾게 된다”며 “첫 수업 때 신윤복의 ‘단오풍정’을 보고 작가나 제목을 맞히지 못하던 학생들이 화가들 특유의 화법을 이해해, 마지막 수업에서는 그림이 진짜인지, 모작인지를 구별해낸다”고 했다.


미술을 ‘읽어내는’ 눈을 갖추는 것은 이공계 학생들에게 꽤나 유용한 자산이다. “복잡한 수식보다 개념을 전달하기에 더없이 좋은 방법은 그림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막 시작한 연구자 대부분은 자신의 머릿속에 두루뭉술하게 존재하는 개념을 구체적인 그림으로 형상화하는 데 큰 어려움을 느낍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게 표현의 기술과 예술적 감수성일 것입니다.”

 

과학과 미술 사이에 다리를 놓다

 

“네가 언젠가 한 번쯤은 의미 있는 엉뚱한 짓을 할 줄 알았다.”


대학 시절, 물리학과에 재학하면서도 화구통을 어깨에 메고 미대를 기웃거리던 서 교수가 책을 내자 지인이 한 말이다. 서 교수는 주중에 연구하고 주말에 그림을 그리면서 책까지 펴낼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무엇보다 재미를 꼽았다. 


연구 분야를 정하게 된 것도 대학교 3학년 겨울방학, 친구와 재미있는 일을 좀 해보자고 의기투합한 일이 계기가 됐다. 방사선의 궤적을 관찰할 수 있는 ‘윌슨의 안개상자’를 직접 만들어보기 위해 서울 중구 을지로 공작소를 누볐다. 도서관에서 책과 논문을 뒤져가며 구름이 생성되는 원리도 공부했다. 서 교수는 “윌슨의 안개상자를 손을 직접 만들어 방사선 궤적을 관찰하던 순간의 기쁨을 잊을 수가 없다”며 “그때부터 실험 물리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정했다”고 말했다. 


미술의 재미도 잊지 않았다. 대학원 재학 당시 실험 기술을 배우기 위해 네덜란드 델프트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델프트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로 유명한 요하네스 페르메이르가 평생 살았던 도시다. 이곳에서 짬이 날 때마다 미술관을 누볐다. 페르메이르를 비롯해 렘브란트 반 레인, 빈센트 반 고흐 등 ‘빛의 화가’들을 만나며 미술에 대한 애정에 불을 지폈다. 


서 교수의 ‘엉뚱한 짓’은 계속되고 있다. 책과 강의 외에도 KIST가 수림미술관과 함께하는 프로젝트에도 3회째 고정 멤버로 참여하고 있다. 미술가와 과학자가 6개월간 함께 작품을 만드는 이 프로젝트에서 그는 과학과 미술 사이의 다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 그동안 딱딱하게 느껴졌던 과학적 사실이 사실은 훌륭한 미술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차가운 과학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여러 가지 자연 법칙은 감수성 충만한 미술의 재료로 쓰일 수 있어요. 사람들이 이를 알고 잠시 숨겨뒀던 예술적 감수성을 끄집어내 환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제가 그 시간의 문의 빗장을 여는 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이상, 출처; 동아사이언스

[인터뷰] "빛이 예술과 과학의 다리가 될 때" : 동아사이언스 (dongascienc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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