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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입자라면 전자는 파동이다, 입자-파동의 2중주

BK(우정) 2021. 12. 28. 05:02

덴마크의 물리학자 닐스 보어의 원자모형이 대단히 성공적이었고 모즐리나 프랑크 헤르츠의 실험도 보어의 모형을 강력하게 지지하기는 했지만 보어 모형의 대담한 가설들은 가설일 뿐이라 왜 그러해야 하는지를 그 자체로 설명할 수는 없었다. 여기에 큰 돌파구를 만든 사람이 프랑스의 루이 드브로이였다. 드브로이는 귀족가문 출신으로 1892년에 태어나 1924년 나이 서른이 넘어 박사학위를 받았다. 당대의 다른 천재들이 20대에 눈부신 성과를 내고 30대에 노벨상을 받은 것에 비하면 조금 늦은 감은 있었다. 드브로이는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굉장히 파격적인 이론을 제시했다. 전통적으로 파동이라 생각했던 빛, 즉 전자기파가 광양자가설을 통해 입자적인 성질을 드러내듯이 반대로 전통적으로 입자라 여겼던 전자 같은 물질도 파동의 성질을 갖는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런 파동을 물질파라 한다.

 

1934년 코펜하겐의 학회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닐스 보어((오른쪽)와 하이젠베르크. 위키피디아 제공

 

사실 과학자들은 극단적인 사고를 잘하는 사람들이기는 하다. 갈릴레오는 마찰이 없는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해 빗면을 굴러 내려온 공은 평면을 따라 영원히 굴러갈 것이라고 추론했다. 이는 관성의 발견으로, 외부에서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운동이 멈출 것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관을 보기 좋게 무너뜨렸다. 뉴턴은 높은 산에서 대포를 쏘았을 때 포탄의 사거리가 지구 둘레만큼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사고실험을 통해 달이 지구 주위를 공전하는 것이 지구를 향해 끝없이 낙하하는 것과도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18세기 프랑스의 존 미셸과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는 표면중력이 극도로 강력해 그 중력을 탈출할 수 있는 초속도가 광속보다 큰 경우를 상상했다. 이런 천체를 어둑별이라 하는데, 20세기에 일반상대성이론 속에서 개념이 정립된 블랙홀의 원조에 해당한다. 

 

드브로이의 극단적인 사고는 언뜻 보기에 아주 황당해 보인다. 하지만 흑체복사, 광전효과, 콤프턴 산란 등의 경우에서 보듯이 오랜 세월 파동이라 여겨왔던 빛이 입자적인 성질을 갖고 있음이 분명하다면 이 상황을 대칭적으로 적용해 보려는 시도, 즉 입자도 파동적 성질을 갖는 게 아닌가 하고 가정해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고의 확장이라고도 볼 수 있다. 빛이 입자라는데, 전자가 파동일 수도 있지 않은가.

 

프랑스 물리학자 드브로이(1892~1987)


어떤 개체가 파동의 성질을 갖고 있음을 어떤 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파동의 가장 큰 성질은 파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드브로이는 어떤 물체가 가지는 물질파의 파장이 플랑크 상수를 그 운동량으로 나눈 값으로 주어진다고 주장했다. 물체의 운동량은 고전적으로는 그 물체의 질량과 속도의 곱으로 주어진다. 이 관계식은 빛의 경우 아주 쉽게 얻을 수 있다. 드브로이는 그 관계가 전자 같은 입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생각했다. 드브로이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1923년 일련의 논문으로 발표했고 이를 더 가다듬고 발전시켜 박사학위 논문으로 완성했다. 드브로이의 학위논문이 너무나 파격적인 주장을 담고 있어서 일화에 따르면 당시 논문심사위원들이 이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심할 정도였다고 한다. 논문지도교수였던 폴 랑주뱅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에게 드브로이의 논문을 보내 의견을 물었다. 아인슈타인은 드브로이의 논문에 큰 감명을 받아 드브로이에 보낸 편지에서 “거대한 베일의 모퉁이를 들어올렸다”고 높이 평가했다. 드브로이는 결국 자신의 박사 학위 논문으로 1929년 노벨물리학상을 단독 수상했다. 선정위원회는 '전자의 파동적 성질을 발견한 공로'를 선정이유로 들었다. 

 

드브로이의 물질파 공식을 담고 있는 기념 우표. 위키미디어 제공

 

드브로이의 물질파는 보어의 원자모형에 보다 탄탄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할 수 있었다. 보어의 모형에서 가장 신비로운 점은 어떻게 전자가 불연속적인 특정한 에너지 준위에만 존재하고 있는가이다. 만약 전자가 파동이라면 이점을 쉽게 설명할 수 있다. 먼저 간단하게 기타줄처럼 양끝이 고정된 줄이 진동하는 파동을 생각해 보자. 이런 파동은 움직이지 않고 정지한 상태에서 진동하므로 정지파(standing wave)라 한다. 정지파가 형성되면 그 파동의 파장은 임의의 값을 가질 수 없다. 왜냐하면 파동 전체의 길이가 고정돼 있기 때문이다. 즉, 파장이 제일 긴 정지파의 경우 정지파의 길이는 파동의 반파장에 해당한다. 또 다른 진동모드에서는 파장이 절반으로 줄어들어 정지파의 전체 길이가 파동의 한 파장에 해당한다. 이처럼 정지파에서 가능한 진동모드에서는 파장이 임의의 값을 가질 수 없고, 파동 전체의 길이가 반파장의 정수배인 파동만 가능하다.


이런 상황을 일반화시켜 만약 기타를 휘어서 원으로 만들면 어떻게 될까? 이때 형성되는 기타줄의 정상파는 그 반파장의 정수배가 항상 원주의 길이와 같아야만 한다. 이와 비슷하게 원자 속의 전자도 물질파로서 원형으로 하나의 정지파를 이룬다고 생각하면 보어의 전자궤도를 설명할 수 있다. 즉, 전자궤도의 원주의 길이가 전자의 물질파 파장의 정수배로만 가능하다. 여기서 물질파의 파장에 드브로이의 공식을 대입하면 보어가 가정했던 각운동량의 양자화 조건이 도출된다. 말하자면 드브로이의 물질파는 보어모형의 다소 임의적인 가정에 ‘족보’를 부여한 셈이다. 


빛이 파동이면서도 동시에 입자적인 성질을 갖고 있고, 전자가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적 성질을 갖고 있는 이런 양상을 입자-파동의 이중성이라 부른다. 이중성은 한꺼번에 드러나지 않는다. 한 성질이 발현되면 다른 성질은 숨어버린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생긴다. 빛의 생소한 입자적 성질은 광전효과나 콤프턴 산란 실험으로 확인이 되었는데, 과연 전자의 생소한 파동적 성질은 어떻게 드러날 것인가? 실제로 드브로이는 박사학위논문 구두심사에서 이와 비슷한 질문을 받았고 드브로이 자신이 여기에 대한 답을 주었다. 드브로이는 전자가 결정에 부딪혀 튕겨 나올 때 파동과도 같은 회절현상을 관측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회절이란 파동이 경계면의 모서리에서 휘어져 나가는 현상이다. 파동이 아주 작은 틈을 통과하면 파동은 그 틈을 일직선으로 지나는 경로에만 존재하지 않고 그 주변으로 퍼져나간다. 이는 파면의 각 점이 새로운 구면파의 근원으로 작용하는 하위헌스-프레즈넬 원리 때문이다. 이때 각 점이 형성하는 파면이 서로 만나서 중첩된다. 그 결과 빛의 경우 일정한 거리만큼 떨어진 스크린에 밝고 어두움이 반복되는 무늬를 만들어낸다. 이것을 회절무늬라 한다. 회절은 입자와 파동을 결정적으로 구분 짓는 현상이다. 예컨대 아주 좁은 구멍에 대고 총을 난사하면 그 구멍을 통과한 총알들은 그보다 더 멀리 있는 표적지에 자신이 통과한 구멍만큼의 흔적만 남길 것이다. 구멍과 표적지를 잇는 직선에서 멀리 떨어진 지점에 총알이 도달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입자의 특성이다. 그러나 좁은 틈에 대고 빛을 쏘면 틈과 스크린을 잇는 직선 주변으로 밝고 어두운 동심원 무늬가 생긴다. 대표적인 사례로 결정에다 X선을 쬐면 결정의 격자들에 튕겨 나온 X선들이 서로 중첩되며 동심원 모양의 회절무늬를 만든다. 드브로이는 X선 같은 전자기파가 아니라 전자라는 명백한 입자(누가 뭐래도 전자는 빛보다 총알에 가깝지 않은가)를 쏘더라도 비슷한 결과를 얻을 것이라고 담대하게 주장한 것이다.

 

드브로이의 물질파의 존재를 실험적으로 증명하고 1년 뒤 톰슨은 X선과 동일한 파장을 지닌 전자에 의한 두가지 회절의 모양이 거의 일치한다는 실험을 통해 다시 한번 전자의 물질파 특성을 증명하게 된다. 위키미디어 제공


드브로이의 놀라운 주장이 실험적으로 검증되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1927년 미국 벨연구소의 클린턴 데이빗슨과 레스터 저머는 전자를 이용해 니켈의 표면을 연구하다가 우연히도 놀라운 결과를 얻었다. 평범하게 실험이 진행되던 도중 우연한 사고로 시료가 산화돼 오염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진은 시료를 가열한 뒤에 실험을 했다. 그 결과는 시료를 가열하기 전과 전혀 달랐다. 가열 전에는 전자가 입사한 방향에서 각도가 커질수록 튕겨 나오는 전자의 세기가 점차로 줄어들었다. 이는 전자를 총알이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결과였다. 그런데 시료를 재처리한 뒤에는 놀라운 결과를 얻었다. 입사방향과 50도 정도 되는 각도에서 전자의 세기가 굉장히 높게 나왔다. 이는 입자로 설명할 수 없는 결과였다. 비밀은 시료를 열처리한 것에 있었다. 그 결과로 니켈의 결정격자가 재배열되면서 그 간격이 전자의 물질파 파장과 비슷해지며 물질파의 회절무늬가 잘 드러나게 되었다. 그 결과 입사방향에서 한참 떨어진 영역에서도 전자의 많은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는 명백히 전자가 파동이라는 증거이다. 애초에 데이빗슨과 저머의 실험은 드브로이와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러다 우연한 사고로 엉뚱한 결과를 얻었고 그 결과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드브로이의 물질파 가정이 옳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학에서도 역시나 운이 중요하다. 


같은 해에 영국의 조지 톰슨도 비슷한 실험으로 전자의 회절무늬를 얻었다.  톰슨은 전자를 발견한 조지프 톰슨의 아들이었다. 톰슨의 경우 아버지는 입자로서의 전자를 발견했고, 그의 아들은 그 전자의 파동적 성질을 발견한 것이다. 아버지 조지프 톰슨은 1906년 전자를 발견한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단독 수상했다. 아들 조지 톰슨은 전자의 회절을 발견한 공로로 1937년 데이빗슨과 함께 노벨물리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했다. 


드브로이의 물질파는 양자역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에르빈 슈뢰딩거는 드브로이의 물질파로부터 영감을 얻어 자신의 이름이 붙은 그 유명한 슈뢰딩거 방정식을 얻었다. 슈뢰딩거 방정식은 파동방정식으로서 이를 통해 수소원자의 에너지 스펙트럼 같은 실제적인 문제를 쉽게 풀 수 있다. 슈뢰딩거 방정식이 1926년에 나왔으니까 드브로이가 물질파로 박사학위를 받은 지 불과 2년 뒤였다. 그러나 그보다 한 해 전에 독일의 위대한 천재가 이미 뉴턴역학을 대체할 새로운 역학체계를 세상에 내놓았다. 그의 이름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였다. 

 

이상, 출처; 동아사이언스

[사이언스N사피엔스] 입자파동 이중성 : 동아사이언스 (dongascienc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