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스 보어의 충격적인 원자모형은 이후 실험적으로도 검증되었다. 영국의 헨리 모즐리는 러더퍼드의 연구진에 합류해 자기만의 연구를 이어나갔다. 모즐리는 원자에서 방출하는 X선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X선은 자외선보다 파장이 더 짧으며 에너지가 더 크다. 원자가 이처럼 파장이 짧고 에너지가 큰 전자기파를 방출하는 과정은 이렇다. 충분한 에너지를 가진 전자빔을 원하는 원소에 대고 쏜다. 전자빔의 에너지는 원자 속의 전자에 전달된다. 낮은 에너지 상태의 전자가 이 에너지를 흡수해 높은 에너지 상태로 뛰어오른다. 그 결과 그 전자가 있던 낮은 상태는 비어 있게 된다. 이 빈자리를 다른 높은 상태에 있던 전자가 채울 때 그 에너지 차이만큼이 전자기파로 방출된다. 따라서 에너지 차이가 클수록 더 높은 에너지, 즉 더 짧은 파장(또는 더 높은 진동수)의 전자기파가 나온다. 그래서 X선이 방출될 수 있다. 이 결과는 정확하게 보어가 자신의 원자모형에서 예측했던 바이다.
모즐리는 1913~1914년 다양한 원소에 전자빔을 쏘아 그 결과로 방출되는 X선을 조사했는데 이 결과는 각 원소 원자번호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즉, 방출되는 X선의 진동수의 제곱근이 원자번호에서 1을 뺀 수에 비례한다는 결과를 얻었다. 이를 모즐리의 법칙이라 부른다.
당시에는 주기율표의 원자번호가 원자량, 즉 원소의 질량이 큰 순서로 번호가 부여되었다. 예컨대 알려진 원소 중 일곱 번째로 무거우면 원자번호 7이 부여되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원자번호를 부여해서 원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다소 임의적인 면이 있다. 만약 원자량에 따라 6번 탄소, 7번 질소, 8번 산소로 정해뒀는데 어느 날 갑자기 탄소보다 무겁고 질소보다 가벼운 어떤 신비한 원소가 발견된다면 질소는 7번의 자리를 잃어버릴 것이다. 게다가 주기율표를 만든 보람 중 하나는 각 원소들의 화학적 성질의 패턴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는 점인데 그것이 원소의 질량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실제로 주기율표를 처음 작성한 러시아의 멘델레예프는 52번 텔루륨(Te)과 53번 아이오딘(I;요오드)의 번호를 원자량 크기의 순번을 거슬러 화학적 성질에 따라 정했다. 질량만 따지면 텔루륨이 아이오딘보다 약간 더 무겁기 때문에 텔루륨이 53번이어야 하지만 이렇게 되면 텔루륨은 브롬과 같은 족이 되어 주기율표상에서 브롬 바로 아래에 놓인다. 그러나 브롬과 화학적 성질이 비슷한 것은 텔루륨보다 아이오딘이기 때문에 브롬 아래에 아이오딘이 오도록 텔루륨-아이오딘의 순서로 배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니까 원소의 정체성과 직결되는 원자번호를 원자량으로만 정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모즐리가 원소들의 X선을 연구할 무렵엔 원자량 대신 원자핵의 전하량을 기준으로 원자번호를 매기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모즐리의 결과, 즉 방출되는 X선의 진동수의 제곱근은 원자량의 순서보다 핵의 전하량의 순서를 지지했다. 지금 우리가 알기로는 원자핵의 양의 전하량은 양성자의 개수로 정해진다. 이 사실이 밝혀진 것은 모즐리의 법칙이 나온 뒤 몇 년이 지난 뒤였고, 그 주역은 모즐리의 스승 러더퍼드였다.
모즐리의 법칙은 보어의 원자모형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다. 보어 모형에서도 중요한 것은 원자핵의 전하량이다. 그러니까 모즐리의 결과는 원자 안에 양의 전기를 가진 핵이 있고, 전자가 높은 에너지 준위에서 낮은 에너지 준위로 떨어질 때 그 에너지 차이만큼 광양자가설에 따라 전자기파를 방출한다는 러더퍼드-보어의 원자모형을 뒷받침하고 있다. 또한 놀랍게도 모즐리는 자신의 결과를 이용해 원자번호 43번, 61번, 72번, 75번인 원소들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음을 보였다. 이들 원소, 즉 테크네튬(Tc, 43), 프로메륨(Pm, 61), 하프늄(Hf, 72), 레늄(Re, 75)는 훗날 모두 발견되었다. 모즐리가 원소들의 X선 실험을 시작했을 때 그의 나이 불과 25세였다. 얼마 뒤 1차 대전이 발발하자 모즐리는 자원입대했는데, 1915년 터키의 갈리폴리 전투에서 27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모즐리와 비슷한 시기 독일의 제임스 프랑크와 독일의 구스타프 헤르츠는 프랑크-헤르츠 실험으로 알려진 연구를 통해 보어의 원자모형을 뒷받침했다. 프랑크와 헤르츠의 실험은 비교적 간단했다. 전자를 방출할 수 있는 필라멘트가 들어있는 진공관 속에 수은을 넣고 100도 이상의 높은 온도로 가열하면 수은 증기가 진공관을 가득 채운다. 필라멘트와 진공관에 적절한 전압을 가하면 필라멘트에서 튀어나온 전자가 수은 원자와 충돌하게 된다. 이처럼 프랑크-헤르츠 실험은 한 마디로 전자와 기체원자의 충돌실험이었다.
필라멘트를 탈출한 전자에 걸린 전압이 낮으면 전자의 운동에너지가 크지 않고 수은 원자들과 탄성충돌을 한다. 이 과정에서 전자는 에너지를 별로 잃어버리지 않고 무사히 진공관 반대편에 도달한다. 한동안은 전자를 가속하는 전압이 높아질수록 진공관 반대편까지 이르는 전자도 많아져 전류가 증가한다. 그러다가 전압이 더 높아지면 어느 순간 전자의 에너지가 충분히 커서 수은 원자와 비탄성충돌을 하며 대부분의 에너지를 잃어버린다. 그 결과 반대편까지 이르는 전자가 줄어들어 전류도 급격하게 줄어든다. 전자가 잃어버린 에너지는 수은 원자에 전해져 그 에너지 준위를 바닥상태에서 들뜬상태로 바꾼다.
한 가지 놀라운 점은 전압을 계속 높이면 다시 전류가 증가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또 전압이 어느 지점에 이르면 전압은 다시 떨어진다. 이 결과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전자를 가속하는 전압을 가로축으로, 진공관 반대편까지 흐르는 전류를 세로축으로 하는 그래프를 그리면 전압이 증가함에 따라 전류가 올라갔다 내려가는 산봉우리와 골짜기 모양이 규칙적으로 여러 개 나타난다. 물론 전체적으로 전류의 세기는 점점 커지는 경향을 보인다.
전류가 전압에 따라 계속 증가하지 않고 갑자기 골짜기 모양으로 떨어지는 전압간격은 4.9볼트(V)였다. 즉, 4.9V의 전압 속 전자가 가진 에너지, 즉 4.9전자볼트(electron Volt, eV)의 에너지가 규칙적으로 수은 원자에 흡수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전자가 한차례 비탄성충돌로 에너지를 잃어버린 뒤에도 높은 전압 때문에 다시 가속돼 다른 수은 원자와 또다시 비탄성충돌을 하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전압이 더 높을수록 전자가 비탄성충돌하는 횟수도 그만큼 많아질 것이다.
이 결과가 놀라운 이유는 원자가 흡수하는 에너지가 불연속적이라는 점이다. 만약 공을 바닥에서 비탈면을 따라 위로 굴러 올리면 공의 운동에너지는 연속적으로 감소하면서 위치에너지는 연속적으로 증가한다. 미시세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원자가 가질 수 있는 에너지는 연속적이지 않고 불연속적이다. 비유적으로 말해 공이 비탈면을 굴러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다. 계단을 올라갈 때에는 한 계단 높이에 해당하는 에너지가 충족되지 않으면 다음 계단으로 올라갈 수 없다. 즉, 더 높은 에너지 상태로 올라서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가 불연속적이다.
프랑크와 헤르츠는 전자가 잃어버린 에너지가 정말로 수은 원자에 불연속적으로 전달되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수은 원자가 방출하는 전자기파의 스펙트럼을 조사했다. 정말로 수은 원자가 바닥상태에서 전자로부터 4.9eV의 에너지를 공급받아 들뜬상태가 되었다면, 이 들뜬상태가 다시 바닥상태로 떨어지면서 그 에너지 차이(즉 4.9eV)만큼이 전자기파로 방출될 것이다. 여기에 광양자가설을 적용하면 방출되는 전자기파의 파장을 아주 간단하게 계산할 수 있다. 전자기파, 즉 광자의 에너지가 플랑크상수 곱하기 진동수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전자기파의 진동수는 파장과 곱했을 때 광속이 돼야 한다. 결과적으로 수은 원자가 방출하는 전자기파의 파장은 플랑크상수와 광속의 곱을 4.9eV로 나누기만 하면 얻을 수 있다. 그 결과는 약 254나노미터(㎚)이다. 이 파장대는 자외선(10~400㎚)에 해당한다. 자외선은 유리벽을 관통할 수 없기 때문에 프랑크와 헤르츠는 석영을 이용해 수은 원자가 방출하는 전자기파의 파장을 측정했다. 그 결과는 254nm와 일치했다.
자외선이 유리를 통과할 수 없는 이유도 프랑크-헤르츠 실험의 원리와 비슷하다. 자외선은 파장이 짧아 에너지가 충분히 크기 때문에 유리원자가 그 에너지를 흡수해 들뜬 상태로 올라간다. 즉, 자외선이 ‘흡수’된다. 반면 이보다 파장이 긴 가시광선은 자외선보다 에너지가 작아 바닥상태의 유리원자를 들뜬상태로 바꿀 수 없다. 따라서 유리는 가시광선을 흡수하지 못하고 그냥 통과시킨다. 우리가 유리를 통해 반대편 풍경을 볼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프랑크와 헤르츠는 보어의 원자모형이 나오기 전부터 비슷한 실험을 해 왔고 1914년 프랑크-헤르츠 실험 때에도 보어모형을 잘 알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들의 결과가 불연속적으로 양자화된 에너지 준위를 갖는 보어의 원자모형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음은 자명했다. 프랑크와 헤르츠는 자신들의 이름이 붙은 실험 덕분에 전자와 원자의 충돌을 지배하는 법칙을 발견한 공로 1925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흥미롭게도 프랑크와 헤르츠는 모두 1차 대전에 참전했는데, 1915년에는 둘 다 당시 독일의 저명한 화학자였던 프리츠 하버가 이끄는 독가스 제조부대에서 복무했다. 하버는 1911년 암모니아 합성에 성공한 화학자로 인공적인 비료생산의 길을 열어 ‘공기에서 빵을 만든 과학자’로 알려져 있었다. 하버가 만든 염소 가스는 1915년 벨기에의 이프르 전선에서 ‘성공적으로’ 살포돼 독일군이 전투에서 승리하는 데에 큰 공을 세웠다.
이상, 출처; 동아사이언스
[사이언스N사피엔스] 보어 원자 모형의 지지자들 : 동아사이언스 (dongascienc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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