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 속도와 여러 생리적 제한을 놓고 볼 때, 사람 생리가 지금의 한계보다 더 높은 온도에서 견딜 만큼 진화할 것 같지는 않다." - 카밀로 모라 외, 학술지 ‘네이처 기후 변화’에 투고한 논문에서
지난달 말 캐나다 리턴란 곳의 온도가 49.5도까지 치솟았다는 외신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캐나다의 여름은 한반도보다 덜 더울 텐데 39.6도면 모를까 말이 안 되는 것 같았다. 물론 방송 사고는 아니고 실제 북미 서부 캐나다와 미국 접경지를 중심으로 열돔현상이 일어난 결과다. 대기권 중상층에 발달한 고기압이 정체돼 돔의 지붕처럼 아래 지표의 뜨거운 공기를 가둬 폭염이 발생했다는 것인데, 미국 남서부의 건조하고 뜨거운 공기 유입 등 여러 우연이 합쳐져 이처럼 극단적인 고온이 됐다. 따라서 몇몇 과학자들은 이번 북미 서부 폭염이 천 년에 한 번 일어나는 사건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북미 서부 폭염으로 캐나다에서 최소 645명, 미국에서 최소 208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낮에 40도가 넘는 폭염이라지만 습도가 낮아 밤에는 온도가 꽤 떨어지고 지속 기간도 1주일을 넘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꽤 많은 수다. 이 지역의 냉방 인프라가 부실한 게 주된 이유라고 한다. 평년 여름은 우리나라 장마철 이전 초여름 날씨라 에어컨이 없는 집이 더 많다.
지난주 초 서울에서 첫 열대야가 발생한 걸 신호로 올여름 폭염이 시작됐다. 그래도 지난주는 견딜 만했는데 이번 주는 30도대 후반까지 올라갈 거라는 예보다. 우리나라 최악의 폭염으로 기록된 2018년 여름이 재현될 거라는 말도 있다. 만일 그렇다면 8월 말까지 무더위에 시달려야 한다는 말인데 걱정이다.
○ 습도가 중요한 변수
학술지 ‘랜싯 지구 건강’ 6월호에는 ‘생명체가 견딜 수 있는 고온 경계’라는 제목의 논문이 실렸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로 폭염 발생 지역과 빈도, 지속 기간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생리적 관점의 연구 결과를 정리했다. 이에 따르면 사람뿐 아니라 같은 정온동물인 포유류와 조류 모두 지구촌의 폭염 증가로 생존에 위기를 맞고 있다. 한편 식물은 종에 따라 폭염의 영향력이 큰 차이를 보인다.
정온동물은 말 그대로 심부 체온을 좁은 범위 안에서 유지해야 한다. 열역학의 관점에서 체온과 주변 온도가 같으면 열적 평형을 이룰 것 같지만 주위가 36도면 꽤 덥게 느껴진다. 대사활동을 하면 몸에서 열이 발생하는데, 온도 기울기가 낮아 몸 밖으로 흩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옷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20~25도가 쉬고 있을 때 쾌적한 '열적 평형 온도'인 이유다. 옷을 벗고 있어도 30도가 넘어가면 열이 잘 빠져나가지 못하고 이번 북미 서부 폭염처럼 40도가 넘으면 오히려 열이 들어온다. 이런 상황이 되면 우리 몸은 두 번째 전략을 쓴다. 바로 땀을 분비하는 것이다.
피부로 나온 땀이 증발할 때 기화열을 빼가면서 체온이 내려간다. 물은 기화열이 큰 분자로 40도에서 1몰당 4만3000줄(J)에 이른다. 물(H2O) 1몰은 18g이다. 체온을 1도 올리는데 필요한 에너지가 1g 당 3.6J이므로 대략 땀 100g을 분비해 기화시키면 체온을 1도 낮출 수 있다. 여름에는 이보다 훨씬 많은 땀을 흘린다. 어찌 보면 우리 몸은 개방형 냉장고(36도로 유지하는)와 흡사하다. 냉매(땀)가 기화해 흩어지면 컴프레서로 응축해 다시 쓰는 대신 물을 마셔 새 냉매를 채워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습도다. 습도가 낮으면 땀이 올라오자마자 증발해 위의 공식이 그대로 적용된다. 이때 우리는 땀을 흘리는지도 잘 모른다. 사막에서 경험하는 현상이다. 반면 습도가 높으면 공기에서 피부의 땀방울로 응결하는 물분자(이때 기화열만큼의 열이 더해진다)가 땀방울에서 증발하는 물분자를 상쇄한다. 피부에서는 계속 땀을 분비하므로 땀방울이 커져 액체 상태로 흘러내린다. 땀의 기화열로 인한 냉각 효율이 뚝 떨어진다는 말이다. 습할수록 선풍기 바람이 미지근한 것도 같은 이유다.
따라서 우리가 견딜 수 있는 온도의 상한은 습도에 따라 다를 것이다. 논문에는 이와 관련된 여러 연구 결과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국제생기상학학회에서 만든 건강기후지수(UTCI)다. 온도와 습도, 풍속, 일조량 등 여러 변수를 고려해 쾌적함을 느끼는 범위와 약간, 강한, 아주 강한, 치명적인 같은 네 단계 더위 스트레스 범위를 산출했다.
이에 따르면 사람들은 17~24도에서 쾌적하다고 느낀다. 봄가을을 떠올리면 수긍이 가는 범위다. 약간 덥다는 느낌이 드는 온도는 습도가 낮을 때가 27도, 습도가 높을 때가 23도 내외다. 습도가 중간일 때 32도를 넘어가면 강한 스트레스를 받고 36도를 넘어가면 아주 강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40도가 넘어가면 더위로 죽을 수도 있다.
막상 그래프를 보면 습도의 영향이 생각보다 작게 느껴진다. 건강한 성인 남성을 대상으로 조건 변화에 따른 각종 생리적 지표를 종합해 산출한 결과라서 그럴까. 다만 스트레스 단계가 올라갈수록 습도의 영향이 약간씩 더 커지기는 한다. 치명적인 스트레스의 경우 습도에 따라 온도 차이가 꽤 난다. 그런데 도표에 습도에 꽤 민감한 점선 그래프가 보인다. 알고 보니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 데이터를 종합해 산출한 ‘치명적 온도 경계’ 곡선이다. 이에 따르면 습도가 아주 높을 경우 32도만 넘어도 치명적인 결과가 날 수 있고 습도가 극단적으로 낮으면 50도에서야 치명적인 온도가 된다. 실제 데이터를 바탕으로 나온 결과라서 그런지 이쪽이 더 그럴듯해 보인다.
저자들은 더위로 죽는 사람 대다수가 5세 미만 아이나 노인,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측정한 결과인 UTCI에서는 2단계인 강한 스트레스 수준의 온도라도 습도가 높을 때는 노약자들에게 치명적인 온도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데이터는 지난 2017년 학술지 ‘네이처 기후 변화’에 실린 논문에 나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1980년부터 2014년까지 36개 나라 164개 도시에서 발생한 783건의 폭염과 그에 따른 사망자 발생 상황을 분석해 이런 그래프를 얻었다. 논문에 따르면 2000년(1995~2005년 평균) 이미 육지 면적의 13%와 세계 인구의 31%가 1년에 20일 이상 치명적인 폭염 상태에 놓여있다. 지도를 보면 우리나라는 포함돼 있지 않다.
이상, 출처; 동아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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