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향해 분노를 품는 것은 그 사람이 죽기를 바라면서 스스로 독을 마시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타인이 망하길 바라며 분노를 뿜어내지만, 밖으로만 향하는 줄 알았던 분노는 사실 내 안으로도 파고들어 나를 먼저 망가트려 버린다는 뜻이다. 미움과 분노 뿐 아니라 질투와 시기 같은 대부분의 악의는 타인을 해하려는 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나를 해하고 만다.
내가 던진 돌에 내가 맞는다
연예인나 유명인 등 선망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질투와 시기, 비방의 표적이 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심지어 기부를 했다는 뉴스에도 착한 척 한다거나 (한 푼도 기부하지 않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로 큰 액수도 아닌데 생색낸다는 등의 공격적인 댓글들이 달린다. 눈 앞에서 웃고 있는 사람이 가정폭력이나 각종 범죄의 피해자일 수 있다는 말처럼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사연과 아픔을 안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단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화려하다고 해서 멋대로 저 사람은 아무런 어려움 없이 쉬운 인생을 살아간다고 단정짓고 질투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나는 이렇게 힘들게 사는데 내가 보기에 너는 너무 쉽게 살아간다며, 그들이 내 모든 불행의 원인인양 애꿎은 사람들에게 독을 뿜어내기도 한다. 때로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추락하는 것을 보고 싶어서 거짓말로 모함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는다.
내 문제의 진짜 원인은 다른 곳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잘못 굴절된 분노를 내뿜으면 일단은 속이 후련해짐을 느낀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다. 다른 감정들과 달리 분노와 악의는 뿜어내면 뿜어낼수록 해소되기보다는 더 강해지는 특성이 있다. 화를 내다보니 점점 더 화가나는 경험을 한 적이 있지 않은가? 부정적 감정들 중에서도 화는 특히 문제의 원인을 내가 어디에 돌리느냐, 즉 나의 ‘해석’에 의해 결정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누군가 내게 똑같은 실수를 해도 ‘그럴 수도 있지’라고 넘어가면 화가나지 않는 반면 ‘저게 나를 무시해서 일부러 저랬다’라고 생각하면 길길이 날뛰게 되는 것이 사람이다. 화에 대한 오래된 실험 중 심장을 빨리 뛰게 하는 약물을 주고 혼자 있게 하거나 또는 다소 실례가 되는 발언을 하는 사람과 함께 있게 한 후 사람들의 반응을 관찰한 실험이 있다. 똑같이 심장이 빠르게 뛰었지만 혼자 있었던 사람들은 마음이 조금 불안한거 같다는 모호한 반응을 보인 반면, 옆에 비난할만한 타겟이 있었던 사람들은 바로 저 사람의 무례함 때문에 내가 화가났다고 해석하며 크게 분노하는 모습을 보였다. 화가 작용하는 방식은 꽤나 주먹구구식이어서, 때마침 돌을 들고 있었는데 누군가 지나간다면 일단 돌을 던지고 그 사람이 나로 하여금 돌을 던지게 만든 원인이라고 믿는 식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먼저 돌을 집어든 사람은 나다. 따라서 돌을 내려 놓는다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도 바로 나다.
이렇게 한 번 어떤 사람을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화를 내고 나면, 그 감정을 다시 나의 해석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이용하며 생각하면 할수록 더 괘씸하고 더 화가나게 된다. 반대로 화를 낼수록 차분해지는 현상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화가 라이프스타일이 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분노와 악의를 뿜기로 결정하고 나면 한 번만 하고 그치게 되기보다 분노와 악의에 가득찬 인생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타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들 감정은 강렬한 만큼 우리의 몸과 마음에 미치는 영향도 커서 심혈관 질환 발생률을 높이고 행복도를 크게 낮춘다는 발견들이 있었다.
질투와 시기가 앗아가는 것
질투와 시기도 마찬가지다.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의 심리학자 안나 벨러(Anna Behler) 등에 의하면 질투의 반댓말은 ‘감사’다. 감사는 내가 가진 것들을 떠올리며 생겨나는 감정인 반면 질투는 누군가를 보며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생각할 때 튀어나오는 분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내 시기의 대상 역시 가진 것 못지 않게 가지지 못한 것들이 있을 텐데 가진 것만 바라보고는 성급히 ‘다 가졌네’라고 판단할 때 생기는 감정이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 내게 부족한 것을 떠올리고 반대로 나보다 더 많은 걸 가진 듯 보이는 누군가를 향해 적개심을 품고나면, 상관 없는 타인들을 향해 적개심을 품는 것도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시기심은 내 눈을 가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나보다 편하게 사는 것 같고 내가 제일 불행하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 결과 남들도 나만큼 불행해지거나 또는 다른 사람들 것을 빼앗아 내 것을 채우는 것이 공정하다는 보상심리 또는 이기심을 불러온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는 인생 편하게 사는 존재로 인식되고, 부러움과 시기의 대상일 가능성은 물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란 없으며 사람들은 다 나름의 결핍과 부족함을 짊어지고 산다. 내게는 없지만 저 사람에게는 있는 것, 또 반대로 저 사람에게는 없지만 내게는 있는 것을 찾자면 무한히 찾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항상 내가 가지지 못한 것만 커 보이고 아파보인다는 게 문제다. 이 때문에 비슷하게 아픈 인생을 힘겹게 살아가면서도 서로 힘을 보태기보다 너도 망해보라며 서로를 공격하는 일들이 발생하는 것인가 보다.
고전적인 윤리적 딜레마 중 트롤리 문제라는 것이 있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기차가 선로를 질주하고 있는데 이 때 한 명을 기차 아래로 깔아 브레이크로 삼으면 이후 더 많은 사람이 죽는 상황을 방지할 수 있다. 이 때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를 묻는 문제다. 하지만 최근에는 변형된 트롤리 문제가 등장했다. 선로에 사람들이 나열되어 묶여 있는 상황에서 이미 여러 사람들이 기차에 깔려 죽고 말았다. 이 때 아직 기차가 도달하지 않은 선로에서 사람들을 대피시키면 그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 당연히 나머지 사람들을 살려야지 이게 무슨 윤리적 딜레마를 일으키나 싶다. 하지만 남은 사람들을 살리면 이미 기차에 치여 죽은 사람들에게 불공평한 일이 된다며 따라서 모두가 다 죽게 내버려 둬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억울한 물귀신 정서라고나 할까.
이렇게 내 고통만을 바라보면 세상 모든 사람들을 해하는 파괴적인 존재가 되어버리기 쉽다. 결국 타인의 고통을 함께 바라보고, 또 내가 가지지 못한 것 못지 않게 가지고 있는 것들도 함께 균형있게 바라보는 시각이 나와 타인을 살리며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동력이 아닌가 싶다.
이상, 출처; 동아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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