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물리학상은 지난 120년 동안 단지 4명의 여성 수상자만을 배출했다. 올해 블랙홀을 증명해낸 공로를 인정받아 공동 수상한 앤드리아 게즈(Andrea Ghez)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UCLA) 교수까지 포함한 숫자다. 이쯤 되면 초대 여성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마리 퀴리(Marie Curie, 1867~1934)가 남긴 공로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볼 만하다. 마리 퀴리는 1903년 여성 최초 물리학상 수상자일 뿐 아니라 1911년 최초로 여성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이게 끝이 아니다. 그의 남편과 딸, 사위까지 모두 노벨 과학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노벨 과학상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다. 이들의 중심에는 마리 퀴리가 있었다.
전무후무한 노벨상 수상자, 마리 퀴리
폴란드 출신의 과학자 마리 퀴리(Marie Curie)는 박사 학위 주제를 찾던 중 프랑스 물리학자 앙투안 앙리 베크렐(Antoine Henri Becquerel, 1852~1908)의 우라늄의 성질에 대한 논문에 매료되어 연구를 시작했다. 앙리 베크렐은 우라늄이 외부의 작용 없이 광선을 발한다고 기록했으나 그 작동 원리에 대해서는 증명하지 못했다. 하지만 마리 퀴리는 앙리 베크렐의 연구를 더욱 심층적으로 파고들기 시작했고 이후 마리 퀴리의 연구에 대한 열정은 그녀의 남편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남편 피에르는 마리의 연구에 함께 참여하게 되었고, 퀴리 부부는 1897년도에 ‘토륨도 우라늄과 같은 방식으로 방사능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이들은 ‘역청 우라늄광에 함유되어 있는 새로운 방사 물질에 대해서’라는 보고서를 1989년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 소식지에 공표하는 성과를 거둔다. 이들은 역청 우라늄광 안에는 폴로늄 외에도 또 다른 요소가 있을 것이라고 봤다. 그리고 1898년 12월 두 번째 논문에서 이 물질을 ‘라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 1902년에는 0.1g의 염화라듐을 추출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1903년 라듐과 폴로늄을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아 앙리 베크렐, 피에르 퀴리, 마리 퀴리에게 노벨 물리학상이 공동 수상됐지만 후 당시 학계와 여론은 매우 좋지 않았다. 마리의 수상이 남편 덕이라는 부정적인 의견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리 퀴리는 이러한 불리한 여건에 굴하지 않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남편 피에르 퀴리 또한 부인 마리 퀴리의 연구 공적을 높게 평가하고 노벨상의 공로가 마리 퀴리 덕분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남편 피에르 퀴리(Pierre Curie, 1859~1906)가 노벨상 수상 후 마차 사고로 사망하고 나서도 연구는 중단 없이 계속됐다. 그 결과 1911년 마리 퀴리는 노벨 화학상까지 거머쥐게 된다.
남편, 부인, 딸, 사위들까지… 노벨상 수상
마리 퀴리에 뒤를 이은 이들은 딸과 사위다. 퀴리의 딸 이렌 졸리오 퀴리(Irène Joliot-Curie, 1897~1956)는 남편 프레데릭 졸리오(Frédéric Joliot-Curie, 1900~1958)와 함께 방사성 물질 연구로 1935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남편과 부인, 딸과 사위까지 노벨 과학상을 수상했으니 역사상 최고의 노벨 과학상 명문가라 하겠다. 훗날 둘째 딸인 이브 퀴리(Ève Curie)의 남편 헨리 라부이스(Henry R. Labouisse)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해 퀴리가는 역사상 최대 노벨 수상자를 배출한 가문이 됐다.
이렌은 어릴 때부터 마리 퀴리와 함께 했다. 마리 퀴리가 1914년 전쟁 중 트럭에 X-레이 시설을 탑재한 이동식 방사선 검사반을 만들어 군인들의 부상을 치료하는 여정에도 동행했다. 퀴리의 X-레이 기계는 부상자들의 총알과 포탄이 어디에 박혔는지 찾아낼 수 있어 수많은 생명을 구하는데 큰 도움을 줬다. 이렌은 이런 어머니를 보고 배우며 라듐 연구에도 동참한다. 그는 마리의 지도 아래 폴로늄의 알파선을 연구하며 박사 학위를 받는다. 이렌의 동반자가 된 프레데릭 졸리오는 마리 퀴리의 제자이자 이렌의 연구소 동료였다. 마리 퀴리가 방사선으로 인해 시력을 잃고 건강이 안 좋아지자 이들 부부는 마리 퀴리의 뒤를 이어 라듐 연구에 몰두한다.
1934년 이렌과 프레데릭은 인공 방사능을 발견했고 이들은 그 업적으로 인정받아 이듬해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다. 하지만 마리 퀴리는 방사능 연구 후유증으로 인해 66세의 나이에 백혈병으로 생을 마감하고, 이후 1956년 이렌도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들이 끔찍한 방사능 후유증을 겪고 끝내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까지 연구한 라듐과 폴로늄으로 인해 인류는 방사선, 화학 분야, 핵에너지 사용과 관계된 다양한 응용 및 방사선 원소를 이용한 치료는 물론 원자력 에너지로 편안한 현대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됐다. 모두 마리 퀴리가 척박한 현실 속에서 싹 틔운 소중한 과학의 결실인 셈이다.
이상, 출처; 사이언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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