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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 결합 이야기

BK(우정) 2020. 10. 4. 16:42

화학결합의 원리는 150억 년 우주의 역사를 통해 지켜져 내려온 자연의 기본적인 원리다. "이 원리는 서로 가까이 다가설 수 없던 "원자핵"들이 서로 손을 잡게된 이유와 물질 세계에 놀라운 다양성이 존재하게 된 배경을 제공해준다."

 

여기 빨간색 당구공이 두 개 있다. 이 당구공에는 +1이라는 번호가 쓰여있다. 이 당구공은 보통 당구공과는 달리 좀 가까워지기만 하면 서로 눈을 흘기고 다시는 안 볼 듯이 홱 돌아서 버리는 별난 당구공이다. 이 당구공 두개를 당구대 위에 올려놓자 어쩌다 한눈을 파는 사이에 좀 가까워지면 큰 일이라도 난 듯이 상대를 밀어붙인다. 어느 한 쪽만 그런 게 아니라 이리 저리 밀려다니다 보면 당구대 벽에 부딪쳐서 튀어나오고 그러다가 다시 가까워지면 또 밀려나는 일이 끝없이 반복된다. 당구대 위로 파리가 두 마리 날아든다. 등에 -1 번호를 붙인 파리들은 처음에는 제각기 당구공을 하나씩 찾아서 그 주위를 맴도는 듯 보인다. 그런데 얼마 있다 보니 정신없이 돌아다니던 당구공 둘이 사이좋게 짝을 지어 다니는 게 아닌가. 이게 웬일인가 싶어서 들여다보니 두 마리의 파리가 당구공 사이에 끼여들어서 서로 눈을 흘기는 당구공 둘을 일정한 거리에 붙잡아 주고 있는 것이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소인국의 손가락 만한 사람이 자기 체중의 천 배도 넘는 걸리버를 손가락 끝으로 움직이는 격이다. 걸리버가 소인을 꼼짝 못하게 붙잡아둔다면 모를까 이건 말도 안 된다. 그런데 바로 옆의 당구대에서는 더 납득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여기에는 두 개의 당구공 이외에 커다란 볼링공이 한 개 있는데 옆 당구대에서와 마찬가지로 당구공 둘은 서로 밀치고 벽에 부딪치면서 정신없이 돌아다닌다. 볼링공은 제 체중을 못 가누는지 동작이 느리다. 당구공은 아예 눈에 쌍심지를 켠 볼링공에는 접근할 엄두도 못 내고 멀리 피해 다닌다. 그런데 어디서 파리들이 날아들자 상황이 급변한다. 파리들이 저보다 천 배 만 배나 무거운 당구공과 볼링공을 실에 구슬 꿰듯 묶어내는 것이 아닌가.

 

양성자와 전자의 타협

 

실제로 원자에서 일어나는 일은 이보다 훨씬 더 상상을 초월한다. 강남역과 광화문 거리 정도 떨어져 있는 두 개의 당구공이 있다. 그 사이의 넓은 공간에서 윙윙거리며 날고 있는 두 마리의 파리가 당구공을 붙잡고 있는 상황이 수소 분자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연에는 색깔과 크기가 제각기 다른 1백가지 정도의 공들이 있는데 단 한 종류의 파리가 이들을 어떤 규칙에 따라 붙잡아주고 있다. 이런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나는 기본 원리가 바로 우리 주위의 물질 세계가 놀라운 규칙성을 가지고 지금과 같은 모습을 지켜나가는 배경이다. 그 원리를 이야기하기 위해 지금부터 약 1백50억 년 전 빅뱅이라고 부르는 거대한 폭발이 이뤄진 시기로 돌아가 보자.

 

빅뱅의 순간에 -1의 전하를 가진 가벼운, 그리고 나중에 인간이 전자라고 이름 붙인 입자가 생겨난다. 여기서 파리로 묘사한 입자다. 빅뱅의 순간에는 또 나중에 쿼크라고 불리게 될 입자도 생겨난다. 그리고 +2/3의 전하를 가진 쿼크 두개와 -1/3의 전하를 가진 쿼크 한 개가 모여서 +1의 전하를 가진 양성자가 생겨난다. 전자가 파리만큼 무겁다면 양성자는 당구공 정도의 무게를 가진다. 우주의 나이가 30만년쯤 돼 양성자와 전자가 만나 수소 원자를 만들 때 둘 사이에 이상한 쑥덕공론이 오간다. 양성자가 전자더러 "네가 내 밑에 있는 한은 내가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한다. 나는 내 부하가 혼자 다니는 것은 불안해서 못 본다. 반드시 네 짝을 찾아 둘이 붙어 다니도록 해라"하고 엄명을 내린 것이다. 그러자 전자가 양성자더러 "좋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형님께 딸린 것처럼 제 짝도 자기 보스가 있을 게 아닙니까? 그러니 제가 짝을 데려오다 보면 형님이 보기 싫은 녀석이 따라올지도 모릅니다. 그 점은 양해를 해주셔야 하겠습니다"라며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이야기한다. 그러자 양성자도 그것은 어쩔 수 없겠다 싶은지 "좋다. 단지 그 녀석과 적당한 거리만은 유지하도록 네가 신경을 써주어야겠다"고 타협안을 제시한다. 그런데 이처럼 전자가 제 짝을 찾아와서 양성자 보스에게 신고를 하고 있는 사이에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데려온 친구도 제 보스에게 똑같은 신고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이 두 양성자는 제 부하가 데리고 온 친구가 자신이 경계하고 있는 상대의 부하인 줄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뭇 흡족한 표정이다.

 

맏형 수소에게서 배운 결합원리

 

가벼운 전자는 무겁고 서로 반발하는 양성자 둘을 붙잡아서 자연에서 가장 간단한 분자인 수소 분자(H2)를 만든다. 우주 전체를 놓고 보면 자연에 존재하는 약 1백 가지의 원소 중에서 수소와 헬륨이 99% 이상을 차지한다. 질량비로 수소는 전체의 약 4분의 3을, 헬륨은 약 4분의 1을 차지한다. 그 다음으로 많은 산소, 탄소, 질소 등은 다 합해도 1%가 안 된다. 결국 수소가 우주 공간에서 제일 풍부한 분자가 된다. 후일 사람들은 어떻게 가벼운 전자가 자기보다 거의 2천 배나 무거운 양성자 둘을 붙잡아 줄 수 있을까 신기하게 여기면서 이를 공유결합이라 부른다. 이와 같은 공유결합은 대부분의 화합물에서 발견되는 가장 보편적인 화학결합의 원리다.

 

우주의 나이가 10억 년 정도 되면 은하계가 생겨나고, 수십 억 년에 걸쳐 별들의 내부에서 핵융합 반응에 의해 생명에 필수적인 탄소, 질소, 산소, 인등의 원자핵이 생겨난다. 그런데 이들은 각각 원자번호대로 6, 7, 8, 15의 양전하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들이 훗날 별의 내부를 벗어나 지구상에서 다시 만나 생명의 화합물을 만들려고 한다면 심각한 문제에 부닥칠 것이 뻔하다. 양전하들 사이의 반발력 때문에 도무지 접근이 어려울 테니 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자연은 우선 원자핵들로 하여금 양성자 수와 같은 수의 전자를 만나 중성 원자를 만들도록 했다. 일단 반발을 무마시킨 중성 원자들이 만나면 우주 초기부터 수소가 터득했던 전자 공유의 원리에 의해 다양한 화합물들이 생겨난다. 공유결합은 두 개의 수소 원자를 한 개의 산소 원자에 엮어서 자연에서 가장 귀중한 화합물이라고 볼 수 있는 물을 만든다. 수소, 산소의 거리와 두 개 결합 사이의 각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서 물로 하여금 생명을 태동하고 유지하는데 필요한 모든 성질을 지니도록 하면서 말이다. 수소나 물분자뿐만 아니라 우리 몸 속의 복잡한 화합물도 또한 태양계의 끝에서 지구로 찾아드는 혜성의 꼬리에서 발견되는 화합물도 마찬가지로 화학결합의 원리를 따른다.

 

몸이 원자로 흩어지지 않은 이유

 

다시 제일 간단한 수소 분자로 돌아가 보자. 이기적인 인간들의 세계에서라면 하나의 수소 원자는 다른 수소 원자에서 전자를 하나 빼앗아서 전자가 두 개 있어야 안정하다고 하는 양자역학적 원리를 만족시키고자 할 것 같다. 그렇다면 다른 수소는 발가벗은 양성자가 되고 말 것이다. 자연에서 가장 풍부한 원소인 수소의 절반이 불만인 상태라면 온전한 세상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자연에는 내어주되 가지고 있고, 가지고 있으되 내어주는 절묘한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의 원리가 지배하고 있다. 옛날 우애 좋은 형제가 살았는데 추수를 끝낸 날 밤중에 동생은 형 집으로 볏짐을 지어 나르고 형은 동생 집으로 볏짐을 지어 나른 것과 다름이 없다. 결국 소출 전체는 늘어난 것이 없는데도 형제는 모두 뿌듯한 가슴을 안고 잠이 들었던 것과 같다.

 

이런 공생의 원리는 우리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거의 모든 물질에 적용된다. 공유결합의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다면 체중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물은 물론이고, 근육과 효소를 만드는 단백질, 에너지를 저장하는 탄수화물과 지방질, 유전 정보를 저장하는 핵산은 모두 하나 하나의 원자로 흩어지고 말 것이다. 우리 몸에는 10^28개 정도의 원자가 들어있다. 이만한 개수의 원자를 풀어놓는다면 향수 냄새가 퍼져나가듯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우리 몸에 들어있는 원자의 개수는 우주 전체 별 수의 백만 배나 된다. 이렇게 많은 원자들이 전자를 공유하면서 우리 몸을 유지한다는 것은 생각할수록 신기한 노릇이다. 우주의 초기에 똑같은 원리에 의해 수소 분자가 생겨났던 것을 생각해 보면 우리의 존재 이유인 화학결합의 원리는 1백50억년 우주의 역사를 통해 지켜져 내려온 자연의 기본적인 원리다. 이 화학결합의 원리는 우주의 초기에 양성자와 전자가 막 생겨났을 때, 그러니까 아직 제일 간단한 수소 원자가 생기기 이전에 이미 물질 세계의 기본 원리로 깊이 각인 되어 있었던 것이다. 종이와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이니까 자연의 마음에 새겼다고 해야 할까. 마음은 물질이라는 바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화학결합의 종류

 

생명체나 물질세계를 이루는 분자는 각 원소들의 고유한 개성에 따라 공유결합, 이온결합, 금속결합의 길을 택한다. 각각은 어떤 특성을 보이는지 살펴보자.

  • 공유결합
    수소 분자(H2)와 같이 두개의 원자가 각각 전자를 하나씩 내놓고 이 전자쌍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것을 공유결합이라 부른다. 원소들은 전자에 대한 소유욕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공유결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1. 무극성 공유결합
      수소(H2), 염소(Cl2)와 같은 분자나 유기화합물의 탄소-탄소 결합(C-C)에서와 같이 두 개의 원자가 같은 경우에는 어느 한 쪽으로 전자가 치우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전자쌍은 두 개의 원자에게 공평히 공유된다. 결과적으로 결합은 극성을 가지지 않는다.
    2. 극성 공유결합
      염화수소(HCl)나 유기화합물의 탄소-산소 결합(C-O)에서와 같이 두 개의 원자가 다른 원소인 경우에는 전자에 대한 소유욕이 강한(전기음성도가 높은) 쪽으로 전자가 치우친다. 이때 결합은 극성을 가진다고 말한다. 물론 다른 종류의 원소가 만드는 결합의 경우수가 많기 때문에 자연에는 극성 공유결합이 무극성 공유결합보다 훨씬 더 많다. 뿐만 아니라 모든 원소는 전기음성도가 조금씩 차이가 나기 때문에 공유결합은 많은 다양성을 나타낸다. 공유결합의 다양성이 없다면 생명을 포함해서 우리 주위의 물질 세계에서 다양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모든 꽃은 다 빨간색이라든지 모든 과일의 맛이 다 같다면 어떨까. 탄소-수소 결합(C-H)에서와 같이 전기음성도 차이가 아주 작으면 실제로는 무극성 공유 결합으로도 볼 수 있다.
  • 이온결합
    염화나트륨(NaCl)에서와 같이 전기음성도 차이가 아주 크면 전자는 염소 쪽으로 치우쳤다기보다는 나트륨이 염소에게 전자를 아예 주어버렸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극성 공유결합의 극단적인 경우를 이온결합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러한 이기적-이타적인 주고받음을 통해서 염소, 나트륨 모두 만족한 상태가 된다는 점이다. 주기율표의 왼쪽 끝에 있는 알칼리족(나트륨, 칼륨 등), 알칼리토족(마그네슘, 칼슘 등) 원소들은 전자를 처치하지 못해 안달이고, 오른쪽에 있는 할로겐족(불소, 염소 등) 원소들은 전자가 모자라 안달이므로 양쪽이 만나면 격렬하게 반응해 이온결합을 이룬다.

 

  • 금속결합
    수소에 아주 높은 압력을 가해서 수소 원자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상황이 되면 어느 두 개의 수소 원자 사이에 공유결합이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려워진다. 모든 수소 원자는 전자 한 개를 내놓고 이 전자의 풀을 모두가 공유하는 공동체 집단이 이뤄진다. 전자 한 개를 처치해버리고 싶어하는 나트륨의 집단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이 때 수소나 나트륨이 내어놓은 전자들은 어느 특정한 원자에 소속되지 않았으므로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열과 전기를 통한다. 이러한 소위 자유전자가 없다면 수소나 나트륨의 양이온들은 서로 반발해서 흩어지고 말 것이다. 따라서 자유전자가 이들 양이온을 붙잡아주는 결합을 금속 결합이라고 한다. 수소도 높은 압력 하에서는 금속성을 띤다는 말이다.

 

이상, 출처; 과학 동아, 2000년 3월호

chemlab.snu.ac.kr/zbxe/?mid=bo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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