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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 어렵지만... 그래도~

BK(우정) 2020. 9. 7. 18:32

양자도약을 예측하다! - 양자역학의 입문과 현재까지

양자역학... 과연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양자역학의 대가이자 QED 이론을 설립한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양자역학을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 양자역학으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그조차도 양자역학을 이해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렇다는 점에서 양자역학을 무엇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아니 무엇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 걸까? 오늘 여러분에게 들려줄 이야기는 양자역학의 시작부터 양자역학 중 아주 작은 부분인 양자도약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양자역학의 시작과 불확정성 원리(Uncertain Principle)

양자역학이 시작되기 전, 물리학자들은 원자모형이 어떻게 생겼는지 열띤 토론을 했다. 이에 대한 답으로 닐스 보어(Niles Bohr)는 전자가 있는 오비탈(oribital)이 있고 전자는 이를 따라서 운동한다고 했다. 또한 여기서 전자들이 다른 에너지 준위를 가지고 있는 오비탈로 양자도약을 할 때 위치에너지 차이가 빛에너지로 나온다고 주장했다.

 

보어의 원자 모형

 

보어의 원자모형은 굉장히 획기적이었다. 하지만 이를 반박할 사람이 등장한다. 그는 바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이다. 1924년 가을, 하이젠베르크는 당대 물리학계에서 가장 유명한 연구소인 닐스보어연구소의 초청을 받았다. 1920~1930년대에는 닐스보어연구소는 그야말로 물리학계의 심장이었다. 하이젠베르크도 패기 넘치는 젊은 과학자 그룹의 일원이 되어, 닐스보어연구소에서 인생에서 가장 충실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하이젠베르크가 닐스보어연구소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보어가 괴팅겐 대학교에서 강의할 때 보어의 원자 모델에 날카롭게 질문을 던진 대학교 2학년생인 하이젠베르크를 눈여겨봤기 때문이다. 닐스보어연구소에 온 하이젠베르크는 원자모형에 매달렸다.

 

보어의 원자모형는 한계가 많았다. 도대체 왜 전자가 궤도를 따라 도는지, 그리고 궤도를 따라 돌던 원자가 왜 갑자기 다른 궤도로 이동하는지, 원자모형을 만든 보어조차도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이를 본 하이젠베르크는 생각했다. 원자 속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에 그는 원자를 선 스펙트럼의 진동수와 세기, 이 두 가지 눈에 보이는 변수로 설명해야 하지 않을까. 그는 과감한 선택을 한다. 그는 보어의 원자모형에서 자주 거슬렸던 궤도를 지워버렸다. 오로지 확인이 가능한 선 스펙트럼의 진동수와 세기만 붙잡았다. 그 후 계속 진전이 없는 연구를 위해 휴양차 독일의 헬고란트 섬으로 떠났다. 헬고란트의 어느 밤, 하이젠베르크는 깨달았다. 이런 원자모형을 계산하려면 완전히 새로운 수학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1952년 하이젠베르크는 다시 독일의 괴팅겐대학교으로 돌아갔다. 거기서 지도교수 막스 보른(Max Born)에게 행렬 수학이라는 것을 들은 후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의 곱하는 순서가 행렬과 같이 매우 중요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를 통해서 원자 속 전자의 진동수와 세기를 계산할 수 있는 공식을 만들어냈고 이는 원자에서 나오는 빛의 선스펙트럼을 풀 때 딱 맞아떨어졌다. 1926년 봄 하이젠베르크의 공식과 행렬역학은 곧바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그는 불확정성 원리(Uncertain Principle)을 주장한다. 이는 어떤 물체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이며 위치의 불확정성과 운동량의 불확정성은 아래 부등식을 만족한다는 것이다.

 

하이젠배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이 세계에서 원자를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빛을 비춰서 보면 된다. 원자 안에 우선 약한 빛, 파장이 긴 빛을 비춰보자. 전자의 운동량엔 큰 변화가 없어서 파악할 수는 있는데 전자의 위치는 희미하다. 센 빛을 쏘이면 전자는 선명히 보이지만 센 빛 때문에 운동량이 변한다. 전자의 위치는 알 수 있지만 운동량은 측정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위의 부등식의 의미이다. 즉, 그는 보어의 원자모형의 궤도를 없앤 전자구름 모형을 만들었고 이는 코펜하겐 학파가 인정하는 원자모형이 된다.

 

하이젠베르크의 전자구름 모형

 

이는 에너지와 시간에도 적용된다. 그는 이 불확정성 원리와 양자역학을 창시한 업적을 인정받아 31세의 어린 나이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다.

 

슈뢰딩거의 방정식과 슈뢰딩거의 고양이

하이젠베르크와 보어가 합심하여 코펜하겐학파가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 동안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ödinger)가 등장한다. 1926년, 아인슈타인과 하이젠베르크의 전쟁에 기름을 붓는 논문이 발표되었다. 이 논문은 슈뢰딩거의 논문이었는데 이것 역시 원자에 관한 논문이었다. 그의 논문은 아인슈타인을 포함한 당대 물리학자들이 매우 좋아했다. 하이젠베르크의 논문은 고전물리학의 전제를 무시하고 계산 또한 엄청나게 복잡했다. 하지만 슈뢰딩거의 논문은 계산도 간단하고 고전물리학 체계 안에 있었다. 슈뢰딩거는 하이젠베르크의 전자궤도가 지워져버린 원자모형에서 전자를 다시 궤도 위에 올려놓았다. 그의 논문에서는 전자의 궤도를 방정식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게다가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처럼 답이 딱딱 맞았다. 과정은 반대이였으나 결과가 같았다.

 

슈뢰딩거는 아인슈타인이 극찬한 논문을 보고 아래의 파동방정식들을 생각해냈다. 그 논문은 아인슈타인 빛 이론을 물질에까지 확장시킨 것으로 그 논문의 내용은 그에게 매우 충격적이었다. 그 논문은 내용은 당연히 입자인 줄로만 알았던 전자가 입자의 성질뿐 아니라 동시에 파동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물리학계에서는 빛이 파동이냐 입자이냐를 놓고 격론을 벌인 끝에 빛이 파동의 성질을 가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가 다시 아인슈타인에 의해 입자의 성질도 있는 것으로 결론이 나 있었다. 그런데 입자였던 전자도 파동의 성질을 갖는다는 것이다. 전자는 이른바 물질파였다. 입자성과 파동성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 슈뢰딩거는 이에 전자가 각자의 궤도에 정확하게 맞는 정상파 위에서 움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래는 각각 시간종속형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과 시간독립형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이다.

 

시간 독립형 슈뢰딩거의 파동 방정식

 

시간 종속형 슈뢰딩거의 파동 방정식

 

슈뢰딩거는 스위스의 아로사를 여행할 때 이 파동방정식을 완성했다. 그 여행은 슈뢰딩거에게 많은 영감을 불러일으킨 여행이었다. 당시 슈뢰딩거는 원자 내에서 전자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완벽한 공식은 대자연처럼 아름다우며 간결하고 쉬워야 한다. 어쩌면 슈뢰딩거는 대자연을 보며 수학적으로 완벽한 것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대자연의 완벽함처럼 슈뢰딩거의 방정식도 끊어진 데 없이 완벽한 원자를 설명하고 있었다. 슈뢰딩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수학적으로 완벽하고 계산이 간결하며 전자의 행동 방침이 어떤지 우리는 마음으로

그릴 수 있다.”

 

이후 보어는 슈뢰딩거가 어떻게 하이젠베르크와의 정반대의 방법으로 같은 답을 얻었는지 듣고 싶었다. 슈뢰딩거는 보어에게 의기양양하게 전자의 궤도를 살려놓은 과정을 설명했다. 보어가 던진 모든 질문에 척척 잘 받아냈다. 하지만 보어가 마지막으로 한 질문에는 쉽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전자가 궤도를 뛰어넘는가?”

 

전자를 파동을 보든 입자를 보든 간에 불연속성은 남아 있었다. 슈뢰딩거는 전자의 운동과 파동을 마음속에 그릴 수 있다고 굳게 믿어왔는데 전자는 마음에 그릴 수 있는 그런 운동을 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버리고 말었다. 다시 말해 슈뢰딩거는 하이젠베르크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고야 말았다. 슈뢰딩거는 그날 보어가 던진 마지막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것을 인정했다. 그날 밤 슈뢰딩거는 망연자실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양자도약이 없어지지 않으리라는 걸 미리 알았다면 결코 시작도 하지 않았을 텐데”

 

이후 하이젠베르크가 확신을 갖고 원자의 세계에서 전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관한 연구에 몰두하고 있을 무렵, 하이젠베르크의 지도교수인 보른은 슈뢰딩거가 옳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아낸다. 슈뢰딩거의 파동은 하나의 공간 안에 있다. 보른이 보기에 슈뢰딩거 방정식에 나오는 파동함수 프사이(psi)는 가상적 공간에 존재하는 것이며 실제로 파동을 묘사한 것이 아니었다. 파동함수는 허수를 포함하고 있기에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런데 의미 없는 파동함수를 제곱하니 확률이 나타났다. 보른은 일명 확률 해석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말하자면 입자 하나가 하나의 특정 지점에 확률적으로 존재한다고 확신했다. 즉, 전자는 확률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에 하이젠베르크는 물질파의 수축까지 주장하며 슈뢰딩거의 방정식을 완전히 확률적으로 해석하기에 이른다. 이를 들은 아인슈타인 크게 반발했다. 아니, 이해를 하지 못했다. 이에 그는 보른에게 편지를 쓴다.

 

“신은 주사위게임을 하지 않는다.”

 

슈뢰딩거도 마찬가지였다. 이를 인정하지 할 수 없었다. 자신의 파동방정식을 확률적으로 해석하는 것에 몹시 기분이 언짢아진 슈뢰딩거는 한 가지 역설을 제시했다.

 

“고양이가 방 안에 갇혀있다. 고양이가 갇힌 방에는 독가스가 나오는 장치가 있다.

원자핵이 붕괴되어 방사선이 검출되면 망치가 유리병을 깨고

그 유리병에는 독가스가 있다.

우리는 고양이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고양이는 과연 죽었을까,

아니면 살았을까?”

 

이것이 그 유명한 슈뢰딩거의 고양이이다. 지금 이 순간에는 확률적으로 죽은 상태와 산 상태가 존재한다고 코펜하겐학파는 주장했다. 즉, 그들의 말은 반은 죽어 있고 반을 살아있다는 주장이다. 과연 반은 죽어있고 반은 살아 있는 고양이가 말이 되는가? 실은 필자도 이를 아직까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고, 동의하지 못하고 있다. 당시 아인슈타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았다. 밤하늘에 떠 있는 저 달은 보고 있을 때만 존재하는 것인가? 보고 있지 않으면 확률적으로 존재하는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오늘날에서야 나왔다. 이 사고실험,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양자역학에서 양자중첩과 예측불가능성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사고실험으로 남게 된다.

 

이상, 출처; KOSMOS

www.ksakosmos.com/post/%EC%96%91%EC%9E%90%EB%8F%84%EC%95%BD%EC%9D%84-%EC%98%88%EC%B8%A1%ED%95%98%EB%8B%A4-%EC%96%91%EC%9E%90%EC%97%AD%ED%95%99%EC%9D%98-%EC%9E%85%EB%AC%B8%EA%B3%BC-%ED%98%84%EC%9E%AC%EA%B9%8C%EC%A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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