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신문 경제면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봤다. 2018년 11월 국내 기업 한화가 1억 달러(약 1200억 원)를 투자한 미국 회사 니콜라가 지난 4일 나스닥에 상장되면서 지분(6.13%) 가치가 7억5000만 달러가 됐다는 것이다. 1년 7개월 만에 7.5배가 됐으니 대단한 선견지명이다. 니콜라는 수소트럭과 수소충전소를 만드는 회사로 ‘제2의 테슬라’로 불린다고 한다. 코로나19라는 대형 악재로 유가가 급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테슬라는 연일 최고 주가를 경신하며 기염을 토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국내 출시된 테슬라 ‘모델3’은 전기차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시기의 문제일 뿐 전기차가 엔진차를 대체하는 건 이제 필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여기에 수소차까지 뛰어들고 있다. 수소차는 트럭이나 버스처럼 대형차에 강점이 있기 때문이다. 니콜라는 수소 1회 충전으로 최대 750마일(약 1200킬로미터)을 운행할 수 있는 수소트럭을 2023년부터 양산한다는 계획이다.
아직은 경쟁력 밀려
그럼에도 수소버스나 트럭이 디젤버스나 트럭을 대체하려면 극복해야 할 대상이 있다. 가격 경쟁력이 훨씬 높으면서 환경 측면에서도 별로 뒤지지 않는 천연가스버스와 트럭이다. 예를 들어 서울시가 대기오염을 줄이겠다고 매년 80억 원의 예산을 들여 디젤버스를 바꿀 계획을 세웠다고 하자. 수소버스로 바꾼다면 한 해에 10대에 불과하지만 천연가스버스로 바꾸면 100대나 된다. ‘수소버스 10대 + 디젤버스 90대’ 보다는 ‘천연가스버스 100대’가 배출되는 오염물질이 훨씬 적다. 전시행정이 목표가 아니라면 선택은 분명하다.
물론 전기차가 그랬듯이 수소차도 제조단가가 빠르게 떨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과연 수소에너지가 친환경인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은 남아있다. 연료인 수소분자(H2)는 연소 뒤에도 온실가스(이산화탄소)와 환경오염물질이 전혀 나오지 않는데(산소와 반응하면 물만 나온다) 이게 무슨 소린가. 연소 과정만 보면 당연히 친환경 에너지이지만 문제는 연료인 수소가 어디서 오느냐에 있다. 오늘날 수소의 98%는 천연가스의 주성분인 메탄(CH₄)으로 만드는데, 이 반응에 에너지가 들어갈 뿐 아니라 수소와 함께 이산화탄소가 나온다(CH₄+ 2H₂O → 4H₂ + CO₂).
‘메탄 한 분자에서 수소 네 분자가 나오는데...’ 이런 의문을 갖는 독자도 있겠지만 메탄 한 분자는 탄소-수소(C-H) 결합이 네 개인 반면 수소는 수소-수소(H-H) 결합이 하나다. 메탄 한 분자가 연소할 때 나오는 에너지는 수소 네 분자가 연소할 때 나오는 에너지와 비슷하다. 결국 언제냐의 차이일 뿐 이산화탄소가 나오는 건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물론 수소경제를 밀고 있는 사람들이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모를 리 없다. 그래서 내놓은 대안이 태양광 발전으로 물을 전기분해해 진정한 ‘그린수소’를 생산한다는 계획이다(2H₂O -> 2H₂ + O₂). 이는 수소 연소의 역반응이다. 그런데 여기도 문제가 있다. 태양광 패널과 물의 전기분해 전극 등 설비를 갖추려면 아직은 너무 비싸다. 물론 비용이야 떨어지겠지만 상당한 보조금을 받아야 경쟁력이 있을 것이다.
대신 광촉매로 수소 생산?
농산물도 생산자와 직거래를 하면 소비자가 싸게 살 수 있듯이 빛에너지도 태양광 발전이라는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바로 물을 분해하는데 쓸 수 있다면 좀 더 경쟁력 있는 ‘그린수소’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실제 많은 화학자들은 이런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두 가지 방향이 있다. 먼저 광전기분해(photoelectrolysis)로 빛에너지를 받아 물분자의 수산화이온(OH-)을 산화시켜 산소분자를 만드는 광양극(photoanode)와 여기서 전자를 받아 수소이온(H+)을 환원시켜 수소분자를 만드는 음극(cathode)으로 이뤄져 있다. 광양극이 태양광 패널을 대신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역시 전극 등 설비를 갖추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다른 하나는 광촉매(photocatalysis)로 자연의 광합성과 가까운 메커니즘으로 수소를 만드는 방식이다. 광합성 과정을 보자. 엽록소가 빛을 받아 전자를 뺏기면 여기에 연결돼 있는 산소발생복합체에서 물분자가 산화돼 산소분자와 수소이온으로 바뀌고 전자는 엽록소로 흘러간다. 그 뒤 여러 단계를 거쳐 전자는 NADP+와 H+를 NADPH로 환원시킨다. 따라서 NADPH 대신 수소(H₂)를 만들게 시스템을 살짝 바꾸면 될 것 같다. 그러나 광합성의 물분해 시스템은 너무나 복잡해 상용화 비용으로는 도저히 재현할 수 없다. 따라서 빛에너지로 물을 분해하는 새로운 광촉매를 만들어야 하는데, 빛에너지를 수소로 바꾸는 양자 효율이 10%는 넘어야 경쟁력이 있다.
양자 효율(quantum efficiency)이란 양자이론에 따라 빛을 입자인 광자(photon)로 봤을 때의 에너지 변환 효율이다. 광촉매를 이루는 원소에 묶인 전자가 광자를 흡수해 에너지가 높아지면서 촉매 표면으로 이동하고 여기서 물분자의 수소이온(H+)을 만나 환원시키면서 수소분자가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빛을 흡수해 자유로워진 전자가 모두 수소이온을 환원시키는 데 쓰였다면 양자 효율이 100%다. 따라서 양자 효율 10%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아직 꿈같은 얘기다. 참고로 광합성 과정에서 광자를 흡수한 엽록소의 전자가 NADP+와 H+를 NADPH로 환원시키는 양자 효율은 100%에 가깝다. 광합성이 자연의 경이인 이유다.
광합성에 맞먹는 효율 얻었지만
학술지 ‘네이처’ 5월 28일자에는 파장 350~360나노미터 영역(자외선)에서 양자 효율이 96%에 이르는 광촉매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는 일본 연구자들의 논문이 실렸다. 이들은 기존 스트론튬 티타나이트(strontium titanate) 광촉매 나노입자의 표면에 보조촉매 2종을 더해 양자 효율을 극적으로 높일 수 있었다.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파장 380~750나노미터인 가시광선 영역이 대부분인 태양광에서 자외선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 안 돼 전체 파장의 빛에너지로 보면 양자 효율이 1%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결과가 주목을 받는 건 보조촉매를 도입한 이 방법을 현재 개발되고 있거나 앞으로 개발될, 가시광선 영역의 빛을 흡수하는 촉매에 적용하면 마의 10% 선을 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인 스트론튬 티타나이트(strontium titanate)가 자외선 영역의 빛(광자)을 흡수하면 전자가 떨어져 나가 물을 분해해 수소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1977년 미국 MIT의 화학자들이 밝혔다. 그러나 당시 양자 효율은 꽤 낮았다. 이번 논문의 교신 저자인 나고야 신슈대 도멘 카주나리 교수는 대학원생 시절인 1980년 스트론튬 티타나이트 광촉매에 대한 첫 논문을 발표한 이래 40년 동안 효율을 높이는 연구에 끈질기게 매달렸고 이번에 극한의 경지에 다다른 것이다.
광촉매의 양자 효율이 낮은 가장 큰 요인은 빛을 받아 분리된 전자와 정공이 다시 합쳐져 원래대로 돌아가는 데 있다. 따라서 전자와 정공이 만들어지는대로 표면으로 빨리 이동해 각각 물분자의 수소이온 환원시키고(수소발생반응) 수산화이온을 산화시키는데(산소발생반응) 쓰여 소진돼야 한다. 도멘 교수팀이 이 반응을 더 빨리 일으킬 수 있는 보조촉매를 개발한 이유다. 이들은 많은 시도 끝에(물론 다른 연구팀의 결과도 참고해) 수소이온을 환원시키는 보조촉매로 로듐/산화크롬이, 수산화이온을 산화시키는 보조촉매로 코발트산화물이 최적의 조합임을 발견했다. 그 이유는 두 보조촉매가 스트론튬 티타나이트 나노입자(결정) 표면에 달라붙는 선호도가 결정면에 따라 꽤 달랐기 때문이다.
수소발생반응 보조촉매인 로듐/산화크롬은 <100>(결정학 용어다) 표면에 주로 코팅되는 반면 산소발생반응 보조촉매인 코발트산화물은 <110> 표면에 주로 코팅됐다. 따라서 빛을 받은 스트론튬 티타나이트에서 생성된 전자는 <100> 방향으로 흐르고 정공은 <110> 방향으로 흘러 서로 만나 합쳐지며 소멸될 가능성이 확 줄어들었다. 그 결과 100%에 가까운 양자 효율이 구현된 것이다. 연구자들은 논문 말미에서 가시광선의 넓은 파장 범위에서 빛을 흡수하는 새로운 광촉매 개발을 보고한 논문 두 편을 소개했다(각각 2018년 ‘네이처 촉매’, 2019년 ‘네이처 재료’에 실렸다). 여기에 자신들이 개발한 보조촉매 개념을 적용하면 양자 효율이 10%에 이를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궁금해서 두 본문을 찾아보니 모두 도멘 교수팀의 작품이다!
새로운 산업이 열리려면 양산 체제가 가능하게 하는 획기적인 소재 또는 재료가 개발돼야 한다. 오늘날 LED조명 시대가 열린 건 1991년 일본 니치아화학공업의 나카무라 슈지가 질화갈륨으로 고휘도 청색LED를 만들어 이듬해 제품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스마트폰과 전기차 시대가 열린 건 1985년 일본 아사히카세이의 요시노 아키라가 석유코크스로 음극 소재를 만들어 1991년 리튬이온배터리가 상용화됐기 때문이다. 나카무라 슈지는 2014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고 요시노 아키라는 지난해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도멘 교수팀이 태양광 기준 양자 효율이 10%에 이르는 광촉매 개발에 성공해 진정한 수소경제 시대를 여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면 40년 넘게 광촉매 연구에 매진한 도멘 카주나리 교수도 노벨상을 타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이상, 출처; 동아사이언스
dongascience.donga.com/news/view/37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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