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치료’ 즉, 암을 치료하는 방법은 크게 3가지가 있다. 크게 암(癌腫)을 직접 도려내는 외과 수술법(surgery), 방사선을 쪼여 태워 죽이는 방사선요법(radiotherapy), 그리고 약물을 주사하여 독살하는 화학요법(chemotherapy)으로 나눈다. 하지만 흔히 ‘항암치료’라면 이 셋 중 화학요법을 말한다. ‘케모테라피’로도 불리는 화학요법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뜻밖에도 염색광(染色狂)이었던 독일 의사 파울 에를리히(Paul Erlich, 1854~1915)과 관련이 있다.
에를리히는 서너 군데의 의과대학을 옮겨 다닌 비범한(?) 의대생이었다. 그는 보통의 의대생들과는 달리 해부학 용어를 외우거나 환자를 보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인체의 조직을 얇게 잘라 형형색색의 물을 들인 후 현미경으로 보는 일만 미친 듯 좋아했다. 썩 우수하거나 모범적인 의대생도 아니었고 학위 논문도 화학을 주제로 썼으니 교수들이 보기에는 썩 바람직한 의대생은 아니었다. 졸업 후 베를린의 병원에 취직한 에를리히는 환자보다는 조직이나 세포를 염색해 현미경 보는 일을 더 좋아했다. 피 속을 돌아다니는 백혈구와 적혈구를 염색해서 세밀하게 구별하기 시작했고(현대 혈액학의 탄생), 자신의 우상이자 결핵균을 발견한 코흐에게 더 나은 결핵균 염색법도 알려주었다. 이 인연으로 두 사람은 각별한 사이가 되었고, 코흐는 변변한 일자리를 얻지 못했던 에를리히에게 베를린의 한 병원 결핵 병동을 맡긴다. 하지만 썩 훌륭한 임상의가 될 싹이 없었던 에를리히는 그만 결핵에 걸려버린다. 하는 수 없이 일을 쉬고 이집트로 요양을 가게 된다. 결핵에서 회복된 후 베를린으로 돌아온 에를리히는 잠시 개원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염색 연구를 이어간다. 이 무렵 메틸렌블루(methylene blue)가 신경세포만 파랗게 물들인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1891년에 코흐는 37세의 에를리히를 자신이 이끄는 ‘감염병연구소’로 데려간다. 무급 연구원이었지만 코흐는 에를리히가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에를리히는 이 무렵 이미 자신이 연구했던 메틸렌블루를 단순히 염색약으로만 쓸 것이 아니라 말라리아를 치료할 약으로 써볼 연구를 시작했다. 염색약 즉, 화학물질을 질병 치료제로 쓰는 화학요법의 전초전이 시작되었다. 1896년에 코흐는 에를리히를 위해 ‘혈청연구소’를 분리했고, 에를리히는 면역학 연구에 매진했다. 1899년 혈청연구소가 화학 산업의 중심지인 프랑크푸르트로 옮겨가며 ‘실험적 치료연구소’로 이름을 바꾼다. 염색광 에를리히는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신나게 염색 연구에 열중할 기회를 잡았다.
1904년 에를리히는 화학물질(염색약) 트리판레드(Trypan red)로 트리파노소마(Trypanosoma)라는 기생충에 감염된 쥐를 치료하는 데 성공했다. 무려 500종의 염색약을 시험했던 힘든 연구였지만 에를리히는 염색약의 구조를 조금만 바꾸면 치료약이 될 수 있다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1905년에는 수면병 치료를 위해 아톡실(atoxyl)이란 비소화합물로 연구를 시작한다. 쥐에게는 효과가 없지는 않았지만 아프리카 원주민을 대상으로 벌인 임상 시험은 사실상 실패를 경험했다. 하지만 에를리히는 아톡실의 구조를 조금씩 변형시켜가며 수 백 가지의 비소화합물 유도체를 만들어 시험했다. 이렇게 2년 동안 605번 시료까지 실패한 다음 606호 물질에서 성공한다.
약품 606호는 주사하면 정상 조직은 건드리지 않고 몸 속에 숨어있는 트리파노소마 기생충만 찾아가서 죽였다. 이렇게 귀신같이 병원체만 찾아가서 죽이는 치료제를 에를리히는 ‘요술 총알(magic bullet)’이라 불렀다. 606호는 쥐와 말의 트리파노소마증을 완벽히 치료했다. 이 무렵 에를리히는 매독균이 트리파노소마의 친척 뻘이라는 논문을 읽게 된다. 에를리히는 트리파노소마의 특효약인 606호를 이용한 동물 실험을 시작했다. 효능과 안전성을 확인한 다음, 임상시험도 진행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주사 한 방이면 지긋지긋하던 매독균이 자취를 싹 감추었고 진물이 나고 전염성이 있던 상처는 아물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수은을 먹고, 바르고, 증기를 쐬고, 주사로 맞았지만 효과보다는 더 심각한 부작용으로 고생했던 매독이었지만 이제 전혀 다른 차원의 치료제로 완치가 가능한 병이 된 것이다.
이 약이 시판되어 나왔을 때의 상품명은 살바르산(Salvarsan)으로 ‘구원하다(salvare)’+’비소(arsenical)’의 합성어였다. 오랜 세월 인류를 끔찍하게 괴롭혔던 매독균은 에를리히가 쏜 606호 한 방에 거짓말처럼 쓰러졌다. 1907년에 에를리히는 이처럼 화학물질로 질병(감염병)을 치료하는 새로운 치료법을 ‘화학요법(chemotherapy)’이라 불렀다. 지금은 ‘항암’ 화학요법이란 의미가 강하지만 110여 년 전에는 ‘화학물질’ 치료법이라는 의미가 강했다. 20세기 초까지 의약품들은 대부분 자연에서 얻었다. 식물, 동물, 광물 그 자체이거나 그것들의 추출물, 그도 아니면 그것의 유효 성분을 인위적으로 합성한 것이었다. 하지만 에를리히가 내놓은 606호는 자연에 존재하지 않은 물질이다. 순전히 화학자들의 손에서 창조된 화학물질이다. 이렇게 그가 만든 만들어진 화학물질 606호 일종의 케미컬(chemical)을 약으로 써 질병을 치료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그래서 에를리히를 케모테라피의 아버지라 부른다. 이울러 606호는 ‘요술 총알(magic bullet)’의 개념도 세상에 내놓았다. 에를리히는 한번 발사되면 아군에게 피해는 주지 않고 장애물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날아가 적의 가슴에 꽂히는 총알 같은 치료제를 원했다. 매독 치료제로 썼던 수은은 병원균도 죽이고 우리 몸에 부수적인 피해도 입혔다.
이상, 출처; 사이언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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