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사를 보면 어느 나라나 패망의 위기에 직면하면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아남고자 젖 먹던 힘까지 다 짜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히틀러의 나치 독일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독일군은 엄청나게 많은 황당한 첨단 과학 병기들을 개발했다. 이는 그들이 얼마나 궁지에 몰렸는지를 짐작게 한다. 그 많은 첨단 병기들 중 시제품이라도 만들어진 것은 얼마 없었다. 오히려 정상적인 징집 연령에서 한참 벗어난 고령자와 아이들울 징집하여 국민 돌격대(Volkssturm)라는 이름으로 조직, 총알이 나가기만 하면 아무 총기나 닥치는 대로 쥐여주고 전선으로 내몰던 것이 대전 말기 독일군, 특히 육군의 실태였다. 심지어 독일은 이들 국민 돌격대를 위해 생산이 쉬운 간이형 총기들인 이른바 국민 돌격 병기를 여러 종류 개발해 생산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독일 육군에서만 벌어진 것이 아니었다. 독일 공군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독일 공군의 초염가 간이형 전투기인, 이른바 국민 전투기(Volksjäger) He162다.
싸구려 제트 전투기의 개발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독일 공군의 형편이라고 육군보다 나을 바가 없었다. 서전에 전 유럽의 하늘을 호령하던 위풍당당함은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이미 독일 본토의 제공권까지 연합군에게 뺏겨, 1943년부터 독일 본토가 연합군의 전략 폭격을 얻어맞고 있었다. 공군의 항공기 생산과 운용에 필요한 물자들의 생산과 수송에 큰 지장을 겪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인적 자원 고갈도 심각했다. 대전 초중기 이름을 날리던 에이스 파일럿들 중 상당수가 전사했다. 그리고 전투 조종사는 육군의 소총수처럼 쉽게 양성할 수 없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1944년 7월 3일부터 독일 공군은 ‘긴급 전투기 프로그램(Jägernotprogramm)’을 발동했다. 염가에 대량 생산해 비숙련자도 쉽게 조종할 수 있는 전투기 개발과 양산, 운용이 그 목표였다. 같은 해 9월 10일 독일 공군이 내건 조건은 자체 중량 2톤 이하, 최대 속도 해발고도 기준 시속 750km 이상, 비행시간 30분 이상, 무장 20mm 구경 MG 151/20 기관포 2문(장탄수 문당 100발) 또는 30mm 구경 MK 108 기관포 2문(장탄수 문당 50발)이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조종 난이도와 가격이었다. 독일 공군은 동력 훈련기 과정을 진행 중이던 공군의 학생 조종사는 물론, 무동력기(글라이더)만 조종해 본 히틀러 유겐트(Hitlerjugend, 나치 소년단) 소속 청소년들도 바로 적응할 수 있는 수준의 난이도를 요구했다. 당연히 이들 소년들까지 조종사로 투입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리고 고장이 날 경우 수리할 필요 없이 바로 폐기하고 새 항공기로 교체해도 될 만큼 저렴하고 내구성 없는 설계를 요구했다. 때문에 재료도 항공기의 전통적인 소재였던 알루미늄을 덜 쓰는 대신, 목재 등 비전략자원을 많이 사용할 것을 요구했다.
경합 끝에 채택된 하인켈 사의 설계안에는 He162라는 명칭이 붙었고 그 해 12월 6일에 시제기의 처녀비행이 있었다. 엔진은 BMW 109-003E 계열 터보제트 엔진 1대였고, 앞서 말한 대로 나무, 더 정확히 말하면 합판이 많이 사용되었다. 제조공장은 잘츠부르크, 힌터브뤼흘, 미텔베르크 등 3곳에 건설되었고, 이 3곳의 공장이 완전히 가동될 경우 월 2000대의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참고로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생산된 군용기인 Bf109의 생산대수가 3만 4000대였다. 만약 전쟁이 1946년 말까지 끌었다면 He162는 Bf109를 뛰어넘는 수가 생산되었을지도.
조잡한 설계와 제작으로 결함기가 되어버려
그해 말부터 생산이 시작된 He162 초도 생산분 46대는 1945년 1월, 독일 공군의 제162실험비행대에 인도되어 각종 실험을 거쳤다. 이어 그다음 달인 1945년 2월에는 제1전투비행단 제1비행대대에 인도되었고, 비행훈련이 채 끝나지도 않은 4월 중순 첫 실전에 투입되었다. 4월 19일 영국 공군 전투기를 격추시킨 것을 시작으로 He162는 그다음 달 유럽 전쟁이 독일의 무조건 항복으로 끝날 때까지 약 10대의 적기를 격추했다고 한다. 그러나 He162 역시 13대가 손실되었고, 조종사 10명이 사망했다. 이 중 적의 공격으로 격추당한 수는 2대에 불과했다. He162는 워낙 조잡하게 만들어져 비행 중 엔진이 꺼지거나 기체가 공중분해되는 일이 다반사였던 것이다. 30분밖에 날 수 없는 적은 연료 용량도 문제였다.
아무튼, 이런 싸구려 전투기까지 만들어서 수명을 연장하려 했던 히틀러의 나치 독일은 히틀러의 자살과 그 뒤를 이은 무조건 항복으로 1945년 5월 8일 패망하고 만다. 320대의 He162가 완성되어 그중 120대가 독일 공군에 인도된 이후였다. 세련된 항공 기술의 모범이라기보다는 따라 해서는 안 될 반면교사 쪽에 더 가까운 설계와 제작 방식을 갖춘 항공기였다. 원래 계획과는 달리 히틀러 유겐트의 청소년들을 태우고 비행한 적은 없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개발과 제작, 운용단계에서 인간을 무시한 항공기가 어떻게 되는지를 잘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상, 출처; 사이언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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